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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01일째 되던 지난 5월 17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관 B동 B101호 강의실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가 열렸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과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공동주최하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국회의원 용혜인이 주관하여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와 아버지 이종철씨, 고 최혜리씨의 어머니 김영남씨, 고 박현진씨의 어머니 이옥수씨, 고 최재혁씨의 어머니 김현숙씨, 그리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이었던 용혜인 국회의원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유가족 간담회가 끝난 뒤 유가족들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 신지혜 대변인과 참석자들
이화여자대학교 유가족 간담회가 끝난 뒤 유가족들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 신지혜 대변인과 참석자들 ⓒ 소셜투어
 
박람회·취업 공고 속 '잊으라'고 말하는 바쁜 세상

총학생회가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일이 흔치 않은 요즘이지만, 이화여대 총학생회 비대위는 유가족 간담회 공동주최 요청에 응해주었다. 덕분에 학내 공간 대관이 어려워 고생한 다른 학교 간담회 기획단과 달리 이화여대 기획단은 일찍부터 장소를 확정할 수 있었다.

간담회 일주일 전부터 ECC, 포스코관 등 캠퍼스 전체를 돌며 포스터와 대자보, 화자보(화장실용 자보)를 붙이고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했다. 홍보에 참여한 기획단원들은 학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실물로 유가족 간담회 홍보물을 받아보고 학내에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된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포스터를 붙일 만한 게시판은 이미 박람회, 취업, 스펙 쌓기를 위한 광고와 학내 행사 포스터로 빽빽했다. 몇몇 상황에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게시 날짜가 지난 포스터 위에 간담회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포스터도 곧 다른 포스터로 덧씌워지겠구나.' 간담회 당일까지 버텨준다 해도, 얼마 못 가 이화여대에서 이태원 참사유가족 간담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흔적 없이 잊히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이화여자대학교 학내 게시판에 붙어있는 취업 박람회, 공모전 포스터 속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
이화여자대학교 학내 게시판에 붙어있는 취업 박람회, 공모전 포스터 속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 ⓒ 소셜투어
  
홍보물 부착이 끝난 뒤에는 학교 축제 기간에 맞춰 홍보 부스를 운영했다. 부스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포스트잇에 유가족을 위한 위로의 한마디를 모았다. 땡볕에 세워진 작은 부스라 학우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혹여 앞을 지나는 학우들에게 이태원 참사가 이미 흐려진 건 아닐지 걱정되었지만,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어떤 연대의 메시지를 적어야 할까 고민하며 포스트잇 위를 맴도는 조심스러운 손을 보며 어떻게든 함께하려는 학우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마음들이 하나둘 모이면,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이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소모된 전단지와 많이 모인 포스트잇에도 불구하고 홍보 부스 첫날의 성과는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신청자가 모이지 않은 것이다. 학교 축제 기간이 겹쳐 학교 안에 유동 인구는 많았지만,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축제를 총괄하느라 간담회 홍보를 함께해줄 여력이 부족했고, 쏟아지는 축제 관련 홍보물에 온라인 홍보도 힘을 얻지 못했다. 결국 기획단은 간담회 직전까지 캠퍼스 곳곳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수업 직전 강의실을 방문해 마이크를 잡고 간담회를 알렸다.

'기억한다고 했지만 잠시 잊었습니다'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매우 분주해 보였다. 수업 시간에 늦을까 봐 전단지를 받지 못하고 뛰어가는 사람, 동아리 부원들과 대화하느라 전단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 취업센터 포스터를 보느라 잰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 등등. 전단지를 받을 여유도 없이 바쁜 대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이태원 참사처럼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하고, 함께 연대하자고 요청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포스터를 붙이던 게시판처럼 취업, 스펙, 경력 걱정으로 꽉꽉 들어찬 마음속에 한 자리를 내어달라 호소할 수 있을까.

