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웅은 삶 속에 숨어있다. 어디선가 뛰쳐나와 누군가의 생명을, 삶을 구한다. 이들은 어떻게 위기의 순간 용기를 낼수 있었을까. 무엇이 이들의 손을 내밀게 했을까. 시민 영웅의 '본심'을 들어본다.[편집자말] |
여기 지구를 지키는 38명의 '초딩 영웅'이 있다.
길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고, 이를 담배회사에 보내는 '꽁초어택(attack 공격)' 활동을 한다. 담배꽁초를 싸서 버릴 수 있는 '시가랩(cigarap, 담뱃갑에 부착해뒀다가 사용한 담배꽁초를 싸서 담뱃갑에 다시 넣도록 고안됨)'을 디자인 하고 이를 어른들에게 나눠준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제대로 된 분리수거를 안내한다. 어린이날을 맞아 온라인상에 모여 곳곳에 쓰레기가 얼마나 있는지 공유하고 '줍깅(조깅을 하는 동안 눈에 띄는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한다. 개인 그릇을 가져가 음식을 포장하는 '용기내 프로젝트'에 학교 주변 가게들의 참여를 독려해 18곳의 호응을 얻어낸다. 페이퍼타월 대신 손수건을 쓰고 텀블러 사용은 기본이다.
경남 창원 무동초등학교 환경동아리 '그린그램(초록을 1그램 늘리자)'에서 활동 중인 38명 초등학생들의 '환경 실천 활동' 일부다. 4학년 26명, 5~6학년 12명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동초 임성화 선생님 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지난 3년간 4학년 담임을 맡아 온 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환경 활동을 해왔다. 이후 5학년, 6학년이 된 아이들 12명이 계속 환경동아리 활동을 이어가 그린그램 총원은 38명이다.
이 '초딩 영웅'들은 근 2년 동안 상을 휩쓸었다.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 교육부 장관상(환경동아리 지원사업 심사)을 받았고, 2022년 11월 환경부장관상과 2022년 대한민국 녹색기후상(학생 기후천사단 환경교육 우수사례)도 받았다.
어떤 배경으로 이 같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걸까. 무동초 그린그램에서 활동 중인 김가림(4학년), 우규린(4학년), 배승빈(4학년), 남수영(5학년) 학생과 동아리를 이끌어 온 임성화 선생님(43)을 2022년 12월 22일, 2023년 1월 9일 두 차례 인터뷰했다.
"환경교육 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환경 지키는 결정들을 할 수 있겠죠"
임성화 선생님과 아이들은 2022년 한 해 동안 '열두달 환경교실'을 통해 매달 환경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임 선생님은 달마다 있는 환경 관련 OO날들을 줄줄이 읊었다.
"2월 2일 습지의 날과 3월 22일 물의 날의 날에는 물 아끼기 활동을 독려하고요.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8시 30분에는 '지구촌전등끄기 캠페인' 날이라 집에서 불을 꺼보자 했었고,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반려식물 함께 키우기 행사를 했어요. 5월 22일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에는 때마침 반 친구가 새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장면을 목격해서 국립생태원에서 교육받고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아파트에 가서 붙이는 활동을 했고요.
6월 5일 환경의 날 기념으로 플라스틱 없이 한 달 살아보기 활동을 했고,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에는 폐현수막을 걷어서 그걸로 에코백을 만들어 주변 가게에 나눠드렸어요. 8월 22일 에너지의 날에는 방학이지만 집 에어컨 온도를 높이자 활동을 했고, 9월 6일 자원순환의 날이라 세제통을 가져오면 세제를 리필해주고 전교생이 마신 우유팩을 가지고 오면 휴지로 바꿔서 돌려주는 활동을 했어요.
10월 16일 세계식량의 날에는 잔반 줄이기 캠페인을 벌였고, 11월 26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에 맞춰서 반 학생들끼리 물건 교환하는 활동을 했어요. 12월 4일 야생 동물 보호의 날이 있어서 학교 주변 빗물받이에 쓰레기를 버리면 흘러흘러 고래 배 속으로 간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빗물받이에 고래 그림 등을 그리는 활동을 했죠."
임 선생님은 각 달의 특성에 맞게 활동을 고안하고 준비하며 2년째 동아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선생님도 처음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라고 했다. 2019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거북이 방생 활동에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
"해수면이 상승해서 바다거북이 알들이 유실되고, 환경 파괴로 인해 바다거북이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공적으로 거북이를 키워서 방생해야 했던 거죠. 해수면 상승을 처음 실감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거북이, 바다, 오염'을 검색해보니 코에 빨대 꽂혀 있는 거북이 사진, 바다 쓰레기 등 구체적인 자료들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이렇게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걸 '자각'한 거죠."
자각은 교육으로 이어졌다. 2020년 반 아이들에게 환경 교육을 시작했다. 2021년에는 '그린그램' 동아리를 만들었다. 동아리 활동에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에 2시간. 나머지는 주말과 하교 후 활동 등으로 채웠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38명이나 되다 보니 참석 가능한 아이들만 참석하게끔 유연하게 운영해도 충분히 활동이 가능했다.
