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이은해는 무기징역, 피고인 조현수는 징역 30년에 처한다."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른바 '가평계곡 살인사건'에 대해 지난해 10월 27일 인천지법 형사15부(재판장 이규훈)가 내린 1심 선고결과다(26일 선고된 항소심에서도 이 선고결과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물속에 빠진 채로 그대로 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사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 행위라고 유죄이유를 밝힌 바 있다.
바로 그 가평의 다른 계곡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2021년 9월경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 조재윤 하사는 임관 아홉 달 만에 가평계곡 물에 빠져 숨졌다. 물을 무서워했던 조 하사는 "남자답게 놀자", "빠지면 구해주겠다"고 다이빙을 권한 선임 부사관들의 말을 믿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그 계곡에서 살아 나오지 못했다.
수영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물에 빠지면 구해주겠다고 안심시킨 뒤 수심이 깊은 계곡에 스스로 빠지게 하여 죽음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범행수법과 그 결과가 이은해가 벌였다는 '계곡살인사건'과 유사하기에 이 사건엔 '군대판 계곡살인사건', '이은해 판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재판결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비슷한 범죄행위에 완전히 다른 결론
"피고인들은 각 금고 8개월에 처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들에 대한 위력행사 가혹행위는 각 무죄."
조재윤 하사 선임 부사관들에 대해 지난 3월 23일 제2지역군사법원 제3부(재판장 중령 김종일)이 내린 선고결과다. 재판부는 당시 부사관들이 안전장비를 갖추고 다이빙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다이빙 지점에서 머뭇거리는 조 하사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해 안전장비 없이 스스로 다이빙하게 했다며 유죄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군형볍상 처벌규정인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에 대해선 "선임들이 조 하사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던 유족은 판결결과를 듣고 무너졌다. 지난 4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고 조재윤 하사 유족인 조아무개씨는 판결 뒤 이렇게 말했다(관련 기사:
계곡 사망 육군 하사 사건... 납득 안 가는 법원 판결 https://omn.kr/23ero).
"우리 아이(조재윤 하사)는 물을 너무도 무서워했어요.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 장소에 해수욕장이 포함되어 있어서 바닷물이 무서워 수학여행까지 포기한 아이예요. 그런 아이가 어떻게 자발적으로 물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군대에서 선임들이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어요. 한두 번 안 간다고 거절했지만 선임들이 가자고 하면 갈 수밖에 없잖아요. 위력에 의해 계곡에 가서 다이빙 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죽기를 자초했다는 말밖에 더 되나요?"
군검찰, '봐주기 수사' 논란
군검찰은 최초 이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정리했다. 두려움에도 도전하려는 동기를 북돋아준 것일 뿐 상급자의 강요는 없었다며, 책임을 수영을 하지 못하면서 선임 부사관들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다이빙을 한 고 조재윤 하사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도 피해자의 사망을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조 하사 사망 전 4개월 전에도 같은 계곡에서 다른 부사관이 깊은 물에 빠졌다가 구조되었던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군의 '봐주기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재윤 하사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2022년 10월에서야 군검찰이 이전 결론을 뒤집고 조재윤 하사의 선임 부사관 2명을 불구속 기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다만 살인죄가 아니라 '과실치사죄', 그리고 군형법상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로 기소했다.
군사법원은 이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은 그러나 검찰이 과실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조재윤 하사가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고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선임 부사관들이, 이미 4개월 전에도 같은 사고가 발생한 그 계곡에서 위력행사로 다이빙하게 했다면 이는 이런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행한 것이므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군검찰의 공소사실 자체가 모순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유족 측에 따르면, 선임 부사관들 변호인 측이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조차 "위력행사가혹행위와 과실치사죄가 하나의 공소장에 논리적인 모순없이 함께 기소될 수 있는지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담겨져 있다고 한다. 위 두 혐의가 나란히 함께 적용됐던 군검찰의 공소사실부터가 모순이란 주장이다.
비록 가해자 변호인 측은 무죄 주장을 위해 이같이 지적했지만, 실제로도 이 두 혐의를 한 번에 적용하는 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군사법원이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배경에는, 아마도 군검찰이 제기한 혐의의 논리적 모순 탓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유가족, 공소장 변경 요청... 살인의 '미필적 고의' 고려하라는 것
군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 군검찰 모두 항소했다. 2022년 7월 고등군사재판이 폐지되면서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다만 공소유지는 군검찰이 담당한다). 첫 공판기일은 오는 5월 31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서관 403호 법정에서 열린다.
군검찰이 법원 측에 제출했다는 항소이유서를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위력행사 가혹혐의'에 대한 무죄선고를 항소심에서 바로잡아 달라는 내용이 담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애초에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공소사실을 바로잡지 않는 이상, 항소심에서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한편 유족들은 군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할 계획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조재윤 하사가 4미터 계곡에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결과를 인식했고 자신들이 구조할 수영실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계곡으로 뛰어 내리라고 위력을 행사한 선임 부사관들의 행위는, 단순과실이 아니라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므로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족들 주장처럼, 위력행사 가혹혐의와 과실치사죄는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아 보인다. 군검찰이 유족들의 요청대로 공소장 변경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군검찰이 기존의 봐주기식 수사라는 오명을 제대로 바로잡고, 실추된 군수사기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정규씨는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 챈스'의 구성원입니다.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통해 피해유가족에 대한 법률지원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