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말] |
정신병원은 정신질환만큼 공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의원(아래 정신과의원)은 인식이 많이 나은 편이에요. 그러나 입원 가능한 정신병동을 갖춘 대형 정신병원은 치료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위험한 상태의 정신질환자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장소라는 선입견이 강합니다.
저 또한 과거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병원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겁이 덜컥 났죠. 그 정신병원은 경기도 외곽에서도 구석에 위치했고 병원 부지에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곳이었어요.
하지만 세워진 차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자니 점점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바깥은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음울하지 않았어요. 병원 외벽은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고, 작은 분수 근처에 심어진 나무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차에서 내리니 얼굴에 닿는 햇살이 따뜻했지요.
함께 온 부모와 주위를 둘러보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분했고 그러다 못해 지루해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어요. 점심 때 즈음이라서 그런지 음식이 조리되는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아다녔습니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었습니다.
정신병원이 싫었다는 어머니
의사는 초진 후, 제가 취업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심각해져 일시적으로 조현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저 스스로가 이성적이지 못한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있고, 약 복용에도 거부가 없었으므로 입원을 강력하게 권유하진 않았어요.
의사가 실은 저를 조현병이라고 진단 내렸다는 건 그 병원을 그만 다니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의사가 제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며 사실을 숨겨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어찌되었든 매달 한 번씩 정신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진료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앉아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참 길게 느껴져요. 심심하다 보니 똑같이 진료를 기다리는 보호자들과 환자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정신병원에서도 그랬지만 정신과의원에서도 방문객들은 함께 온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거나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합니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예의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라앉은 어색한 분위기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의 실마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제가 사는 도시의 정신과의원으로 치료하는 곳을 바꾼 뒤, 어머니께서 흘리듯이 말씀하셨거든요. 나는 그 정신병원이 싫었다고. 거기서 볼 수 있고 머무는 사람들과 내 자식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거길 안 가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고.
몹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생각과 달리 저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어머니는 본인과 제가 '정상'의 범주 바깥에 위치하는 사람으로 간주될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서둘러 대기실과 정신병원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습니다.
그 공간에 머무르는 행위가 사회에서 정하는 정상성의 바깥에 위치한다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거예요. 대기실에 머물던 다른 방문객들도 비슷한 감정과 느낌을 한 번쯤 가져보지 않았을까요.
아파서 병원에 가 진료를 받는 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런 흔한 일이 일어나는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정상성이 불안해진다니. 그런 연약한 개념을 가치 있게 보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신병원이 아닌 어디라도 평화롭고 또 불안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정상인'이 되기를 교육받았습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나 가치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못해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자랐고요.
그래서 항상 무리하게 자기 자신을 정상성의 기준에 맞추려 했습니다. 남들보다 쉽게 지치는데도 '다른 사람들만큼 일해야 한다'며 일부러 쉬지 않기도 했고, '옷차림은 유행을 따라야 한다'며 마음에 들지도 않는 스타일의 옷들을 사 입기도 했어요.
결과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과로해서 건강이 좋지 않아져 퇴사하게 되어 우울했고, 버리지도 못하는 십 년 전 옷들이 상자 안에서 삭아가는 걸 보며 후회하죠. 그런 일들을 겪은 데다 정신병원에서 정상성에 의문을 가진 후, 저는 굳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억지로 맞추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상성의 기준에서 삐딱하게 벗어나자 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업무량과 일하는 시기를 조정합니다. 남들보다 느리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저만의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고요. 물론 이런 생활은 현실적으로 위태롭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불안정하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밀려올 때가 많아요.
그럴때면 정신병원에 치료하러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을 떠올립니다. 새의 노랫소리와 따뜻한 햇살이 있는 공간이 간직한 느낌을 되새기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사람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 평화와 불안이 공존하고, 정상성이라는 기준은 경계가 흐릿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 하루도 꿋꿋이 정상성 대신 저만의 기준에 맞춘 삶을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