홍보 부스에서 받은 응원의 한마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구는 '기억한다고 했지만 잠시 잊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연대하겠습니다'였다. 기억의 힘이 세다고 한들, 모두가 24시간, 일주일, 한 달 내내 이태원만을 생각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은 기억이 흐려진 채로 살고, 어느 순간은 그날의 충격을 떠올리며 눈물짓고, 뉴스를 볼 때면 부당함에 분노하기도 할 테다. 그렇다면 시간과 사건에 따라 흐리고 짙어지는 기억을 최대한 마음속에 붙잡아두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공감'에 대해 이야기 한 이태원 유가족들
 
  2023년 5월 17일, 이화여자대학교 이태원 참사 간담회 당시의 무대 측 사진. 좌측부터 김현숙 님(최재혁 씨의 어머니), 김영남 님(최혜리 씨의 어머니), 이종철 님(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옥수 님(박현진 씨의 어머니), 조미은 님(이지한 씨의 어머니), 발제자 박세은, 발제자 윤김진서.
2023년 5월 17일, 이화여자대학교 이태원 참사 간담회 당시의 무대 측 사진. 좌측부터 김현숙 님(최재혁 씨의 어머니), 김영남 님(최혜리 씨의 어머니), 이종철 님(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옥수 님(박현진 씨의 어머니), 조미은 님(이지한 씨의 어머니), 발제자 박세은, 발제자 윤김진서. ⓒ 소셜투어
 
간담회에서 유가족들은 '공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미은씨는 "희생자가 내 가족이었다면, 혹은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정치적·사법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해 사회적 참사가 재발한다면, 나의 미래의 아이가 그 참사에서 희생된다면 어떨지 상상하고 공감해 달라"고 호소했다.

끔찍한 상황 속에 '나'를 대입해 상상 속에서나마 유가족의 심정을 유추해보았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보는 '역지사지'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행위를 너도 다른 사람에게 행하라'라는 황금률과도 일맥상통한다. 종교를 막론한 기본 윤리로써,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공감한다면 그 고통을 생생히 받아들이고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 힘을 가지면 연대 또한 길어질 것이고, 굳건한 연대가 안전한 사회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 장기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진실로 다가가기 위해선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난 4월 20일, 국민동의청원 5만 명 서명을 달성해 국회에 발의된 '10·29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또한 이번 간담회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패널로 참석한 다섯 명의 유가족은 모두 이태원 특별법을 제정해 진실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미은씨는 9년 전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9년째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고 우리도 장기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고, 왜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아직 명명백백히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이태원 참사도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수사만 이어질까 두렵다는 말씀이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다수가 청년이었던 만큼, 유가족 중에도 그들의 부모 세대인 중장년층이 많았다. 그들에게 청년 세대의 연대는 더 큰 의미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들을 향해 '미래의 희망', '사회의 주역'이라고 부르며 "기성세대인 우리가 하지 못하는, 더 오래 기억하는 일을 해 달라"고 굳건한 연대를 당부했다.

'참사가 흔한 나라' 대한민국의 불명예를 끊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 것인지, 좋은 시간을 보내러 갔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나라에서 숨죽이고 살 것인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린 것이었다.

유가족 간담회를 마치며

이번 간담회에 패널로 참석한 김영남씨의 딸 고 최혜리씨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해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있었다. 김영남씨는 10월 29일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그렇게 열심히, 즐겁게 살던 내 딸이 하루아침에 주검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며 눈물지었다. 고 최혜리씨의 졸업 전시는 담당 교수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그날 이태원에서 사망한 159명의 사람들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우였고,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 어깨를 맞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간담회 중 김영남 님(최혜리 씨의 어머니)이 발언하고있다.
간담회 중 김영남 님(최혜리 씨의 어머니)이 발언하고있다. ⓒ 소셜투어
 
유가족과 함께 울고, 대답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던 청중들이 기억에 남는다. 재학생들과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졸업생들의 눈시울이 한꺼번에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가 다른 포스터로 덮인다 한들 학내에서 학생들이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청중들이 간담회에서 흘린 눈물과 유가족을 향한 위로의 박수는 청중과 유가족들에게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함께해준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이태원 참사가 완벽하고 선명한 화소로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대의 손길이 필요한 때 그날의 당부와 다짐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서명에 참여하거나 인증샷을 남기는 일처럼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단지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는 일이므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태원 참사#기본소득당#용혜인#10.29 이태원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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