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공평하게 흘러갔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속에 살아온 삶, 힘겨웠던 하루하루는 노년의 삶을 돌 볼 기회조차 없었다. 무엇이 그리 중요했는지,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했다. 휴일까지도 출근했고, 아침부터 밤까지 젊음을 쏟아부었다. 왜 그랬을까? 직업이 가르치는 일이니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의무요 사명으로 살아온 이유다. 내 아이 잠 잘 때 출근했고, 잠이 들어야 퇴근했다.
왜 그렇게도 열심히 살았을까? 노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월은 공평하게 흘렀고, 변화의 바람이 불어 명예퇴직을 해야만 했다. 가르침이 필요없는 듯한 현장, 어떤 명목으로도 버틸 힘이 없었다. 명예퇴직, 살아오면서 늙음에 대비하지 못한 사람은 걱정이 막아섰다. 은퇴하면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은퇴의 삶을 만나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까? 은퇴하고 현장을 떠난 날, 시원하기보단 겁이 났다. 평생을 일에만 매달리며 살아왔다. 시간이 아까워 시간 단위로 계획하며 살아왔다. 일이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 아내는 아직 현직에 있었으니 홀로 남겨진 외톨이다.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사람들의 심정을 알게 된 현실이었다. 사막에 홀로 남겨진 느낌,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보낼 것이 걱정이었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했고, 남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알게 했다.
평생 삶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였다. 새벽 5시에 시작한 삶은 늦은 밤이 되어야 끝이 났다. 문득, 바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나의 삶은 무엇이던가? 흐르는 세월을 일만 하며 보내야 하나? 삶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노년을 생각한 것이 아닌, 현재의 삶이 서러웠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고, 시간을 나누어 보기로 했다.
운동하면서 갖가지 취미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배낭여행을 해 봤고, 가난이 한이었던 색소폰 연주에 눈을 돌려도 봤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채화를 그려보기도 했다. 드럼을 치기도 했었고, 하프 마라톤도 뛰어 봤다. 바쁜 삶에 보상을 받고 싶어 기웃거린 일들이다. 기어이 은퇴를 해야 했고 막막한 시간이 왔다. 느닷없이 떠오른 취미 생활, 은퇴의 삶을 설계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엄청난 힘이었다. 어떻게 하루를 살아갈까? 서서히 삶의 방향이 설정되었다.
은퇴 후 삶이 시작되었다
일과의 시작, 새벽 5시에 하던 운동을 두세 시간 늦추었다. 늦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우선이었다. 저녁이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수채화를 그리고 색소폰 연주실을 들락거렸다. 아침 운동에 가뿐해진 몸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 오전은 순식간에 가버린다.
새로이 일기 시작한 자전거 붐, 자전거를 준비하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가까운 곳을 돌고 돌며 운동도 하고, 맛집을 찾아 나섰다. 봄과 가을이면 전국을 누비는 일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전원의 꿈을 일구어준 것도 자전거였다. 근처 전원주택을 찾아 나서는 역할을 해 준 것이 자전거였다. 기어코 찾아낸 전원에서 살며, 수채화를 그리고 색소폰을 연주하며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가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바람과 햇살만이 가득한 산골짜기, 흐르는 도랑물만이 옹알거린다. 심심하면 산새들이 말을 걸고, 지나는 뻐꾸기가 잠을 깨운다.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에 감사하며 아직도 참새와 눈치싸움 중이다.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전세 계약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은퇴 후의 삶, 늙어가는 청춘이 세월에 반항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늙어가는 청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덧붙이는 글 | 은퇴 후에 갑자기 만난 하루, 지루하기만 했던 삶을 다시 설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없는 노년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언제나 고민이었던 삶이 새롭게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글입니다. 전원에서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써 보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