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을 비판한 기자가 고소·고발을 당했다는 뉴스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이 직접 고소·고발에 나서고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권력기관의 고소·고발로 인해 고초를 겪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울러 언론의 비판을 수사로 입막음 하려는 권력은 정당한가를 묻는다.[편집자말] |
450일.
'UPI뉴스' A기자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인을 취재한 뒤, 수사와 송사를 겪은 시간들이다. 경찰 수사부터 1심 판결까지 450일.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를 취재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것이 이렇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권력 취재를 불법으로 모는 수상한 시대, 그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측근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10월 27일] 대통령 지인의 사무실 취재
A기자는 2021년 10월 27일 오후 11시 49분경, 후배 B기자와 함께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황하영 동부산업 사장 사무실을 찾았다. A기자는 당시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윤석열 후보의 지인들을 검증하는 기획 취재를 하고 있었고, 윤 대통령 40년 지기인 황 사장도 주요 취재 대상이었다.
행운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방문했을 때 황 사장 사무실의 문은 열려있었다. 그동안 여러 기자들이 다녀갔지만, 문이 잠겨있었던 사무실이었다. 황하영 사장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노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황 사장은 없었다. 사무실 직원은 황 사장과 관련한 그의 질문에 "모른다"고 건조하게 답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사무실을 나왔다.
건물을 나온 A기자는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묻지 못한 질문들이 있었다. 사무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A기자는 문이 열린 사무실로 들어갔고, 직원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와 동행했던 B 기자는 사무실 내 황하영 사장 집무실에서 몇 장의 사진도 찍었다. 직원이 들어왔지만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머물렀던 시간은 10여 분 남짓,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었던 방문 취재였다.
하지만 이틀 뒤 황 사장 측은 A기자를 주거침입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2021년 11월 23일] 관악경찰서로 갔다
"경찰에서 끝날 줄 알았어요. 정말 이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동이었거든요."
A기자는 황 사장 측에서 주거침입 혐의로 자신을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덤덤했었다. 늘상 하는 사무실 방문 취재였고, 사무실 직원들과도 별다른 마찰이 없었기에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경찰에서 당연히 '혐의없음'으로 처리할 줄 알았다. 고발장을 접수한 강원 동해경찰서가 정식 수사에 착수했고, 그를 조사하겠다고 불렀다.
2021년 11월 23일, 그는 촉탁 조사를 맡은 서울 관악경찰서로 가서 2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다. 예정된 취재 일정들도 조정해야 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받은 조사였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경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서 '정말 기소까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A기자 사건은 2021년 12월 1일, 서울남부지검으로 송치됐다. '기소의견'이었다.
[2022년 5월 23일] 또다시 검찰 조사
서울 남부지검이 출석을 통보해왔고, 2022년 5월 23일 그는 검찰에서 3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혐의 내용이 복잡하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진술을 하고 조서를 확인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게 소요됐다.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와의 회의, 사건 자료 검토 등에도 시간을 써야 했다. 사건 자료 열람을 위해 수사기관을 오고 가면서 느끼는 피로감도 상당했다.
취재를 하는 와중에도. 변호사로부터 수시로 걸려 온 전화는 받아야 했다. 업무의 1순위가 사실상 '취재'가 아닌 '수사 대응'이 돼 버렸다. 회사에서 변호사 선임 등 법률 지원을 했지만, 실질적인 대응은 피의자인 그의 몫이었다.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또다시 검찰 소환 통보가 날아오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A기자는 심리적 압박감을 받았다. 한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2022년 11월 21일] 집으로 날아온 법원 등기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부터 공판기일통지서가 A기자 집에 등기로 날아왔다. 검찰은 장장 6개월을 수사한 끝에 A기자 기소를 결정했다. 담당 수사 검사가 수차례 바뀐 끝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통상 범죄 혐의 사실이 가벼울 경우 약식 기소를 하지만, 검찰은 A기자에 대한 정식재판(구공판)을 청구하면서 재판정으로 불러냈다. 공판기일 통지서는 법원의 공식적인 통보였다.
