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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오후 7시, 10.29 이태원 참사 200일을 기리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간담회는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간담회 기획단이 주최하였으며,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 고 유연주씨의 아버지 유형우씨, 고 김의현 씨의 누나 김혜인씨가 유가족 패널로 참석했다.
 
 2023년 5월 17일 개최된 서울시립대·한국외대·한예종 이태원 유가족 간담회 유가족 패널들의 모습이다. 좌측부터 김혜인씨(김의현씨 누나), 유형우씨(유연주씨의 아버지), 이성환씨(이상은씨의 아버지).
2023년 5월 17일 개최된 서울시립대·한국외대·한예종 이태원 유가족 간담회 유가족 패널들의 모습이다. 좌측부터 김혜인씨(김의현씨 누나), 유형우씨(유연주씨의 아버지), 이성환씨(이상은씨의 아버지). ⓒ 소셜투어
 
세 학교에 소속된 기획단원은 모두 지난봄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서 주관한 대학생 소셜투어 '다시, 기억하는 여행'을 통해 4.16 기억교실과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방문하고 4.3항쟁과 5.18민주항쟁을 공부하며 사회적 참사를 돌아본 이들이었다. 소셜투어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서 직접 유가족들을 만나며 기획단원들은 재발 방지의 첫걸음이 '기억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유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같이 울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 아픔을 가까이 마주하며 참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일을 계속해 보기로 다짐한 우리는 연대의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이런 연대의 물결을 더 멀리 퍼뜨리기 위해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 함께할 다음 간담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조롱과 혐오에 맞설 용기

참사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마련한 간담회인 만큼, 보다 많은 참가자를 모으기 위해 곧장 홍보에 돌입했다. 특히, 기획단원 각자의 온라인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주기적으로 간담회 홍보 게시글을 업로드하는 데 집중했다. 때론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기획할 때부터 예상한 일이었음에도 기획단은 막막함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간담회를 반드시 개최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동시에 느꼈다. 혐오에 맞서는 연대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홍보와 더불어 각 대학에 홍보 포스터를 부착했다. 며칠에 걸쳐 포스터를 손에 들고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태원 참사를 향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보았기 때문인지, 포스터를 붙이며 공연히 위축되는 일이 잦았다. 포스터를 부착하려던 장소에 사람이 많으면 딴청을 피우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마저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참사를 알리고자 시작한 일인데 알려지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모순적이었다. 연대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포스터 부착을 완료한 후 가만히 포스터를 바라본 적도 있었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합시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기획단은 함께하기 위해 모였고, 함께할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있는 거지.' 연대는 용기를 필요로 함을 실감한 순간에, 기획단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고 있음을 느꼈다. 홀로 용기 내기는 어렵지만, 곁에 누군가 있다면 조금은 쉬워진다. 간담회가 혼자서 고민하고 주저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되길 바라며 돌돌 말려있는 다음 포스터에 손을 뻗었다. 
  
 서울시립대·한국외대·한예종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의 모습이다.
서울시립대·한국외대·한예종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의 모습이다. ⓒ 소셜투어
 
포스트잇 두 장에 담긴 관심의 힘

5월 10일 오후 12시, 간담회 홍보를 위해 홍보부스를 운영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본관 앞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 옆에 유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은 포스트잇을 부착하기 위한 판을 세웠다. 17일 오후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건넸다. 홍보 부스에 몇 번 시선이 머무르곤 했지만, 관심을 두는 행인은 많지 않았다. 무관심이 반복적으로 스쳐 가는 동안 목소리를 높이는 게 어쩐지 겸연쩍기도 했다.

그러다 행인 두 명이 다가와 무슨 부스냐고 묻고, 포스트잇에 연대의 한 마디를 적은 후 떠나갔다. 판 위에 기억하겠다는 짧은 말이 적힌 두 장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그 작은 포스트잇 두 장이 꽤 반가웠다. 이후 부스를 정리할 때까지도 그 포스트잇들을 몇 번이나 흘긋거렸다. 부스에 다가와 포스트잇을 적기까지 걸린 3분 남짓의 시간, 다른 것보다도 그 시간, 그 작은 관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참사가 잊혀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만 좀 해라"라는 말도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러나 간담회를 홍보하면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음을 알았고, 관심이 힘이 된다는 걸 느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고, 한데 모으는 것. 그렇게 참사가 기억될 수 있게 하는 것. 간담회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했다.

