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 참석했을 때(관련 기사 :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참사 희생자 서형주씨의 누나, 서이현씨를 만났습니다(관련 기사 :
동생은 신원미상자 18번... 국가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서이현씨는 제게 먼저 인사를 하시며 "쓰고 계시는 글을 초반부터 잘 읽었고, 너무 힘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앞으로도 글을 꾸준히 계속 써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꾸준히 제 역할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제 글도 많이 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 않았나' 생각하며 언제 연재를 마무리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고민을 부끄럽게 여기며 고백합니다.
글을 쓰고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을 얻어냈다고 하지만, 참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변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미약한 노력이었구나 깨닫습니다. 큰 힘이 되지 않아도, 저의 노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며 글을 시작합니다.
왜 매번 지나고 나서 깨닫는지
지난 12일, 공청회에 가면서 정부와 국회의원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두 번의 청문회가 끝났고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가 다 끝났음을 알았고, 공청회의 발언이나 증언이 수사 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무기력하고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힘들어하는 유족에게 힘이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갔습니다.
유족들을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세상을 상대로 싸우는 과정에서 많이 지치고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감히 짐작하건대 '내가 이렇게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구나'라는 걸 알아버린, 축 쳐진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공청회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처음엔 거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청회가 시작되고, 제가 놀란 것은 예상과 다른 국회의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여당 야당을 막론하고 모두가 진심으로 제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당시 국회의원들의 눈과 태도, 모두 진심이었습니다. 의원들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생생한 증언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는 듯한 반응. '실제 현장은 이런 느낌이구나, 유족 뿐만 아니라 생존자가 겪는 평범한 일상의 트라우마와 고통은 이런 것이구나, 끔찍한 일상이란 게 이것이구나'라고 느끼는 듯했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와 기관들의 대응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그로 인해 유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심적인 놀라움을 느끼며 가슴 아파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절망적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다 끝난 마당에 이제와서 진심으로 들어주는 국회의원들을 보며, 그래도 이 나라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왜 이제와서 깨닫느냐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국회의원들은 생존자 증언이 끝난 후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번 국정조사가 실패했음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유가족과 생존자 증언을 듣는 자리를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에 마련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생생한 증언을 이상민 장관, 국무총리,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이 듣도록 했어야 했다. 예산안 결정하느라 국정 조사 기간의 반 이상을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너무나 아쉬웠고 미흡한 부분이 많은 국정조사였다.'
그들의 인정이, 적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왜 매번 지나고 나서 깨닫는지, 미리 예측하고 준비할 수는 없었는지 따져 물어야 할까요.
유가족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모두가 함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증인 채택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공청회로 모시게 되어 죄송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반대했지만, 이제와서 우리의 증언을 직접 듣고 함께 진심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여당 의원들을 보았습니다. '왜 그때는 불러주지 않았냐'고 물어야 할까요, '이제라도 들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제 옆에 앉으신 이태원 상인분이 트라우마로 인해 숨을 잘 못 쉬겠다며 마스크를 쓰는 것조차 버거워하시고, 공청회 5시간 내내 가슴을 계속 치시며 버티고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위로하고 싶어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아는 생존자인 저는,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라서 1분 1초마다 괴로웠습니다.
"나 이거 이태원, 부끄러워서 진짜... 못살겠어요..."라며 대화를 건네오시던 모습, 자신의 발언 시간에 본인이 대신해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왜 상인분이 사과를 하세요' 하고 고개를 떨구고 울었지만. 누군가 무릎 꿇고 사과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을 알아줄까요. 사과는 이렇게 위로를 주는 손쉬운 해결책인데, 왜 하지 않을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요
2차 가해로 세상을 등진 159번째 피해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50분간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 국회의원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라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에게 물었습니다. 그 치안상황관리관은 "의원님, 그것은 제가 조금 확인을 해보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발언하기로요.
유족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도 진위 여부를 확인하여 말한다는 게 또 다른 2차 가해처럼 여겨졌습니다. 관료주의적 사회에서 관료로서 일을 하기에 그런 것일까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것 또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료주의에 갇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런 자리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무지함.
"진심으로 모르시는 것 같기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위에 계시는 분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있으셔야 합니다. 만약 모르신다면, 본인의 무지함에 대해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여야 국회의원, 정부 관료들만의 문제일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사회 모두에게 결핍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슬퍼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를 우울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더 이상 듣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사회가 아닐까... 이 사안이 빠르게 잊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5시간의 공청회 동안 저는 고작 7분 발언, 1분의 기타 의견을 말했고 이것이 그날 저녁 공중파 3사 메인뉴스를 장식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유족도 아니니까, 그들의 아픔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니까.