건조한 법률용어로 된 통지서가 날아오자, 그의 가족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법원 명의의 문서 한 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녀들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A기자 아내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을 것"이라고 다독였지만 A기자도 자신의 말을 장담할 수 없었다. 법원 취재를 하면서 피고인이 법정 구속되는 현장을 봐왔던 그였다. '잘못하면', '정말 최악의 경우라면' 자신도 그런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아요. TV를 보다가 법정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그 순간 (피의자로 기소가 됐다는 사실이) 트라우마가 돼서 떠올라요. 이게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예요."
[2022년 11월 9일, 2023년 1월 16일] 피고인석, 기자가 앉았다
2022년 11월 9일 오후 2시 서울남부지법에서 A기자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 진행 상황을 알리는 법정 앞 전광판의 피고인란에는 A기자, 그와 동행한 B기자의 성(이름은 oo 처리)이 적혀있었다. 이들에게 적용된 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공동주거침입) 위반 혐의. 법정에 선 그는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날 공판에는 수사 검사까지 참석했다. 이번처럼 사안이 복잡하지 않은 사건에서 공판을 전담하는 검사가 아닌,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검사가 공판에 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이 이 사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검찰은 A기자의 두 차례 사무실 방문을 '주거침입'이라고 주장했고, A기자 변호인은 "공소제기가 부적법하다"고 맞섰다.
A기자도 "검찰이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애초 대통령 지인이 관련된 사건이 아니었다면 기소까지 왔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통령 측근과의 법정 싸움,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손이 작용하고 있음을 그는 직감했다. 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헀다.
"검찰 인력을 동원해서 공소 유지를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것 같아요. 단순 주거 침입 사건에 무슨 검사 둘이나 오나요. 법원 공판 많이 봤는데 수사검사가 나오는 건 처음 봤어요. 분명히 위에서 시켜서 기소를 한 건데, 우리가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아마 더 치열하게 싸우려고 하겠죠.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요."
법원 공판은 지난 1월 16일에도 열렸다. 검사 측은 A기자가 동의를 받지 않고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주거침입' 혐의를 거듭 강조했다. 당시 사무실 CCTV에 녹화된 영상 등을 증거물로 제출하고 A기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적하면서 '범죄 의도'라고 주장했다. 피고인 심문에서 검사는 검찰의 A기자 수사를 비판하는 언론 기사들을 언급하면서 기사 의도를 추궁하기도 했다. A기자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물어볼 문제"라고 반박하면서 공방전은 계속됐다.
판사는 이날 추가 공판 없이 2월 15일 선고를 내리겠다고 했다. 재판이 긴 시간을 끌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더 끌지 않겠다고 하니 차라리 후련하다"고 말했다.
[2023년 2월 15일] 주거침입 유죄
A기자의 선고공판이 열리는 서울남부지방법원 3층 법정, 법정은 선고를 앞둔 피고인들로 가득 들어찼다. 이날도 여러 피고인들이 징역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방청석에서 대기하던 A기자도 구속돼 들어가는 피고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선고를 받기 위해 법정에 선 A기자는 굳은 표정으로 판사를 바라봤다.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다."
판사는 A기자에게 벌금 300만 원, 후배인 B기자에게는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주거침입 혐의 일부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A기자가 사무실을 재방문할 당시, 동행한 B기자가 황 사장 집무실을 들어간 행위가 주거침입이라고 봤다. 사무실 방문이 공익적 목적의 취재였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A기자는 법정을 나오면서 "참, 할 말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언론의 공익적 역할은 아예 고민도 없는 양비론에 입각한 판결"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A기자는 다음날인 16일 항소를 결정했다. 항소 결정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기자 생활을 해오면서 공익적 목적으로 사무실을 방문 취재한 행위가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검찰도 2월 22일 A기자에 대해 항소했다. 검찰도 순순히 끝낼 생각이 없다.
경찰 수사부터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450일. 항소를 결정하면서 A기자는 또다시 송사 준비에 들어갔다. 고작 벌금 몇 푼 내기 싫어서가 아니다. 그의 취재는 정당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으로 바로잡기 위해서다. 권력을 취재하고 감시하는 선후배 기자들을 위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