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 아이들만 문제일까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가 학교에서 책 한 권을 받아왔다. 책 제목은 <맨 처음 글쓰기>. 앞으로 이 책으로 글쓰기 숙제를 한단다. 오, 글을 쓴다고? 글이라면 절로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나는 아이의 책을 펼쳐보았다.
목차를 보니 글감이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에는 글감에 대한 짧은 예시 글이 적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글감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짧게 글을 쓰도록 칸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책이 다 있구나. 아이들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단어들이 글감으로 나와 있는 데다,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으니, 글이 처음이더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책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짜고짜 빈 종이에 글을 쓰라고 해서 난감한 적이 많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새삼 요즘 출판 시장이 얼마나 촘촘히 아이부터 어른까지 인도하는지 감탄하게 된다. 책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그림책 다음에 바로 그림 하나 없는 줄글책을 읽어야 했는데, 요즘은 다르다.
그림만 있는 책부터, 짧은 글로 구성된 그림책, 긴 글로 돼 있는 그림책, 글자 크기가 크고 그림이 조금 있는 줄글책, 글자 크기와 그림이 줄고 글이 많아지는 줄글책, 청소년 문학, 영어덜트 문학, 성인 문학에 이르기까지. 읽는 책만 그런 줄 알았는데, 쓰는 책도 이렇게 꼼꼼하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문해력이나 글쓰기 실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염려될 때가 많다. 어른 중에는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글을 쓰라고 하면 바로 얼어버리는 사람들도 대다수다. 책만 열면 잠이 쏟아진다거나, 자신 같은 사람이 무슨 글이냐며 손사래를 친다.
글만 잘 써도 달라지는 세상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되면, 갑자기 색안경을 끼고 나를 바라본다. 저 사람 뭐가 좀 있나 본데? 이런 눈빛이랄까. 사실 별 거 없다. 그냥 글이 좋아 쓰고, 글 쓰는 게 내 삶이라 여겨 매일 쓸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바라본다.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글을 쓴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사실 눈치 채지 못하고 있어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짧든 길든 글을 쓰며 살아간다. 가장 대표적인 글쓰기는 문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톡을 주고받는 사람들. 친구와 가족과 회사 사람들과 톡을 주고받는 행위도 사실 글쓰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글쓰기라 받아들이지 않는다. SNS도 온통 글로 되어있다. 사진이 주된 공간에도 아래 짧게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진뿐만 아니라 글까지 좋으면 호감도는 급상승한다.
학교나 모임, 회사에서도 우리는 글로 소통한다. 학교에서는 시험이나 과제로 글쓰기가 나올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질러 반성문을 쓸 수도 있다. 모임에서는 운영 규칙을 정하거나 모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글이 필요하다.
회사의 모든 업무 밑바탕에는 글이 있다. 사업계획서, 기획안, 보고서 등은 모두 글로 씌어진다. 대표부터 말단 사원까지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이뤄 나가려면, 결국 모든 과정을 글로 표현하고 알려야 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은 온통 글로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니 글을 써보라고 권하면 다들 화들짝 놀란다. 내가 무슨 글이냐며. 나는 글을 쓸 줄 모른다며. 이렇다 보니 남들보다 글을 조금만 더 잘 쓰거나, 겁 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든 모임에서든 직장에서든 금세 눈에 띄고, 더 설득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글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글을 쓰라고 하면 긴장부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은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오랜 시간 지식인층만의 일이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만이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런 과거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글은 작품이라는 생각과 글은 작가들이 쓰는 거라는 생각이 강한데다, 작가는 오랜 시간 지식인층이었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데도, 이런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글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듯이, 말을 활자화한 게 글이다. 예전에는 구어체니 문어체니 하며, 말하는 언어와 쓰는 언어에 차등을 두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말이 곧 글이다. 글은 또다른 말이기도 하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조리 있게 잘 하는 경우가 많다. 말로는 하겠는데 글은 못 쓰겠다고 하는 건, 경험이 많지 않아서다. 글을 대단한 무언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동안 짧든 길든 써왔던 글들을 글이라 인식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우리는 이전보다 더 글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인터넷 세상은 영상이나 사진이 주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깔린 기본 바탕은 글이다. 영상 안에도 자막이 들어가고, 사진 아래에는 캡션이 달린다.
시청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영상은 대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웹툰, 웹소설, 뉴스, 블로그 등도 모두 글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가 매일 책을 펼치진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다.
인간은 언제부턴가 어떻게든 글로 표현하고 글로 전달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래 남기고 싶거나, 제대로 남겨야 할 때에는 꼭 글로 쓴다. 인터넷은 그런 현실을 더 극대화한 세상이다. 이 세상에는 한계가 없다.
남길 수 있는 양에도, 남길 수 있는 사람에도 경계가 없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글 세상을 매일 유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거대한 세상에 나만의 페이지를 만드는 것
이런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건, 그 거대한 한 권의 세상에 작은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책에 나의 이야기를 한 페이지 끼워 넣는 일이다. 나라는 작은 존재도 이 넓은 세상에서 부대끼고 안간힘 쓰며,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과정이다.
이야기는 살아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사람과 사람의 삶은 연결되어 있기에.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한다는 말과 같다.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로 연결된 누군가와 공감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나는 글이 사람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고 믿는다. 글은 언어라는 한계 속에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아무리 뛰어난 언어라 해도 세상 모든 걸 표현할 수는 없다. 그 한계를 딛고 어떻게든 소통하기 위해 글자를 주무르고 쓰고 고치는 작업이 글쓰기다.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방식이 인간에게는 글인 것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은 음악이나 그림, 춤 등으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글, 음악, 그림, 춤 등을 업이 아닌데도 지속하는 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이런 예술 활동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동시에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립되어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하나를 가지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당신도 썼으면 좋겠다. 당신이 어떤 성별이든 어떤 직업이든 어떤 지역 출신이든 어떤 학벌이든 어떤 취향을 가졌든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의 글을 썼으면 좋겠다. 단절된 경력과 조각난 삶을 살아온 나도 글을 쓴다.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글 이외에 나의 삶을, 나의 선택을,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건 글은 정말 정직한 세계라는 것. 쓴 만큼 좋아지는 게 글이다. 생각한 만큼 깊어지는 게 글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나도, 한때 모든 걸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나도, 글만은 쓸 수 있었다. 그러니 당신도 함께 썼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이야기든, 당신의 이야기를 적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세상에 당신의 페이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 페이지는 당신만이 채울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