합천창녕보(합천보)가 열렸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조금씩 열리기 시작해 최근엔 합천보 수문을 완전히 들어올렸다. 원래 합천보 관리수위가 10.5미터인데, 28일 나가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합천보 수위가 4.8미터까지 낮아졌다. 무려 5.7미터나 떨어진 것이다.
수위가 5미터 이상 낮아지니, 자연스럽게 모래톱이 드러났다. 은백색 모래톱이 환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낙동강이 낙동강다워진 것이고, 낙동강이 비로소 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합천보 수문개방한 낙동강, 새들의 낙원
제 모습으로 돌아온 낙동강을 제일 반기는 것은 야생동물들이다. 특히 새들이 가장 반기는 듯하다. 수위가 낮아지면 맘껏 '물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인지 다양한 새들이 돌아왔다. 물이 깊은 낙동강에선 절대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새들이다.
백로와 왜가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은 물론이고, 멸종위기종 희귀조류들까지 눈에 띄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천연기념물 독수리 그리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노랑부리저어새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황새까지 목격됐다. 더불러 맹금류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큰말똥가리도 볼 수 있었다.
노랑부리저어새와 황새는 낙동강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새다. 이런 희귀종 멸종위기종들까지 돌아왔다는 것은 낙동강의 생태환경이 그만큼 회복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단지 한 달 정도 수문만 열었을 뿐인데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단지 수문을 열고 모래톱만 돌아왔을 뿐인데 이렇게 다양한 생명들이 돌아온 것이다. 최근 매년 겨울 합천보 수문을 열지만 이렇게 다양한 생명들이 돌아온 것은 올해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그 수도 많다. 백로와 왜가리, 흰뺨검둥오리와 민물가마우지들은 떼로 움직인다. 이들 새떼들이 모래톱 위에 군집을 이루면 정말 장관이다. 비로소 낙동강에 생기가 돈다. 군집을 이룬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낙동강이 춤을 주는 것 같다.
이처럼 정상적인 강은 생명을 불러들인다. 보 수문을 완전히 열어 수위가 낮아지면 모래톱이 돌아오고 물이 맑아지는 선순환에 이어 뭇 생명들마저 돌아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인가.
보 개방은 낙동강을 춤추게 만든다
낙동강의 다른 보들도 마저 열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만 된다면 낙동강 700리 모든 물길이 흘러가게 되고 뭇 생명들이 돌아오고 그래서 낙동강은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겨울 수문이 완전히 열린 곳은 합천보가 유일하다.
창녕함안보(함안보)도 최저수위까지 수문을 열었다가 인근 농가들 때문에 최근 다시 닫혔고, 상류 칠곡보는 1미터, 구미보, 2미터 수위를 내렸을 뿐이다. 다른 보들은 모두 꽁꽁 닫힌 채로 유지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기형적으로 보를 관리할 것인가? 하루빨리 취양수장 구조를 개선하고, 4대강사업으로 생겨난 수막재배 농민들을 설득해 정상적인 농업 형태로 되돌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역할을 환경부가 해야 한다. 이 나라 물과 하천관리권을 손에 쥐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환경부가 나서서 이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한다.
낙동강 보 개방에 환경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
취양수장 구조개선을 위해선 낙동강에서만 8000억 원이 필요하지만, 환경부가 올 연말 신청한 예산은 고작 500억 원 정도다. 과연 환경부가 보 개방에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이렇게 해서는 보 개방에 수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녹조가 만들어내는 '마이크로시스틴'이란 독성물질로 인한 수돗물 불안, 그에 이어 녹조 독이 에어로졸로 날린다는 얘기 때문에 공기마저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는 채로 영남인들은 거의 공포에 떨고 있다. 왜 영남인의 불안과 공포를 방치하는가.
환경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취양수장 개선 예산을 대폭 신청해야 한다. 어려우면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서라도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28일 달성보부터 합천보 전 구간을 돌아보면서 모니터링했고, 마지막 일정으로 시작점인 박석진교로 돌아왔다. 달성보 바로 아래인 박석진교에 서니 서쪽 하늘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해가 붉게 물드는 일몰의 시간이었다.
마침 드넓게 드러난 모래톱 위로 고라니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비로소 야생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란 것을 녀석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둠과 함께 야생동물들의 시간이 비로소 도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라니, 너구리, 삵, 오소리, 족제비 등과 함께 낙동강은 다시 한번 춤을 추게 될 것이다.
합천보 완전 개방은 이렇게 뭇 생명들을 부르고, 이들로 인해 낙동강이 비로소 강다워지고 소생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낙동강 8개 보가 하루속히 열려야 하는 이유를 이날 낙동강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뜻깊은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 동안 낙동강의 변화를 지켜봐왔습니다.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은 녹조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낙동강을 살리는 길은 하루빨리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낙동강은 흘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