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미식의 나라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꼽지만 태국도 빼놓을 수 없는 미식 국가다. 태국은 물가도 싸서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그래서 태국으로 미식여행을 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렇게 음식이 맛있는 태국에 갔는데도 언니는 통 먹지를 못했다. 언니 입에 맞을 것 같다 싶어 고른 요리도 입맛에 잘 맞지 않는지 먹는 시늉만 내다가 접시를 슬며시 형부 쪽으로 밀쳐버리곤 했다.
미식의 나라 태국
그날의 사고도 그래서 일어났다. 언니 때문에 일어난 사고는 아니었지만 언니를 위한다고 하다가 사고가 났다.
그날은 치앙마이 시내에서 약 20여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어떤 온천을 간 날이었다. 우리는 온천욕을 하고 나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출발해 온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며 길 가에 있는 식당들을 눈여겨봤다. 겉보기에 깔끔하고 번듯한 식당이 보이면 눈에 담았다. 온천에서 나오면 그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생각이 좀 달랐다. 그는 온천 인근에 태국 전통음식을 하는 식당이 있다면서 그곳에 가보자고 했다. 검색을 해서 찾았다면서 알려준 그 식당의 메뉴들은 듣기에 그럴싸했다. 그래서 온천 오는 길에 봐뒀던 큰 길 가의 번듯한 식당들은 접고 전통음식을 한다는 그 식당을 향해 길을 나섰다.
전통 음식점을 찾아서
큰 길을 벗어나 좁은 길로 갈 때 알아봤어야 했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 그럴싸한 식당이 있을 턱이 없는데도 우리는 검색을 믿고 그 식당을 찾아 달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 분 이상 달렸는데도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식당은 고사하고 마을도 없다. 과연 그 식당이 있기는 한 걸까?
식당을 추천한 남편도 당황한 눈치다. 그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다시 지도를 살펴봤다.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텐데..."
허름한 건물 한 채가 길 위쪽에 있었다. 헛간 같은 건물이었다. 애써 찾아온 우리는 일순 당황했다. 초라해도 너무 초라했다.
여기가 분명 그 식당이 맞단 말인가? 이런 곳을 좋다고 찾아온 우리는 겸연쩍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형부와 언니는 추천한 사람이 미안해할까 봐 식당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분위기상 내가 총대를 메고 나서야 했다.
"여긴 아닌 것 같아. 다른 곳으로 갑시다."
오토바이에서 채 내리지도 않고 내가 말했다. 이 식당에서는 언니가 먹을 음식이 없다고 나는 판단했다. 우리 세 사람, 즉 나와 남편 그리고 형부는 그럭저럭 먹을 수 있겠지만 언니는 이 식당의 음식들을 한 숟갈도 먹지 못할 것이다.
언니는 입이 좀 짧았다. 깔끔하고 번듯한 식당에서는 음식을 먹지만 후줄근하고 너저분한 식당은 비위생적으로 보여서 그런지 잘 먹지 못했다. 그러니 시골구석에 있는 이런 헛간 같은 식당이야 말해 무엇 할까. 그런 까닭에 식당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나가자고 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과의 여행
추운 겨울 동안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지내자며 의기투합한 우리 부부와 언니네는 지난해(2022년) 12월 18일에 태국 치앙마이로 갔다. 사실 우리 부부는 치앙마이가 처음은 아니었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기 전인 2019년 12월에 그곳으로 가서 한 달 정도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태국 음식이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언니와 형부는 그렇지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언니와 형부는 외국 여행을 별로 하지 못했다. 태국여행도 처음이었다. 그러니 태국 음식이 낯설고 입에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칼칼하고 얼큰한 우리나라 음식과 달리 태국 요리들은 좀 들척지근하다. 그런데다가 익숙하지 않은 향내가 나는 향채와 양념류가 음식에 들어 있으니 어찌 입맛에 맞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늘 식당과 메뉴 선정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애써 찾아온 식당을 선걸음에 나가자고 하니 남편은 마음이 불편했는지 그냥 여기서 먹자고 했다. 형부도 남편의 의견에 동조하며 다른 데 가봐야 별 것 있겠느냐며 이곳에서 먹자고 했다. 언니는 분명 이 식당의 음식들을 잘 못 먹을 텐데....
언니를 쳐다보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겠다는 뜻을 담은 눈빛으로 언니가 나를 봤다. 눈으로는 내게 식당을 나가자는 뜻을 표하면서도 말은 못했다. 제부가 애써 찾아낸 식당인데 싫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좀 성급했던 것 같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정도 지낸 적이 있다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한 양 나는 설치고 나댔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차분하게 행동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내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고집을 부렸다.
애써 찾아온 식당을 싫다고 하니 남편은 기분이 좀 상했나 보다. 그는 급하게 오토바이 머리를 돌렸다. 순간 오토바이가 휘청했다. 뒤에 올라타고 있던 나는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오토바이가 쓰러지고 말았다.
오토바이 사고
하필이면 그날 반바지를 입어 맨 다리였다. 배기 가스를 내보내는 마후라에 종아리가 닿았다.
"앗, 뜨거."
비명을 지르면서 얼른 다리를 뗐지만 이미 늦었다. 배출구에 닿은 부위의 피부 껍질이 또르르 말리면서 확 벗겨졌다. 손바닥만큼 넓게 화상을 입었다. 형부가 급하게 상처 부위에 물을 부었다. 덴 데는 물을 부어 식혀야 한다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보니 잘한 처치였다. 그렇지만 이미 종아리를 덴 다음이었다.
종아리를 데었지만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피가 많이 난 것도 아니니 화상을 입은 부위에 약만 좀 발라주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이후 나는 근 한 달 동안 매일 병원에 다녀야 했다.
대수롭잖게 여겼던 화상 부위가 낫지를 않아 매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여행은 뒷전이고 치료가 우선인 나날이었다. 날마다 300밧 이상 병원비가 나갔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만 2천 원 내외지만 빠듯한 여행 경비에서 빼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