대신, 선생님 개인 시간을 반납했다. 이제는 "다른 책은 전혀 읽지 못하고 환경 관련 책 읽을 시간밖에 없다"는 임 선생님은 잠 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지,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동력을 마련하지' 생각한다"고 했다. 환경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일상에 깊숙이 뿌리 내렸다.
"시간도 많이 들고 사실 쉽지 않은 건 맞아요. 그런데 시간 낭비는 절대 아니죠. 앞으로의 친구들은 산소를 사서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당장 초등학교 6학년인 제 아들도 걱정되고요. 저뿐 아니라 제 주변을 살리려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할 거 같더라고요. 제가 환경 교육을 하면 나중에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영향력으로 환경을 지키는 결정들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재미로 메뚜기를 죽여왔는데, 이제 주변 친구들을 말려요"
열두달 환경교실을 함께 한 아이들의 하루 역시 달라졌다. 급식을 먹으며 편식을 해 반찬을 남기던 식습관도, 대수롭지 않게 페이퍼타월을 뽑아 쓰던 일상도 변했다.
"이전에는 음식을 남기기도 했어요, 제가 남기는 건 어차피 조금이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남기니까 지구 온난화에 영향이 있더라고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니까요. 이걸 알고 나서 음식을 안 남기게 됐어요." (가림)
"어린이날에 줌(온라인 화상 미팅)으로 만나 '줍깅'을 했어요. 자기가 있는 곳 어디서든 1시간 동안 쓰레기를 주웠는데 다 같이 쓰레기를 주웠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해서 재미도 있었어요." (승빈)
이렇게 환경을 위한 활동을 쌓아가다 보니 생명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다고 했다.
"지구나 숲, 동물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많이 들었어요. 제가 예전에는 메뚜기 같은 걸 재미로 많이 죽였거든요. 근데 환경 동아리 활동을 한 후부터는 제 친구들이 죽이려고 하면 죽이지 말라고 말려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자기들보다 큰 게 밟으려고 하면 얼마나 무섭겠냐고요." (승빈)
이렇게 조금씩 꾸준히 환경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은 변하고 있지만, 이제 그 곁에 선생님이 없다. 임 선생님은 5년간의 무동초 근무를 마치고 2023년에는 다른 초등학교로 전근이 예정돼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전 '용기내'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가림)
"급식 다 먹고 재활용품 분리배출 똑바로 하는 거, 계속할 거예요." (규린)
"물티슈가 플라스틱인 거 아세요? 재활용이 안 되고 녹지도 않아요. 그래서 물티슈 대신 손수건 사용하는 거랑 양치할 때 양치 컵 사용하기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승빈)
선생님 역시 무동초 안에서 환경 관련 활동들의 맥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는 선생님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싶다고 했다.
"교육자로서 영향력은 굉장히 크니까요. 조금만 마음 내주셔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환경 교육을 받는다면 그 씨앗이 언젠가는 커지고 뿌리내려 발현될 거라고 기대해요. 선생님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고 교육에 힘써주시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선생님도 옮겨갈 학교에서 환경 동아리 활동 등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제 무동초에 심어진 '씨앗'인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제가 환경에 대한 마음을 심어줬지만, 그걸 키우는 건 너희 몫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지속적으로 관심 가졌으면 좋겠고 내 가족부터 천천히 이해시키고 변화시켜가면 좋을 거 같아요. 우리 반 친구들이 방학 중에도 꾸준히 환경 활동을 하고 있던데, 제가 바라던 게 바로 그런 거였어요. 환경 활동이라는 게 아이들 마음에 깊이 남아서 그 마음을 이어가는 거요. 변화, 습관, 공유, 확산 이렇게 계속되면 좋겠어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놓지 말고 계속 관심 가져준다면, 잘해낼 수 있도록 연대할게요!"
무동초에 심어진 '씨앗', 이미 발아한 새싹
선생님의 바람대로 아이들의 생각은 생활의 변화를 넘어, 그 이후까지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제 6학년이 되는 수영이는 중학생이 되면 환경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가림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유명해지면 제가 하는 환경 활동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수영의 장래 희망은 "아이들에게 환경 교육을 제대로 하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임 선생님이 정성껏 심은 씨앗은 이렇게 발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소 난해한 질문, '지구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물었다. 의외로 단번에 답변이 나왔다. 고민도 없었다. 거기엔 어른들을 향한 뾰족한 일침도 함께했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도 같이 지킨다는 의미죠." (규린)
"이 지구를 깨끗하게 써서, 후손들이 맑은 공기 속에서 살게 하는 게 제게는 지구를 지킨다는 일의 의미에요." (승빈)
"전 지구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구에는 사람이 살잖아요. 지구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죠. 결국 저희들이 하는 행동도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고, 영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일상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게 결국은 사람을 지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어른들! 저희의, 지구의 영웅이 돼 주세요." (수영)
"아니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구에 대한 얘기만 하면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아요. 저희의 미래가 있으려면 환경을 지켜야죠. 왜 우리를 지켜준다고 했으면서 안 지켜주나요? 어른의 미래만 생각하지 말고 저희의 미래도 생각해주세요. 저도 어른이 되면 후손의 미래를 지켜줄게요." (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