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구동호회 운동을 마친 뒤 도서관을 둘러보기 위해 아파트단지 내 작은도서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부모와 함께 책을 보고 있는 어린이도 있고 성인도 있었다. 도서관은 놀이터 옆에 있는데 그곳을 지날 때면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부모나 조부모의 손을 잡고 나와 놀이터로 향하는 어린이들도 보게 된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지만 대다수 아파트 주민들의 삶은 서로 분리돼 있다. 때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만남과 대화가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반면 아파트 내 도서관에선 201동 어린이와 107동 어린이가 자연스럽게 만난다. 이뿐인가. 201동 아빠와 107동 할머니가 만난다. 육아 정보, 교육 정보도 공유하며 아파트에서 벌어졌던 일을 소재로 사소한 수다도 벌어진다. 비록 '작은' 도서관일지라도, 도서관이 사라진다면 아파트 내 주민들 간 만남과 대화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작은도서관 예산 미편성 논란... 갑자기 왜?
지난 19일 한겨레 기사 <오세훈, 작은도서관 예산 없앴다... 예고 없이 "지원 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시는 작은도서관 사업 종료를 각 도서관 담당 부서에 전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 홈페이지엔 작은도서관 정책 예산 미편성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하는 민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바로 대응했다. 지난 19일 서울시 대변인실은 작은도서관 이용 현황 통계를 제시하며 '작은도서관 사업이 성과 미흡 사업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또한 '지역 환경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바로 다음날인 20일엔 '작은도서관 육성지원 사업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해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필자는 서울시 대응 등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도서관의 공공성을 고민하게 된다. 작은도서관 성과를 분석한 서울시 보고서를 보면 마치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이지만,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도서관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연결 끈
작은도서관은 운영주체에 따라 공립과 사립으로 구분된다. 공립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사립은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한다. 도서관법에 따르면, 작은도서관은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생활 친화적 도서관 문화의 향상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작은도서관법에서는 국민의 지식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목적도 언급된다.
민선 5기~7기에 사람 중심의 정책 기조와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활성화 흐름 속에서 작은도서관 정책 사업이 시행된다. 민선 9기 이후 도시재생, 마을공동체와 관련된 정책 사업에 관한 예산이 삭감되거나 폐지됐는데 작은도서관 사업 축소 역시 이와 맞물렸다.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서울시는 작은도서관 육성을 지원해왔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평가에 따라 4개 등급으로 구분해 차등 지원해왔는데 1관당 평균 200만 원가량을 지원했다. 사립 작은도서관도 지원 대상이었다.
그런데 왜 서울시는 작은도서관 사업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려고 한 걸까? 표면적으로 내세운 주요 근거는 일평균 방문자 수와 대출도서 수다. 정리하면 이용률이 낮기 때문에 돈을 투입할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용률만으로 도서관 성과를 측정할 수 있을까? 도서관이 책만 빌려보는 공간인가? 우리가 혹시 도서관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사회적 인프라 개념을 소개한다. 사회적 자본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네트워크를 가늠하는 개념이라면,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중 도서관, 학교, 놀이터, 공원 등과 같은 공공시설은 필수적인 사회적 인프라 사례로 언급된다.
특히 도서관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대표적인 인프라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라는 개념은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도서관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할까? 나아가 관계의 정도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정량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도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 빌려보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필자는 스스로를 도서관의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대학 도서관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까지 도서를 '영끌'해 빌려놓고 여러 책을 돌려 본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볼 때면, 건너편 자리에 앉은 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슬쩍 보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영역도 넓히게 되고 평소 관심 가지지 않았던 주제에 관해 흥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뿐인가. 도서관에서는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동화 구연, 글쓰기 강연, 지역 아카이빙 모임 등 각종 문화 행사와 참여 프로그램들이 열린다. 지식을 공유하고 생산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도서관에서는 연령·성별·직업·거주지 등의 사회적 구분이 사라진다. 우리는 평소 사회적 환경에 따라 특정 계층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도서관에선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을 접촉한다. 굳이 활동을 공유하거나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상호 신뢰감이 쌓일 기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불필요한 긴장감과 불안함을 완화하는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서관 내 접촉이 도서관 바깥에서 이뤄지는 사회활동과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매력적으로 브랜딩 한다면?
이용률이나 대출 빈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용률과 대출 빈도가 낮은 이유를 명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시기에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 자치구 내 다른 도서관의 책을 가까운 작은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보완해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과 긴밀하게 연계해 대출도서의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작은도서관은 말그대로 규모가 작다. 예산의 규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도서의 양이나 신간도서의 제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기능만으로는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이나 신간 도서 입수가 빠른 서점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작은도서관은 본래 목적대로 공간을 매개로 지역공동체 문화를 만들고 가치를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역 문제를 파악하고 지역 자원을 조사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공동 육아, 방과 후 교육, 환경생태 교육 등과 같은 지역 기반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다. 공동 작업을 통해 책장을 손수 만들어보거나 인테리어 작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여 이참에 작은도서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 볼 법도 하다. 몇몇 작은도서관을 방문하면서 천편일률적인 풍경이 아쉽기도 했다. 작은도서관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 서점을 비롯해 일반 상업공간은 콘셉트를 정하고 브랜딩을 해 홍보한다. 생각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개성과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도서관도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닌,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서점들이 하는 일을 도서관이라고 못하랴. 도서관도 매력적으로 변신하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지역 공동체만 모이는 공간이 아닌, 시민 모두가 드나들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도서 구입에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기에, 상황에 따라 지원금액을 늘릴 필요가 있다.
책만 빌려보는 공간이 아니다
도시를 공부하는 필자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 빌려보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책을 기반으로 복합 문화를 향유하고 사람이 섞이는 사회적 공간이다.
도서관과 같이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내는 공간은 직접적으로 당장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국가의 자금과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도서관을 시장 논리로만 재단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필자는 한 시민으로서 앞으로도 도서관 혜택을 누리고 싶다. 이 글을 쓴 솔직한 이유다. 어려서는 '두 번째 공부'를 하는 공간이었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넓고 깊은 세상을 간접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빈부 격차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일단' 많아지면 좋겠다 나아가 201동 주민과 107동 주민 간 연결의 끈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