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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누워서 휴식하는 걸 좋아합니다. 푹신한 깔개 위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을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일상의 대부분 시간을 앉거나 서서 보내기 때문에 몸을 눕히면 특별하게 쉬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요.

매일 저녁 누워서 잠이 들지만, 주말에 해가 떴을 때 누우면 시간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종종 빠지게 되죠. 왠지 여유롭게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에너지가 남들보다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비교적 체력이 좋았던 십대나 이십대 초반에도 자주 누워서 휴식하곤 했습니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휴식시간마다 누워서 쉴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게 느껴져요. 이렇게 좋아하는 휴식이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직후에는 지긋지긋해져 버렸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곤해져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에너지를 거의 다 사용했어요. 어쩔 수 없이 누워서 쉬는 시간이 늘어났고 긴 낮잠을 자게 되었죠.

의도치 않은 긴 휴식
 
 하루는 상태가 좋아진 거 같아 기뻤다가 그 다음날에는 악화된 거 같은 기분에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상태가 좋아진 거 같아 기뻤다가 그 다음날에는 악화된 거 같은 기분에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 elements.envato

의사는 제가 증상이 심했을 때는 과도하게 긴장을 했기 때문인데 뇌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수면 시간이 늘어난 것도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납득하고 저는 그러려니 하며 휴식을 누렸어요.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보내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잠을 하도 많이 자니 오히려 깨어있을 때가 어색해져서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길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던 기간이 인생에서 없었거든요.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슬슬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길어진 휴식기에 대한 불안감과 해당 기간 동안 부모님에게 의존하면서 발생한 부끄러움도 존재했습니다. 끝이 정해지지 않은 휴식이었기에 앞으로 영원히 이렇게 시간을 흘러보내며 살아야 하는 걸까 무섭기도 했어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회복은 아주 천천히, 흙 속의 씨가 발아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야만 가능하다는 걸. 겨울잠을 자는 곰이 웅크리고서 따뜻한 날이 올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것처럼. 초조하고 불안해한다고 회복이 빨라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발병 이전에 크게 신체적 부상을 입은 적이 없어서 더욱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었던 거 같아요. 더욱이 정신질환은 신체의 상처보다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우니까. 하루는 상태가 좋아진 거 같아 기뻤다가 그 다음날에는 악화된 거 같은 기분에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십대에는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휴식 시간에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했고, 항상 취업을 위한 시간을 보냈어야 했습니다. 한국은 취업 면접에서 공백기에 쉬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취업 준비를 한다며 정신질환이 심해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내버려두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발병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몸과 정신의 상태를 알아챘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들었어요. 그래서 삶이 저에게 강제적으로 휴식기를 준다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휴식을 대하는 시선들

제가 제 휴식기를 어떻게 보는지와 관계없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은 제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걸 보고 '팔자가 좋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당시에는 그런 말을 듣고 속상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저를 공격해도 제가 제 인생을 보는 관점을 지켜내는 방법을 익히면서 보다 정신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타인의 부당한 시선이 제 인생을 마음대로 정의하려는 일은 빈번히 일어나고, 약점과 불편함이 많은 인생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생을 해석하는 저만의 관점을 버팀목과 탈출구로 삼는 수밖에요.  

긴 휴식을 마치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지금도 휴식기가 끝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직업이 불안정해서 많이 이직하고, 정신건강이 쉽게 악화되어 쉬느라 공백기가 자주 생겨서가 가장 큰 원인이에요.

아직도 몇 년 전과 비슷한 용량의 약을 복용하니까 더욱 그런 마음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아닌 듯이 조용히 흘러간 시간이 있어서 조금 더 나은 지금의 제가 있다는 걸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요. 누워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합니다. 자주 찾아오는 인생의 겨울을 잘 넘기기려고요. 언젠가는 찰나라고 할지라도 따뜻한 볕이 쬐는 날이 올 거고, 그때 모으는 온기로 순간을 빛내며 살기로 다짐해요.

저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기를 응원합니다. 오랫동안 비를 기다리던 꽃들이 피어났을 때 사막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우니까요.
 
 타인이 판단하고 정의내리는 '남이 보는 인생'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관점으로 보는 '나의 인생'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이 판단하고 정의내리는 '남이 보는 인생'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관점으로 보는 '나의 인생'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 Ulysse Pointcheval

#조현정동장애#조현병#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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