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로 온 지는 3년 되었습니다. 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영국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국적도 자라 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곳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기자말] |
"나는 갈색 피부를 가진 네가 싫어!(I hate you because you have brown skin!)"
학교 가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주먹질에 발길질이며 신발 던지기까지, 이제는 아들의 아침 일상이 되어버렸다. 맥시라는 아이가 새로 전학을 왔다. 학급에서 유일하게 흑인인 아들의 갈색 피부가 싫다며 노골적으로 따돌렸다.
"나 쳐다보면 죽을 줄 알아!"
6살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우면서도 그 협박의 대상이 우리 아들이라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잘려 나간 듯 아팠다.
"걔가 나를 어떻게 죽여. 말도 안 되지?"
아들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나도 세게 콧방귀를 두어 번 뀌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발버둥 치는 아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 가면서도 학교에 기어코 보내는 내가 잘하는 짓인지.
무거운 벽돌 몇 개가 심장으로 투두둑 떨어진 기분이다. 무겁다.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 말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쉽게 잦아들진 않았다.
다름을 축하하는 우리 가족만의 의식
어느 날 아침,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먹는데 6살 아들이 이슬 같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다.
"아빠, 왜 나는 갈색 피부를 가진 걸까? 나도 흰색 피부면 좋겠어."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한 말은 처음이 아니다. 두 딸이 유치원 다닐 때도 똑같이 했던 말이었다. 남편이 누렇게 토스트 된 식빵에 초코 누텔라를 바르며 말했다.
"나는 부드럽고 진한 초코 누텔라라고 해."
나도 토스터에서 막 튀어나온 따뜻한 식빵에 마멀레이드 잼을 바르며 말했다.
"나는 노란빛이 반짝거리는 오렌지잼이지."
"...나는 달콤 고소한 피넛버터잼!"
잠깐의 침묵을 깨고 아들은 땅콩 알갱이를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소리쳤다. 딸은 노랗게 구워진 베이글 위로 하얀 크림치즈를 듬뿍 발랐다.
"베이글에는 뭐니 뭐니 해도 입에서 사르르 녹는 크림치즈지! 너 그거 알아? 여름이 되면 우리 모두가 벌겋게 달아올라. 여기 딸기잼처럼."
절로 웃음이 터졌다.
"아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땅콩버터를 매일 아침 빵에 발라 먹는다고 생각해 봐. 특별할까?"
".... 아니요."
"다름은 절대 지루하지 않아. 우리는 다름을 축하해야 해!(Differences are never boring. We need to celebrate our differences!)"
모두가 "축하해!(celebrate!)"라고 외치며 우리 가족만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편의 말에 수천 번 수억 번 동의하는 바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적힌 혐오단어
토요일 아침, 쓰레기를 주우러 나갔던 남편한테서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적힌 글이었다. 사진 속 N과 C는 흑인을 욕하는 말, P는 파키스탄인을 욕하는 말이다.
스코틀랜드 인구는 96%가 백인이다. 다른 백인 소수 민족으로는 4.2%가 폴란드인과 아일랜드인이다. 다음으로는 2.7%인 아시아계. 그중 파키스탄인이 중국인보다 더 많다. 흑인은 1%를 조금 넘는다.
남편은 땅 위에 적힌 글을 보자마자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단다. 초등학생이 적었다기보다는 밤에 운동장을 서성이는 큰아이들이 적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특정 집단을 가리켜 보란 듯이 경멸하고 혐오스러움을 뱉은 이유는 뭘까. 왜 싫은 걸까?
내가 초등학생 때 영화 <부시맨>을 보고 모든 흑인은 다 부시맨인 줄 알았다. 난생처음 보는 빈 콜라병을 신의 물건이라고 생각하고선 평화로웠던 마을에 분쟁을 일으켰던 부시맨 말이다. 영화의 주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아무 상관 없는 데도 나는 흑인을 '미개인'으로 머릿속에 저장했다.
결정적으로 내 '저장'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는 2005년도에 개봉한 <Mr. 히치>를 극장에서 보면서였다. 주인공 윌 스미스가 어찌나 잘생겼던지 홀딱 반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남편을 만나면서 지금은 모든 흑인이 다 젠틀맨으로 보인다.
단어를 바꿨을 뿐인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남편한테서 다른 사진이 날아왔다. 쓰레기를 줍는 친구들끼리 N은 Love(사랑)으로 P는 Beautiful(아름다움)으로 C는 Compassion(공감)으로 바꿔 적었단다. 무겁고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집단을 내 나름대로 '이렇다', '저렇다' 저장하고 정의할 때가 있다, 기계가 아닌 이상 한번 저장된 인식이 쉽게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우리는 안다. 새로운 것들.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것들. 나와 너무 다른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저장하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예전의 나보다 더 괜찮은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 아주 멀리서 말고 내 이웃부터 돌아보기다.
아들의 친구 헬리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헬리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지 8개월이 됐다. 우크라이나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와 아들이, 스코틀랜드에서 0.001%나 될까 하는 우크라이나인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하할 일이다. 생일, 결혼, 환갑처럼 기쁘고 즐거운 경사다.
어린 멕시와 땅바닥에 나쁜 글을 쓴 친구들도 곧 알게 되리라 믿는다. 다름은 절대 지루하지 않다는 걸. 또한 함께 축하했을 때 기쁨이 두 배, 열 배, 백 배, 만 배가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