뉴스를 보고 부모님이 연락해왔습니다. 참사 후, 저는 저의 고통을 부모님께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내가 아는 부모님이라면 나의 고통을 공감해주기보다 나무라고 '그러게 거기 왜 갔냐'고 말하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냥 그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기성세대였으니까요. 무엇보다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부모님께서 거리를 두던 모습을요.
"뉴스 보고 알았다. 힘들었겠다. 엄마의 큰딸로 태어나서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성장해줘서 고맙고 감사해.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식을 어찌 키워야 하는지 잘 모르면서 부모가 되어서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함도 참 많네. 좀 더 깊은 사랑을 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도 똑똑하고 자존감 강하고 못하는 게 없이 잘 성장해줘서 정말 고맙고, 후생에도 초롱이가 엄마 딸로 다시 만나길 기도해. 다시 딸로 태어나면, 부모가 한번 되어봤으니 후회 없이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그때도 꼭 다시 딸로 태어나서 사랑을 듬뿍 받아줬으면 좋겠다. 설에 먹고 싶은 음식 있어? 다 해줄게."
마치 세상을 등진 딸에게 보내는 것 같은 메시지를 내가 살아남아 전해 받고, 부모와 뜨겁게 화해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엄마도 엄마의 자식이 직접 이런 일을 겪는 것을 보고 나니, 2014년 세월호 부모들과 지금 희생자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조금이나마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다행이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 없는 슬픔은 나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수사를 '제대로' 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까
2017년부터 매년 핼러윈을 보내며, 아무 사고도 없는 공간이었기에 2022년에도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사고가 나던 곳은 아니었기에 사고가 날 줄 몰랐고, 더군다나 159명의 희생자가 나오는 대규모 참사가 될 것이란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기에 처음에는 저도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인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참사를 겪고 보니 알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았던 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철저히 대비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과거에는 핼러윈 때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한 경찰의 대책이 있었구나. 인파 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기동대가 배치되어 이전에는 사고가 안 났구나. 올해는, 그 모든 예방책이 작동하지 않았구나.
참사와 청문회를 겪으면서 행정 전문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깨달았습니다. 행정 전문가가 앉아야 할 자리에, 법관 출신 행정안전부 장관이 앉아 있다는 것. 이것부터가 우리나라의 안전 공백이라는 점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토록 '법리에 따르겠다', '수사 결과를 따르겠다'라는 말을 외치는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대통령의 잘못은 행정 전문가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앉히지 않은 것, 행정안전부 장관의 잘못은, 예측된 인파 관리를 제대로 관리 감독, 지휘를 못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국회의원, 서울시, 용산구청 등 정부 관료와 책임자들의 잘못은,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막말을 내뱉은 것, 자신의 잘못이 맞는지 아닌지만 따져물은 것,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재난안전법상, 서울시, 행정안전부, 경찰청, 서울시자치경찰위원회 등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내용이 결론이었습니다. 애매모호한 재난안전법의 법령 때문에 특별히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 처음으로 재난안전법이라는 것을 펼쳐 정독했습니다.
애매모호한 법령인 것도 맞지만, 결국 해석하는 주체가 얼마나 처벌할 의지가 있는지가 관건 아닐까요. 이태원 참사를 법문항 단어 하나하나로만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날의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해 어디까지 보고가 올라갔는지, 어디서 어떻게 관리 감독했는지 판단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법을 너무 좁게 해석했고, 말장난하듯 책임이 없다고 규정짓는 것을 보고 과연 수사를 제대로 하려는 의지가 있었는가 묻고 싶습니다.
2005년 경북 상주 콘서트장 압사 사고 이후 만들어진 재난안전법과 매뉴얼이,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2005년 이후 무엇이 변했는가,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재난안전법상 책임이 모호하여 윗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법을 개정하는 것에는 동의하는지, 특별법을 제정해서 독립적인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에 동의하는지, 그게 안 된다면 특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무엇도 안 된다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지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꼭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그런 어른들이었다면 이 나라의 안전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나라에 등을 돌리지 않게, 희망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청회를 마무리하면서 한 유가족이 고개를 숙이며 남긴 말이 슬픕니다. '유가족들이 심정적으로 격하게 발언했다면 죄송하다, 국회의원들께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 너른 양해 부탁드린다'. 참사로 인해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받는 피해자들이 왜 한없이 고개 숙여야 하는가. 우리 모두에게도 생길 수 있는 재난을 왜 우리는 모두가 외면하고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돌아서는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