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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1.

복지센터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센터에서 연결해주신 정신의학과 치료 덕분에 저는 잘 지내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두 달 동안 저를 궁금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화로 말씀드릴 그간 저의 이야기를 긴 글로 대신해 전합니다. 

참사 이후, 저는 제가 사는 이 나라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이런 점들이 제게 참 중요해졌달까요. 

참사가 있기 전엔 나라에 관심이 없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나라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었습니다. 20대 중반, '세상은 바뀔 것이다'라는 희망이 있을 때 저는 시사 방송도 했었고, 시사 책도 냈었던 적이 있었지만 한 5년 정도 하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참,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구나.'
 
 세월호참사 1주기인 지난 2015년 4월 16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세월호참사 1주기인 지난 2015년 4월 16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2018년 방송에서 이런 멘트를 직접 쓰고 읽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랜드 화재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까지. 우리 사회는 지난 몇십 년간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 같지만, 그다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 안전에 대한 사고였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매번 그때마다 피로 쓰여진 법률 제정과 안전 규칙들. 그렇다면 언제까지 피로 쓰여져야 할까.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학교를 한창 다니던 그 해, 2014년. 세월호가 뒤집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뉴스로 지켜보고, 그 이후 몇 년간 뼈아픈 정쟁으로 이어져 전 국민에게 생채기로 남았던 그 시간을 보면서 저는, 더이상 나라에 관심이 없어져 갔던 것 같아요. 

희망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보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이럴 거면 그냥 나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소모적이기만 하고, 공격을 받을 일들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저를 지배하고 죽은 듯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냥 나만 잘되자. 돈 되는 일만 하면서 살자."

방관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가장 편한 길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던 방송도 긴 휴지기를 갖겠다고 선언하고, 쓰던 글도 그만뒀고.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었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참사 현장에서 살아나오게 됐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상과 사회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어요.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이후로 누구보다 열심히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난 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공청회에 다녀온 이후(관련 기사 :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이상한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여당 의원들의 진심 어린 눈빛이 그래도 무언가 달라지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밝은 빛을 봤던 것 같아요.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분명히 약속했었지요, 최선을 다해서 유족분들의 마음과 생존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저는 분명히 트라우마의 유일한 치료 방법은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일 뿐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직접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국정조사 보고서 채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또 한번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이상민 찍어 내리기에 불과한 국정조사 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

제가 '진심'을 느꼈다고 생각한 대표적인 여당 의원이었습니다. 내 앞에서 같이 울었고, 유족들 곁에 와서 위로를 하기도 하던 그 의원이 국정 조사 자체가 모든 책임을 윤석열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사는 이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사의 원인은 군중밀집 관리 실패였고, 군중밀집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진상 규명의 첫 단계일 뿐인데. 이것을 '이상민 찍어 내리기', '정부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당리당략이 우선시되는 집단 행동을 목격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안건에 대해서 여야 협치가 어려운 것은 이해해도, 이 참사 만큼에서는 논의가 필요 없는 하나된 태도가 필요했다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야 합치가 이뤄져야 하는 때는,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이에요. 

나라에 대해 더욱 관심이 커져갑니다. 공청회 현장이 자꾸 생각나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지역 상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지역 상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남소연
 
인상적이었던 두 명의 국회의원, 거대 여당과 야당 소속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일하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해요. 휴정 시간에도 자리를 1분도 뜨지 않고, 열심히 질문거리를 만들고, 발표 내용 원고를 수정하고. 쉬지 않는 타자 소리와 내려가지 않는 어깨, 모니터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두 의원의 얼굴들.

유족들과 생존자들 앞에서는 진심으로 펑펑 울고, 참사 당시 부조리한 현장 대응의 문제를 지적할 때는 강인하던 모습들. 든든했습니다.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강한 자에게 한없이 강한 두 의원의 모습이, 그 숨 막히는 공청회 자리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았던 소수정당.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사회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렇게 진심으로 정치를 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라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라는 것은 믿을 만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아픈 마음으로 시작해,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 

선생님 : "불안증 약을 이제 서서히 줄여가 볼까요? 요즘은 어떤 것이 가장 불안하다고 느끼세요?"

나 : "일상이 갑자기 날아가 없어져 버릴 것 같다거나, 갑자기 모두가 죽을 것 같다거나 그런 트라우마적 불안은 많이 나은 것 같아요. 그런데 불안함을 조금 더 넓게 생각하게 됐달까요. 

세월호 아이들이 그렇게 하늘로 가버렸을 때, 나라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선생님, 이런 생각이 이해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때 이미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본능적인 생각이었어요. 나의 아이도 어느 날 갑자기 '놀러갔다 올게요' 하고 나갔다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가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돌아올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상을 지켜 줄 수 있는 나라인가. 자꾸 스스로 되물어요. 그리고 참사를 겪은 지금, 꽃같이 곱고 소중한 아이들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어요. 

다시 한번 또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라의 불안전을 내 아이에게 전해줄 수 없거든요. 지켜줄 수 없는 나라라면 아예 세상에 데려다 놓지 않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책임감 아닐까.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유족, 시민들의 글이 담긴 메모지로 '10.29이태원참사 기억의 길'이 꾸며져 있다.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유족, 시민들의 글이 담긴 메모지로 '10.29이태원참사 기억의 길'이 꾸며져 있다. ⓒ 권우성
 
나라에 관심이 많아진 이후로, 나라에 관련된 많은 기사들을 열심히 접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2023 저출산 계획과 예산안에 대해 보게 됐습니다. 예년보다 1조 원가량 예산을 더 많이 편성했다는 내용과 각종 지원금 정책들이 대부분이네요. 

저출산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아요. 예산안을 얼마나 투입하고 정책지원금을 얼마나 더 주느냐 문제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종합적인 관점이 필요하거든요. 그 종합적 관점의 시작점이 바로, 안전 관련 이슈예요.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갑자기 하늘로 간 참사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도 못하는 정부가 출산을 독려할 자격이 되는가, 내 아이를 낳아도 된다고 믿으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인가. 

저출산 대책에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관리 예산을 이렇게 더 많이 편성했다, 경찰 인원을 이렇게 늘렸다, 각종 사각지대에 CCTV를 늘리겠다, 앞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는 철저하게 원인 규명과 책임 당사자 처벌을 기본 원칙으로 하겠다' 이런 내용이 포함됐더라면, 나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꿈을 조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깊어지지 않도록, 불안을 조금은 잠재우도록 아직은 약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선생님."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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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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