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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지난 2022년 11월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내외국인들이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내외국인들이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잊으라고 하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1.

나 : "선생님, 혹시 제가 만약에 살다가 또 다른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떡하죠."

선생님 :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나 : "돌이켜보면 저는 늘, 다른 사람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무심했던 것 같아요. 나는 늘 타인이 죽어가는 순간에 있거나, 타인이 죽기 직전의 순간을 맞이하네. 이 정도면 나도 문제 아닌가. 내가 너무 덜 예민한 걸까. 나는 왜 매번 예민하지 않아서 타인의 죽음을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못 할까."

선생님 : "참사를 겪으면 개인이 기존에 겪은 트라우마가 다시 발현되어서 더 큰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어요. 힘들겠지만, 우리 그 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나 : "중학교 때, 처음으로 반장을 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성적 차별로 학급 임원을 뽑을 때였는데, 성적이 되지 않는데도 친구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반장이 되버렸어요.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은 그 시절에 대단히 뭔가 잘난척하기 좋은 구실이었더라고요. 세상 살만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그렇게 저를 좋아해 주던, 저를 반장으로 만들어준 친구가 인영(가명)이었습니다.

인영이가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제게 큰 관심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여름 마지막 기말고사 기간을 맞이했고, 기말고사에서 내는 수행평가를 제출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때, 인영이와 그의 단짝친구 사이에서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단짝친구는 인영이가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선생님께 알리고 싶지 않으니, 대신 반장으로서 잘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기말고사가 시작된 첫날 인영이를 불러세워 놓고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스스로 해결해 놓으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외치던 인영이를 바라보며, 저는 마지막 대못을 박았습니다. '네가 잘못해놓고 왜 난리를 치는 거야?'

인영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 없이 터덜터덜 복도를 빠져나갔어요. 그리고 그게 인영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학교가 눈물바다가 되었고, 저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학교에서는 인영이의 장례식 장소도, 묻힌 곳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선생님들도 빠르게 잊으라고 말했고, 어린 나와 내 친구들은 '잊어야 하나 보다' 하고 그렇게 졸업을 맞이했어요.

당시 담임 선생님이 졸업하는 날 내게 했던 말이 가슴에 남아요. '우리 살면서 다시는 보지 말자, 너도 잊고 나도 잊을 거야, 서로 잊어야 잘 살 수 있어'. 그렇게 담임선생님은 타 지역으로 전근을 가버리셨어요.

잊으라고 하니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6살이 됐을 무렵. 저는 그때서야 트라우마가 터져 나왔습니다.

발이 부러진 사람에게 목발 없이 그냥 일어서라고 다그쳐서 그냥 일어나게 한다면, 뼈는 언젠가 붙겠지만 반드시 후유증으로 고생을 한다고 하지요. 트라우마가 그런 건가 봐요. 10년이 지나서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알아버렸어요. 그때 힘들게 20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아팠지만 그래도 회복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잘 회복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32살 핼러윈, 씻을 수 없는 참사를 겪었고 새로운 트라우마에 더해 과거의 트라우마까지 같이 오더라고요. 왜 나는 자꾸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요. 그때도 지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좀 더 예민했다면 그래도 무언가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도 지금도, 잊으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고, 잊는다면 잊으라고 하는 사람들이야 편하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고통에 상처가 곪다가 죽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냥 이번에도 잊으려고 노력해볼까요? 너무 힘드니까 거리를 좀 두고 도망 좀 쳐볼까요?"

선생님 : "상처를 덮어두고 안 보면 살이 썩어요. 겉은 치료가 돼서 멀쩡해보일지 몰라도요. 상처를 덮지 않고 열어두면 온갖 자극이 있어서 따갑고 아프겠지만, 그만큼 계속 건드려줘야 새살도 돋고요, 바람도 통해서 고름도 마르고요.

트라우마가 정말 큰 질병인 거예요. 이렇게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과거까지 소환해와서 아프고 힘들게 하니까요. 그런데 질병이니까 나을 수 있어요. 나을 수 있게 도우려고 제가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어요.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지 맙시다.

설령 결과가 원하는대로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우리 같이 노력한 시간, 이 사건을 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결국 내 안에 남아요.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기록하고 남겨둡시다.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맙시다."

자꾸만 세상에서 멀어져가는 기분

2.

선생님 : "오랜만이네요? 어때요 요즘은?"

나 : "그냥, 외로워요. 기분이 묘한 새해 인사를 받았어요. 선생님, 사실은 곁에 사람들이 단절되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웃기죠, 그런데 사실이에요."

선생님 :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요?"

나 : "제가 참사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이 듣고는 연락을 서둘러 해온 친구들도 있지만, 사실은 소수예요. 괜찮냐는 안부를 묻기도 그렇고, 힘내라는 말을 쉽게 하기도 그렇고 그런 연락을 받고 저도 괜찮다고 말할 수 없기도 하고. 서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냥 연락 자체가 없어지는 거예요.

누굴 탓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참... 그냥 서로 위로하는 법을 모르는 사회인 거죠. 고등학교 동창이 새해 안부 인사차 연락을 했더라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그 연락은 기뻤습니다. 차라리 주제가 이렇게 명확하면 저도 대답하기도 편하고요.

그랬더니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사실 연락하고 싶었는데 차마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몰라서, 새해 안부를 핑계로 이렇게 슬쩍 넘어가 보려 했어. 미안해, 내가 이렇게 후져. 너 주변에 아마 나 같은 사람 많을 거야, 말 걸고 싶어도 말 걸지 못하는 후진 사람들.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래도 꼭 복 많이 받아. 정말로 올해는 꼭 보자 우리.'

눈물이 나기도 하고 무슨 말인지 너무 알겠고, 속상했어요 그냥."

선생님 : "표정을 보면 말하는 것은 담담한데, 정말 슬퍼 보여요.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나 : "평범한 고통을 겪고 있는 나마저도 이런데, 자식을 잃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단절되어 가겠어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라서 주변 인간관계가 더 단절되는 일이 많으실 텐데 너무 슬프고요. 그분들 얼마나 외로우실까요."

선생님 : "초롱씨는 무감각하지 않아요, 무던하지 않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다 알겠어요. 그러니 일상을 덮치는 트라우마에서 내가 예민하지 않아서 타인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자책은 정말 잘못된 사고방식인 거 알려드리고 싶어요. 무던하고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이렇게 같이 느낄 리 없잖아요. 그럼 이제 다시 관점을 바꿔봅시다. 사람들이 어떻게 위로 연락을 하는 게 좋을까요?"

나 : "그냥... 밥 잘 먹고 있지? 밥은 먹었어?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봤다, 답장은 안 해도 돼, 나만 보낼게. 자주 생각하고 있으니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트라우마가 일상을 망치는 과정과 단절과 고립에 대한 상담에서>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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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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