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다세대 주택이 모여있는 동네 끄트머리, 산 바로 밑에 있다. 어린이집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아서, 나는 3년째 매일 골목길을 운전해 아이를 데려다준다.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고 경사가 가파르며, 빌라와 주택 사이 곳곳에 차가 세워진 골목이다.
이면도로 안에 녹색 칠을 해 '어린이보호구역' 보행로를 만들어놓았지만, 도로의 폭이 좁은 탓에 이 보행로를 침범하지 않고 양방향에서 운전하기란 불가능하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 무용지물인 보행로를 지그재그로 걸어 등하교를 한다. '초라니'(초등학생과 고라니를 합친 말)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질서정연하게, 조심스럽게, 앞뒤 차량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예측하고 대응하면서.
"뒤를 보지 않고도, 뒤에서 차가 오는 걸 알고 슬금슬금 옆으로 피해서 간다니까."
매일 도로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교통 감지 능력에 대해 감탄하자, 친구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요새 전기차는 소리도 안 나는데..."
아, 친구의 말이 맞다. 필사적으로 아이들이 교통 감지 능력을 키워가는 동안, 엔진 소리는 작아지고, 차체는 커지고, 도로 위의 차는 더 많아졌다. 교통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동안, 개선된 것이라고는 펜스조차 세워지지 않은 보행로가 만들어진 것뿐이다. 아이들의 조심성을 칭송했던 나의 순진함이 부끄러워 할 말을 잊었다.
'안전'은 계급적 가치... '초품아'가 없다면
이 위험한 등하굣길의 한국적 대안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로 '영끌'해 이사가는 것이다. '초품아'는 단순히 초등학교와 가까운 것을 넘어, 초등학교까지 도로를 건너지 않거나 2차선의 도로만 건너는 아파트를 말한다. 1000세대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거나, 신도시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생겨난 아파트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이 아파트들은 비싸다. 스쿨존 사고는 집값이 비싸지 않은 동네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나를 포함한) 영유아 양육자는 '애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이사를!' 결심한다. 안전은 계급적 가치가 된 지 오래다.
'초품아'로 이사갈 수 없다면? 스스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보호구역 제한속도 '30'을 대문짝만하게 새긴, 형광 노란색의 가방 덮개를 본 적 있는가? 이 '가방 안전 덮개'는, 운전자에게 속도제한을 알리고 어린이가 운전자의 시야에 들어오도록 지자체나 교육청이 보급한 것이다.
이 덮개 덕분에 한 명의 사고라도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친다. 가방 덮개를 덮었다 풀었다 하는 것이 귀찮은 아이, 가방 덮개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아침 실랑이하는 부모와 교사. '제한속도를 지켜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피해자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다.
오늘도 위험한 등하굣길을 다니는 어린이들
대전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만취운전으로 9살 배승아양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산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한 초등학생이 굴러온 화물에 부딪혀 사망했다. 수많은 죽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길은 요원하다.
좁은 차도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하려고 하면, "통행이 불편해지잖아요"(2022년 서울 강남구 언북초 학생이 사망한 곳은 학교 후문 앞이지만 인도가 따로 없었다. 2019년 보도를 설치하자는 요구가 있었지만, 통행 불편을 이유로 반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무산되었다)라는 이유로, 학교 앞 주정차를 금지하려고 하면 "근처 상인들은 어떻게 장사를 하라고요"(2021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불법 주정차가 금지되어있지만, 일부 지자체는 상권 활성화 등을 이유로 점심시간 주정차를 허용하고 있다)라는 이유를 댄다.
그러는 사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보호받지 못한 어린이는 죽거나, 다치거나, 오늘도 위험한 등하굣길에 오른다. '30'이라는 숫자가 박힌 야광 가방 안전 덮개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는 좁은 이면도로를 지나,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배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