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5.18민주묘지에 5.18 희생자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 김동규
17일, 광주광역시의 각종 기관들은 5월 18일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냈다.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는 "(18일은)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오월정신과 민주주의 역사를 되새기기 위한 광주광역시 지방공휴일로, 휴관 안내드린다"고 알렸다.
지난 2020년 광주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지방공휴일 지정 조례'를 제정했다. 이 때문에 199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5월 18일은 '광주의 휴일'이 됐다. 관공서와 학교는 물론 일부 기업들도 업무를 멈춘다. 광주시는 "(18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일상의 업무를 잠시 멈추고 숭고한 정신을 기려보는 날"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의 영혼을 형성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위대한 사건을 기리기 위해 그간 다양한 제안이 있었다. 특히 국가의 정신을 관장하는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이를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1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내용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자 대통령실은 국면전환용이라며 후보 시절과는 다른 말을 했다.
이 같은 현실을 볼 때,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날은 반드시 오겠으나 상당한 시일이 필요해 보인다. 개헌을 위해서는 여야의 특별한 합의는 물론 국민투표까지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그간 5.18을 기념하기 위해 제시됐던 여러 제안 중 개헌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이것은 심지어 무척이나 효과적이며 모든 시민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바로 5월 18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는 일이다.
현행 헌법 전문에 4.19혁명이 담겨 있지만, 이 헌법 전문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헌법 제10조 제1항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위대한 선언이 담겨 있지만 이 문구를 일상적으로 감각하는 시민들 역시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은 3.1절을 안다. 광복절을 잘 안다.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가 5.18지방공휴일 관련 공지를 했다. ⓒ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우리들은 매년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공휴일을 보내며, 이 국가에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 날들이 중요한 가치를 지님을 일상적으로 감각한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웠던 5월 18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한다면 이것은 헌법의 여러 가치들을 그 어떤 방법보다 효과적으로 여러 시민들에게 감각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에 언급되지 않은 날들조차, 이 땅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시민들에게는 더 중요한 날로 인식되곤 한다. 5월 18일이 법정 공휴일이 된다면, 이 땅의 많은 시민들은 평온한 휴일을 보내며 '오늘 왜 쉬는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볼 것이다.
5월 18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는 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원포인트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일에 비해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한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1960년대 당시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생일은 현재 미국의 연방 공휴일이다. 개인의 생일이 독립기념일 등 몇 안 되는 연방 공휴일 중 하나가 됐다. 이 공휴일은 지난 1986년 미국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공표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킹 목사의 부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18일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이 집결했다. 이제는 모든 진영이 함께 기리는 날이다. 여야가 힘을 모아 이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8일을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로 공표한다면 앞으로 이 땅에서 그 누가, 이 국가가 기념하는 5.18을 함부로 폄훼할 수 있을까? 43년 전 외로웠던 광주를 기리는 5월 18일을 더 이상 광주만의 '지방공휴일'로 남겨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