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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은 서민호 개인사와 한국정치사에 많은 이슈가 제기된 연대이다. 부인 정희련이 별세하고 하상희 여사와 재혼하였다. 이 해 5월 3일 제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물론 군소정당에서도 체제정비가 진행되었다.

공화당은 2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제4차 전당대회를 열어 박정희 대통령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하였다. 제1야당 신민당은 윤보선을 다시 지명하여, 1963년 제5대 대선 때와 같은 후보자가 맞붙는 양상이었다. 
 
제6대 대통령선거 서민호 후보 벽보 1967.05.03. 제6대 대통령선거일 선거운동 벽보
제6대 대통령선거 서민호 후보 벽보1967.05.03. 제6대 대통령선거일 선거운동 벽보 ⓒ 중앙선관위
 
서민호는 3월 9일 대중당 창당대회 및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당 대표와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왜 나는 대통령후보 지명을 수락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라는 성명을 통해 후보를 수락하게 된 다섯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이유, 국민의 여망인 단일야당이란 재야세력의 총규합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전민주당 신구파의 화신인 민중ㆍ신한 양당만의 합류 재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민당의 간판을 걸고 5.16 이전 상태로 후퇴한 그들은 다른 재야 세력의 참여를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4자회담이란 명칭을 들고나와 그들만이 재야 지도자임을 자처하고 지도층 인사들은 협의대상에서 제외하였음으로 진정한 단일 야당이나 야당 단일후보가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협의대상과 참여대상에서 제외된 재야정치세력을 총규합하여 제3당의 입장에서 국민의 여망은 대신하고 실현시키려는 사명감에 의한 것이다. 

둘째 이유, 헌법상의 양당정치제도는 정책이 대동소이한 초록동색격의 보수양당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정책과 이념에 차이가 있는 보수·진보 양당제도를 뜻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보수일변도인 양당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서민대중의 권익을 옹호해주며 대변해주는 정당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보수·진보 양당정치를 구현시키고 진보적인 정책의 실현으로서 대중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이유, 이념정당인 우리 진보세력은 독자적 견지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것이 당연하나 국민의 여망에 부응키 위하여 연합전선을 펴서라도 협조할려고 제1차 지명을 보류하였고 야당 대통령후보의 단일화를 위해 양차에 걸쳐 협상을 제의하였으나 그들 재야 보수세력은 구태의연한 고식적인 사고방식과 독선적인 우월감에서 이를 도외시 또는 묵살하였다. 

그러므로 부득이 당 동지들과 뜻을 같이하는 국민들의 입후보 요구를 이상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넷째 이유, 현재로는 참된 선명야당이 부재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전 신민당은 매국적인 한일협정의 비준저지·월남청부 전쟁 반대 및 파월국군 즉시 철수 또는 의원직 사퇴를 금과옥조로 내세우고 전 민중당을 준여당시 또는 반역시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방방곡곡에 선전하였고 따라서 많은 지식인·종교인·학생 등을 선동시켜놓고 이제 그 민중당과 합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반대해 오던 것을 합리화 내지 시인함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선명야당은 부재상태로 돌아갔으므로 선명야당의 가치를 들지 않을 수 없는 사명감에서 입후보 지명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유, 지금까지의 집권당이나 보수 야당들의 조국통일관은 지극히 소극적이었고 미온적인 반면 집권욕과 이해관계만 급급해 왔다. 현하 국제정세와 국내실정에 비추어볼 때 언제 다가올 지 모르는 이 통일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당은 오직 양극을 피한 민주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우리 정당만이 추진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명감에서 대통령후보 지명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상 다섯가지 이유로 본인이 대통령후보 지명을 수락하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주석 2)


주석
2> <자료집 03>.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서민호#월파_서민호평전#월파서민호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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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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