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시간강사, 무명작가의 삶을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담아낸 <아무렇지 않다>를 출간한 최다혜의 신작 <우월하다는 착각>이 지난 4월 30일에 출간되었다. 최다혜는 전작에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 세 인물의 개별적인 사연을 통해 동시대의 보편적인 부조리에 대해 질문했다.
작가의 권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서'에 대한 이야기와 시간강사로 삶을 이어나가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던 비정규직의 삶, 돈이 안 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는 예술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런 삶은 한 사람의 이야기로 간주될 수 있으나 고개를 잠시 돌려 주변을 바라보면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얼굴이다. 이런 이유로 최다혜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사회에서 밀려난 세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에 곰곰 출판사에서 펀드의 형식으로 <우월하다는 착각>을 새롭게 출간했다.
전작에서는 작가 개인의 삶이 픽션의 형태로 작품에 반영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투명하게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일기의 형식으로 자신을 고백한 것이다.
물론, 이런 고백이 우리가 흔히 아는 레전드급의 고백은 아니다. 그러나 한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값지다. 또한 이런 형식은 한 명의 무명작가가 '진정한' 작가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탄생서사'의 한 축과 닮아 있다.
독자들은 이런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가'되기'를 탐닉해 보거나 일부의 독자들은 실제로 작가가 되는 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물론, 누군가는 모든 작가의 작가탄생 서사가 의미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아무렇지 않다>를 출간한 작가라면 조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동시대에 그래픽 노블 작가가 국내에 희박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작가와 만화가와 웹툰작가의 공통점은 그림과 말풍선으로 자신의 '의도'를 종이와 웹이라는 매체에 적응해 투영하는 것인데, 그림을 그리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웹으로 이동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종이 형식으로 운영되니 희소한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방식으로 펼쳐져 있을까. <우월하다는 착각>은 총 여섯 편의 짧은 에세이로 작가의 '의도'를 글과 그림으로 보여 준다.
"이 책은 나의 감정을 관찰한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왜 우울할까? 나는 왜 이 상황이 불편한가?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고 원인을 찾았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나'를 정직하게 인식하는 과정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최다혜는 "나의 자존을 끊임없이 끌어내리고 있던 것은 바로 나"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본인도 엄연히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작가'를 이상적인 존재로 떠받들었던 시절을 반성하기도 한다. 긍지가 부족했던 '나'를 거울을 통해 쳐다본 것이다. 그러나 다소 위축된 '나'의 이런 모습은 시간이 점차 지나가면서 작가'되기'의 과정을 거친다.
자신의 전시회에 찾아온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탐닉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쳐다보면 '미래'를 설계한다. 즉, 그녀는 "나는 이미 작가로서 완벽한 조건들을" 갖추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보잘것없었던 자신을 온전히 응시하며 과거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나'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작가탄생 서사만이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고백의 형식이 그림을 통해 색다르게 펼쳐진다. 앞서 이야기한 내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회화'의 형태로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있으니 독자들은 저자의 '의도'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이 지점은 텍스트 보기의 즐거움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최다혜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짧은 호흡이다. 짧은 호흡으로도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작가의 스타일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조금은 더 길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긴 서사로 자신의 장점을 증폭시켜야 할 때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이런 바람은 그녀의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애정 섞인 마음이다. 언젠가 긴 호흡을 통해 그녀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최다혜는 자기소개에 이런 말을 적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형식'을 <우월하다는 착각>을 통해 독자들이 마음껏 즐기기를 바란다. 최다혜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말을 적는 것으로 이 짧은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