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금호강 팔현습지 핵심 생태 구간에 교량형 보도교를 설치하는 사업(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의 일환)을 재추진할 것이란 소식(관련 기사 :
"대구 3대습지 팔현습지 파괴? 이게 무슨 짓인가")이 들리자, 이곳을 찾는 발걸음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현장을 훑어본 이들이 내뱉은 일성은 "이런 아름다운 습지에 환경부가 왜?"였다. 그들은 "대안을 논할 것도 없이 이 현장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그 현장을 따라가보자.
1일 오전 8시 30분 팔현습지로 들어가는 들머리인 수성패밀리파크 주차장에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소속 수녀 일곱 분과 봉사자 세 분 등 총 10명의 답사자들이 모였다. 필자는 이들에게 팔현습지 현장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 이른 아침은 새들의 시간이다. 팔현습지 들머리는 다양한 산새들의 노랫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산새들의 세레나데를 들으며 습지로 들어가는 길이 즐겁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발걸음마저 경쾌하고 가볍게 만들어준다. 자연의 작은 선물이다.
새들의 선물과 함께 제방길로 들어서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내 팔현습지 초입부터 드넓게 펼쳐진 수성파크골프장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넓은 인공의 공간이 팔현습지 입구에 이질적으로 들어서 있어 보는 이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와 파크골프장은 처음 보는데 이렇게나 넓어요?"
습지 초입에 들어선 이 낯선 광경에 모두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파크골프장이 없었더라면 저곳은 드넓은 하천숲 형태의 습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방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습지를 만날 시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역시 인공의 물결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파크골프장과 연동된 화장실과 휴게실 등이 보이고 수성구청에서 조성해둔 인공 화단들이 나타났다.
그렇다. 팔현습지는 이미 벌써 많이 훼손된, 어그러진 형태의 습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성구청에서 이미 너무 많이 손을 댄 것이다. 화단들 사이로는 시멘트 탐방길이 놓여 있다. 그 길은 강 건너편 동촌 쪽에서 팔현습지로 넘어 들어오는 강촌햇살교와 만나게 된다. 이 작은 다리를 통하면 강 건너편으로도 넘어갈 수 있다.
이처럼 이미 산책길은 잘 조성돼 있었다. 이 길은 자전거길로도 함께 이용돼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이 길을 통해 금호강 투어를 즐기고 있다. 이미 인프라는 충분히 조성돼 있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잘 조성돼 있어서 놀랍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이걸로 부족하니 새로운 길을 내어달라는 것이고, 그게 지금 논란인 보도교 조성공사 이야기다. 현장에 와보면 그 주장이 너무 뜬금없는 소리란 것을 단박에 알게 된다. 이미 길이 너무 잘 조성돼 있는데 왜 새로운 길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해지기까지 한다.
인공의 길과 자연의 길
이제부터 새로운 길을 내어달라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인공의 화단과 탐방길이 끝나는 곳으로는 다시 정말 예쁜 길이 나타난다. 포장길이 아닌 흙길이다. 주변은 유채밭이었다. 지금은 꽃들이 다 지는 시기라 수성구청에서 다 베어내고 맨땅만 남은 곳으로 오솔길이 나 있다. 길은 강가로 연결된다.
이 길은 예전 신작로 같은 느낌이 드는데, 수성구청의 모토인 '사색이 있는 산책로'다. 길은 금호강가까지 연결돼 있는데, 자연과 교감하면서 산책할 수 있도록 수성구청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놓은 곳이다.
즉 초입부터 나오는 화단 사이의 시멘트길과 이곳의 흙길까지 합치면 거리도 제법돼 정말 산책하기에도 적당한 거리의 길이 된다. 이 길만 해도 충분할 텐데 이곳에 다리를 놓아, 이 위로 산 벼랑을 따라서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것이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계획하고 있는 산책길이다.
우리는 새로운 교량형 보도교를 내겠다는 그곳으로 더 다가가 보았다. 즉 교량이 놓인다는 그 코스 그대로 더 들어가보았다. 그런데 거기서부터는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왼쪽은 야트막한 산이고 오른쪽엔 금호강이 흐른다. 그 사이는 둔치다. 둔치에는 사초군락들이 들어서 있고 그 위는 나비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그림 같은 모습이다.
"와, 너무 아름다워요."
"여기에 이런 공간이 숨어 있네요."
"대구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수녀들의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한 사람이 겨우 걸어들어갈 수 있는 사초군락지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가봤다. 이곳은 산과 강의 경계 사이에 난 좁은 공간으로, 이른바 핵심 생태 구간이다. 산과 강을 연결해주는 생태 이동 통로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이 위로 길을 내겠다는 것이다. 사초군락지 사이로 보이는 노란 깃발이 그 노선이다. 우리는 그 깃발을 따라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보았다. 그 길의 끝에는 더 놀랍게도 왕버들숲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수령이 수십 년에서 1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왕버들 군락지가 산지 벼랑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라 있다. 나무덩걸엔 이끼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수십 그루의 왕버들이 더욱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녀들과 함께 그 숲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 숲은 곧 사라질 운명이다. 예정대로 이곳에 교량형 산책길이 놓이게 되면 이 숲은 다 베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숲을 다 베어내고 딱 그 나무들 높이의 원통형 철제 파일을 박아 그 위로 다리를 놓아 산책길을 만들겠다는 것이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계획이다.
환경부가 도대체 왜?
"도대체 왜 환경부가 이런 쓸데 없는 일을 벌이려 해요?"
답사자들 사이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엘 한 번만이라도 와본 사람이라면 이곳 위로 길을 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 길을 낼 경우 생태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곳은 산과 강이 연결된 곳이기에, 산의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 강으로 내려오는 길목이다. 여기에 길을 내서 사람들이 밤낮없이 다니게 된다면, 이곳의 생태계는 완전히 단절될 것이다.
5월 30일 주민설명회장에서 보도교 추진 단장은 "환경 훼손도 없이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내겠다 하는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 환경운동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현장에 와서 서 보면, 그 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아름드리 왕버들 숲을 밀고 산과 강의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생태환경 파괴 공사를 두고 환경 훼손이 없다고 주장하며 공존을 운운하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 현장을 보고 한 수녀는 말했다.
"남미에서 4년을 산 적이 있다. 그곳은 이과수폭포 같은 관광지라도 우리처럼 인공의 길을 내지 않고 철저하게 손을 안 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놔두더라. 그 모습을 보려고 전세계인들이 모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인공의 구조물을 세우겠다 하니, 그 상상력이 참 이해가 안 된다."
이날 답사에 함께한 이들이 현장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왕버들 숲에 서서 내린 결론은 "이 생태 보물을 도대체 왜 파괴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였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외쳤다.
"금호강은 야생동물의 집이다. 산책로 공사 즉각 중단하라!"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으로 지난 15년 동안 우리 강의 자연성 회복운동을 벌여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