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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에서 더 남쪽으로 달립니다. 이미 한참 남쪽인 코친에서도 8시간을 더 기차로 달렸습니다. 아침에 출발한 기차는 오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기차가 멈춘 곳은 인도아대륙의 남쪽 끝, 북위 8도의 칸야쿠마리입니다. 북쪽에서부터 내려온 역삼각형의 거대한 반도는 이 칸야쿠마리를 꼭짓점 삼아 끝을 맺습니다.
 
칸야쿠마리 역
 칸야쿠마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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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2013년에 개봉한 인도 영화 <첸나이 익스프레스>입니다. 우연히 틀어본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노래 가사에 "카슈미르에서 칸야쿠마리까지"라는 가사가 나오더군요.

카슈미르는 아니지만, 저도 인도의 저 북쪽에서부터 칸야쿠마리까지 내려왔습니다. 제 인도 여행에서 가장 북쪽으로 갔던 지역은 맥그로드 간즈였습니다. 거기서 칸야쿠마리까지, 직선으로만 2,500km가 넘습니다. 어쨌든 그 큰 인도 대륙을 육로로 종단한 셈이 됐습니다.
 
칸야쿠마리 역의 두단식 승강장
 칸야쿠마리 역의 두단식 승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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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 틈에 섞여 종착역인 칸야쿠마리에 내렸습니다. 칸야쿠마리의 기차역은 두단식 승강장입니다. 기찻길 앞쪽이 막혀 있는 형태의 플랫폼이지요. 인도라는 거대한 땅이 여기서 끝난다는 것을, 기차역에서부터 체감하게 합니다.

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서부터 멀리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런 적이 별로 없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것이 설레 약간씩 걸음이 빨라지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바다 쪽은 바라보지 않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10여 분을 걸었습니다. 곧 바닷가가 나타납니다. 인도아대륙의 남쪽 끝입니다. 사람도, 대륙도, 철도도 더 나아갈 곳이 없는 남쪽 끝입니다. 드디어 그 끝에 다다랐습니다.

날씨는 맑았지만, 인도양의 파도는 거칠었습니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힘이 거셉니다. 하지만 바닷가에는 여전히 아랑곳 않고 몸을 담그는 인도인들이 있습니다. 인도의 남쪽 끝인 만큼, 이곳도 힌두교의 성지 가운데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칸야쿠마리 해변과 시인 비베카난다의 석상
 칸야쿠마리 해변과 시인 비베카난다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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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콜카타에서 인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인도의 동쪽에서 출발한 셈이지요. 콜카타에서 서쪽으로 달렸고, 맥그로드 간즈에서 다시 남쪽으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었습니다.

흔들리는 기차와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한 적이 여럿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기차에서 자는 잠도 편안해졌습니다.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는 구불거리는 산길을 허름한 버스에 실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여행은 힘들기도 했고, 만족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인도라는 나라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나라가 다른 어느 곳보다 편안히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칸야쿠마리 해변
 칸야쿠마리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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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 칸야쿠마리에 오는 순간을 절실히 그리기도 했습니다. 인도 여행이 빨리 끝났으면 해서요. 어서 인도라는 대륙을 다 살펴보고,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는 날만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칸야쿠마리에 도착하면 눈물이라도 나지 않을까, 그때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칸야쿠마리에 도착하고 나니 별 감정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인도 여행은 익숙해졌고, 이곳 역시 내가 스쳐가는 인도의 한 도시일 뿐이니까요. 오히려 이제 인도의 남쪽 끝을 보았다는 생각에 약간의 허탈감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간디의 유해가 잠시 안치되었던 간디 만다팜
 간디의 유해가 잠시 안치되었던 간디 만다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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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한참 둘러보고도 그런 아쉬움이 잘 가시지 않았습니다. 왠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습니다. 멀리 높은 성당이 보여 찾아가 봤습니다. 작은 광장 앞에 세워진 성당이 꽤 화려했습니다. 마침 일요일, 미사를 드리고 있더군요.

서쪽으로 긴 여행을 떠났지만, 사실 저는 이전에 장기 여행 경험이 많지 않았습니다. 해외에 가장 오래 있어본 것은 3주 정도일까요. 시국이 이렇게 되기 한참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며 러시아를 여행한 것이 가장 오래 떠나 있었던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여행은 넉 달을 넘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보낸 시간보다 두 배를 넘게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그걸 생각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여행이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일까요. 그러고보니 아주 오래 기차를 탄 것만큼은 그때와 비슷하기도 하네요.
 
칸야쿠마리 성모 사원
 칸야쿠마리 성모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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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밖에 서서, 타밀어로 드리고 있는 미사를 잠시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칸야쿠마리는 의외로 기독교인 비율이 절반을 넘는 도시라고 하더군요. 역사가 아주 깊은 인도 기독교의 특성상, 로마 가톨릭과 다른 미사 방식을 따르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그 차이가 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여행 두 달이 지났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인도인의 언어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힌디도 그랬고, 타밀어도 그렇습니다. 각 지역의 다양한 언어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이어지는 여행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이들이 드리는 미사의 내용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보니, 미사 방식이 다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사 중 몇 번이고 일어서고 앉는 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 의외의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 여행에 재미가 있다고 느낍니다.
 
성당의 장식
 성당의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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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인도 여행도 그렇게 끝나갑니다. 여전히 모르는 것과 새로운 것이 가득한 곳이지만, 시간은 흐르고 일정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 푸두체리와 첸나이를 짧게 보고 인도를 떠날 예정입니다. 그렇게 인도아대륙의 끝을 보았습니다. 이제 다시 떠날 시간입니다. 어느새 조금씩 익숙해져가던 인도를, 떠날 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인도, #칸야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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