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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대인 관계를 맺을 때, 나이 차이가 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야! 너 몇 학번이야?"
"민증 까!"
"난 빠른 73."


이런 표현들은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하다. 어떻게 해서든 서열 관계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 우리네 습관이다. 특히나 여러 명이 모이는 모임에서는 교통정리가 빨리 되어야 그다음이 순조롭다고 여겨진다. 예민하게 굴 때는 정말 두세 달 차이로 언니 동생이 갈리기도 하는데, 때론 그런 관계가 서로를 오히려 더 친숙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유교적 사고인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입각해 굳어진 문화이리라. 이렇게 몇 살 차이 안 나도 호형호제해야 하는데, 가족 간이라면 더 하다. 사촌들끼리는 정말 며칠 차이로 형제가 갈린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도 몇 달 위인 사촌오빠가 있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어른들께 혼났고, 또 당사자들도 당연히 받아들였다.

또한 부모님 성함도 함부로 입 밖으로 내면 안 되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어버이날 편지를 썼는데, 겉봉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내 이름을 적고 그 옆에 본제입납(本第入納)이라고 써서 선생님께 칭찬받은 기억이 있다.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는데 남편을 계속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가족 간의 호칭은 더더욱 복잡하다, 형님, 자형, 제부, 형부, 시누, 이모, 고모, 삼촌, 올케... 나이와 관계, 서열에 따라서 세분화된다.

단순히 나이나 위치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름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우연히 만나는 정체불명(?)의 사람들까지도 너무나 '가족스러운' 호칭으로 우리를 부른다.

옷을 사러 가면 "언니, 이거 입으면 봄에 딱이야!", 병원에 가면 "아버님, 이거 수술 안 하셔도 됩니다. 운동하세요." 직종도 모르면서, 사장님, 사모님, 선생님이 나오기도 하고 가족도 아니면서 언니, 오빠, 어머님, 아버님이 등장한다.

어쩌면 이름이라는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 카톡에서도 자기 이름을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냥 나연엄마, 주연맘 이런 식으로 자식 이름을 빙자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참 친해졌는데도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남편에게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막상 이름이 뭔지 몰라서 난감할 때도 있다. 그들의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엄마뻘인데도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된다
 
 뜨개질
뜨개질 ⓒ 픽사베이

서양 사람들은 나이 고하, 직종을 막론하고 이름을 쉽게 부른다. 소위 말해서 콩가루다. 캐나다에서 살게 되기 전부터 그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영화에서도 나오고, 한참 손윗사람도 그냥 '너(you)'라고 부르면 되는 곳이라는 것을 이제 누구나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게 늘 쉽지만은 않았었다.

미국에 잠시 살았을 때 나랑 친했던 이는, 딸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였다. 그녀는 나보다 꽤 나이가 많았기에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언니라고 부르게 될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말도 잘 통했고, 생각이 깊은 그녀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대략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어머니뻘 되는 분들도 친구가 되면 다 이름을 부르고, 'you'라고 말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게 참 송구스러웠다. 나랑 같이 바느질을 하는 캐나다인 친구들은 그들의 딸과 내가 동갑이고 그들의 손주들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들을 아무개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언니도 아니고, 아주머니도 아니고, 그냥 이름을 바로 부른다. 내가 정중하게 부른다면  거리감을 두는 거라고 느껴져 질색을 할 것이다.

직장 상사도 이름으로 부르고, 집의 유리창을 바꾸려고 견적을 내러 온 사람도 이름을 부른다. 차를 점검하러 가도 그 직원과 이름으로 대화를 나누고, 커피숍에 가서 주문해도 이름을 물어본다. 이곳에서는 서로를 부르는 가장 편한 방법은 이름이다. 

가족끼리 역할로 부르지 않는 친근함

우리는 재혼 부부다. 노년에 만나서 결혼했고, 각자 자식이 있다. 남편의 자식들과도 친하게 지내는데, 그들은 나를 새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내 이름을 부른다. 이미 삼십대인 그들에게 새엄마가 필요할 리도 없는데, 굳이 그렇게 부르면서 서로 어색한 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겐 다 짝이 있는데, 그 짝도 나와 내 남편을 이름으로 부른다. 가족 간에 모두 평등한 관계가 형성된다.

역할로 불리지도 않고, 상하를 구분하지도 않는 이 습관이 익숙해지니 참 쉽고 편하다. 특히나 영어로 모든 역할에 따른 호칭을 외워야 했다면 참 어려울 뻔했으니 나로선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어머니를 부를 때, 서툰 발음으로라도 또박또박 어머니라고 부른다. 영어로 맘(Mom)이라고 부르자면 이상하겠지만, 한국어로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어쩐지 더 마음이 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이렇게 한 지붕 밑에서 우리는 또 두 가지 문화를 존중하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내용이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호칭#이름#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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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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