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내가 잘 먹거나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면 친척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60쪽)
<H마트에서 울다>는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작가 미셸 자우너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도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코 훌쩍거리며 읽다가 저 구절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랬네. 우리가!'
마흔다섯 살 여성으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종종 학생들이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토로하면 "안 꾸며도 예뻐"가 아니라 "안 예뻐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꾸미든, 안 꾸미든 결국엔 '예쁨'이라는 귀결 말고 처음부터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길 바라며 화장하지 않은 내 얼굴을 보여준다.
나는 지금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이다. 언젠가 바위를 뚫을 것이므로 유약하지만 비장하게 이 글을 쓴다.
화장하지 않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는 메시지는 단지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해보자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화장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몇 년 전 나는 기후 위기 문제로 쓰레기를 줄여보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플라스틱 통 사용을 줄이려고 집안의 주방세제며 샴푸, 바디워시 등을 모두 비누로 바꾸었으며, 장을 볼 땐 면주머니와 용기를 챙겨가 비닐 사용을 줄였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물티슈를 쓰지 않으며, 1년간 옷 사지 않기를 실천 중에 있고, 남에게 물려줄 수도 없는 아이의 작고 낡은 내복은 따로 챙겨두었다가 프라이팬 기름 닦는 데 한 번 더 쓴다. 단 하나의 텀블러와 에코백을 깨끗하게 세척해 가며 수년째 사용하고 있다. 웬만해선 물건을 새로 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이미 있는 물건은 최대한 오래 사용하려고 애쓴다.
화장하지 않기는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의 사용을 줄여보고자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스킨, 로션, 에센스 등 기초화장품은 알뜰하게 다 쓰고 그 이후에 새로 화장품을 사지 않았다. 아이가 쓰는 로션과 선크림을 같이 사용하며, 그 외에 일체의 기초 및 색조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멀쩡히 사회생활을 영위해 오고 있다.
쓰레기 줄이기 문제로 시작한 나의 맨얼굴을 접한 누군가는 주름과 탄력, 미백, 검버섯, 기미 등을 대신 걱정해 주기도 한다. 그러면 이야기는 다시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로 돌아가게 된다. 주름이 깊게 파여도 괜찮고, 피부가 축축 처지고 어두우며 까만 깨가 얼굴에 송송 박혀 있어도 괜찮다고, 뭐 어떠냐고.
옷 깨끗이 빨아 입고, 세수와 양치 잘하고, '다정함'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나는 그거면 충분하더라. 따듯한 마음을 나누고 같이 웃고 울며 살아가는 데 '예쁜' 외모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더라. 그래야만 하더라.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그리고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말하기 방식이 아닌 보여주기 방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래야 해! 이게 맞아!"라는 일장 연설 말고 맨얼굴로 지내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다. 나는 계속해서 똑똑 떨어지는 중이다. 낙숫물이므로.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