끌어안고 울지 못한 부모의 한을 푸는 방법

간담회 당일이었던 5월 17일 오후 6시 40분경, 간담회 장소에 참가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비어 있던 강의실이 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안과 안도가 되었다. 간담회는 약 스물다섯 명의 참가자와 함께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참사 당시 상황과 이후 진행 과정, 이태원 특별법에 이르기까지 대담을 통해 여러 경험과 감정이 생생하게 공유되는 시간이었다.

고 유연주씨 아버지 유형우씨는 간담회가 열리는 강의실에 도착해 딸아이의 또래 학생들을 보니 딸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참사 직후 마약 수사를 이유로 주검을 만지지 말고 얼굴만 확인하라던 경찰을 떠올리며, "자식을 보내는데 끌어안고 울지 못했던 부모의 한은 진상규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딸의 죽음 이후 자책과 자괴감을 시작으로 신을 탓하며 불신하고 또다시 간절히 기도하던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사후세계를 믿지 않아왔지만, 이제는 동생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죽음 그 너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호주에서 일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온 고 김의현씨의 누나 김혜인씨를 비롯하여 평범한 생활을 하던 유가족들은 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

간담회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 보장,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법(아래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유가족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피해자의 권리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혹자는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뜯어내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이 말은 정당한 비판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직무 유기로 발생했기에 피해자에게는 국가로부터 보상받고 참사의 진실을 알, 마땅한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과잉 입법'이나 '재난의 정쟁화'라는 말로 법안 철회까지 요구하며 의무를 내팽개치고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특별법 제정"이라는 유가족의 말처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에서 유가족이 끝까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수단이고, 진실을 밝힐 희망이며, 그 자체로 피해자의 권리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가 부정당하고, 심지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이 현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부당한 야유와 손가락질을 멈추게 하려면 특별법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의 발걸음은 피해자와 함께, 피해자의 권리가 당연히 보장받는 사회로 향해야 한다.

"7명의 친구들에게 참사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발제자 김신, 발제자 홍주희가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발제자 김신, 발제자 홍주희가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소셜투어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묻는 말에 유형우씨는 "7명의 친구들에게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전해달라. 언제 나에게 다시 그 이야기가 도착하는지 지켜보겠다"라며 기억과 공유를 호소했다. 김혜인씨는 나중에 동생을 만났을 때 떳떳할 수 있도록,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 말했다. 또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가족협의회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공유하는 것이 가장 쉽고 기억하기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일러주었다. 

한 명분의 기억보단 두 명분의 기억이 무겁다. 그리고 기억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짐으로써 확산될 수 있다. 그날 함께한 이들이 일곱 명의 지인에게 기억을 공유하고, 그 일곱 명의 지인이 또다시 기억을 공유하고, 그렇게 모두가 이태원 참사라는 공통의 기억을 갖고, 공유하며 나아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

기억 공동체의 사명

간담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단과 참가자 모두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슬퍼했다. 때로는 울었고, 때로는 웃었으며, 누군가는 위안을 받고, 누군가는 용기를 얻고, 누군가는 분노했다. 그리고 모든 감정이 모여 연대의 순간을 이뤘다.

우리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참사를 대해야 할까. 불현듯 우리가 같은 사회에 속해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태원 참사의 문제에 귀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이 우리에겐 참사에 주목해야 할 충분한 사명인 것이다. 공동체의 의미가 처음으로 무겁게 와닿은 순간이었다. 

모두에게 무거웠던 이야기를 마친 후 김혜인씨는 "오늘날의 청년들은 너무나 치열하게 산다"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눈물에 막혀 쉬이 꺼내기도 힘든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행복한 공동체'를 소망하는 마음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젊은 공동체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태원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기억을 되짚는 일, 그리고 더 많은 곳에 진실을 알리는 일이다. 누군가가 귀한 청춘을 잃는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세월호 세대이자 청년세대인 우리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사명을 다할 것이다.
 
 간담회 종료 후 유가족, 발제자, 참석자들의 단체 사진.
간담회 종료 후 유가족, 발제자, 참석자들의 단체 사진. ⓒ 소셜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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