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 의원은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지만, 기초지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예산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만큼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서울시 강동구를 중심으로 구의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자치구의 정책들이 중앙정부와 광역시 정책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국정철학과 기조가 어떻게 지역에서 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의원이 어떻게 견제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 알리고자 합니다.[기자말] |
지난 12일 '제301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연 서울시 강동구의회는 때아닌 '사과' 논쟁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 전 회기에서 이수희 구청장이 원창희 의원의 '5분 자유발언' 도중 무단으로 회의장을 이탈해서 벌어진 일인데요. 2021년 서울시의회 시정질의 도중 갑자기 퇴장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원창희 의원은 MZ세대를 대변하여 구청 공무원들의 '블라인드 앱'에 올라온 소위 구청장의 '갑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공무원들 상대로 구청장이 폭언과 호통을 친다는 의혹이었는데요. 구청장은 이 발언 도중 무단으로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강동] "사장의 샤우팅, 도망이 답…" 강동구청 mz세대 '댓글' 파장).
이에 대해 의회는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를 촉구하며 내용증명까지 보냈습니다. 구청장은 재량으로 판단하여 의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고, 민의의 전당인 의회가 개회되면 구청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법률 조항에 따라 출석요청을 받아 참석하는 것이 법적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의원의 발언 내용이 구청장 본인의 뜻과 다르다고 하여 무단으로 회의장을 이탈하는 것은 의회를 극도로 경시하는 태도입니다.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이 깊어지자 이 구청장은 결국 이번 임시회 1차 본회의 때 사과를 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했고, 의장의 개회선언 이후 단상에 올라 미리 작성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강동구의 추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시급한 현안들을 생각할 때 정파적인 이해득실이나 개인적인 명예는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이전 본회의에서 이석하게 된 상황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겠습니다. 이전 본회의장에서 이석한 사안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비록 법령이나 조례에 명명 규정을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의회와 갈등을 일으키게 한 점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구청장과 의원님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우리 구청 직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못해 읊은 이 구청장의 사과문. 그러나 본 의원은 이번 구청장의 사과 아닌 유감표명에 다시 한 번 유감을 표하고자 합니다. 비록 구청장은 처음으로 유감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전혀 상관없는 추경에 대한 걱정과 직원에 대한 미안함을 들먹이며 본질을 흐렸기 때문입니다. 추경은 아직 두 달 가까이 남았고, 오히려 공무원들에 대한 자신의 갑질이 이슈가 되었는데 그런 공무원이 안쓰럽다고 말하는 모순이라니...
구청장과 대통령의 공통점
이수희 구청장을 보고 있으려니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일을 몇 배로 크게 만드는 현 정부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지난해 가을 온 국민을 듣기평가하게 만들었던 소위 '바이든, 날리면' 논쟁을 떠올려봅니다. 대통령실은 당시 국민의 약 60%가 '바이든'이라고 들었던 윤 대통령의 발언을 '날리면'이었다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기원전 3세기 중국에서 벌어졌던 위록지마, 즉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던 논쟁이 다시 불붙은 것입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 본인이 나서서 미안하다고, 유감이었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을,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고 사과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외신은 더욱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집중했고, 국정 에너지는 낭비되었습니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하여 애꿎은 방송국 탓을 했지만 이는 오히려 현 정부의 비민주성을 보여주였으며,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질문을 한 기자를 향해 욕설을 했다가 깔끔한 사과로 위기를 넘겼던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작년 가을 많은 이들에게 황망함을 안겨준 이태원 참사 때도 대통령은 쉽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말도 안 되게 목숨을 잃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하는 데 주저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윤 대통령은 이렇게 사과를 힘들어하는 걸까요? 자신이 결코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자세가 사과 자체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깔끔한 사과를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수희 구청장에게 묻습니다. 깔끔한 사과가 그렇게 힘든가요? 사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고귀한 행위 중 하나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깨우칠 수 있고,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잘못을 용서해달라 부탁할 수 있습니다. 사과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만큼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며, 따라서 사과를 하는 이는 많은 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부디 구청장은 이와 같은 진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구청장의 사과 아닌 유감 표명에 유감을 표하며, 의회와 집행부의 협치를 위해 구청장의 적극적인 소통을 요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