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포대교를 걷고 또 걸었다. 이날로 엿새째다. 걸을 때마다 새롭게 한 걸음이 사무친다. 오늘(15일)은 마포대교 위 하늘을 가득 채운 몽글 구름을 한참 바라보며 걸었다. 그 위에 꼭 민석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고 최민석(21)씨를 잃은 엄마 김희정씨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159㎞ 릴레이 행진'에 매일 참여하고 있다. 15일 오전 10시 29분, 6일차 행진이 시작됐다. 김희정씨는 창이 넓은 썬 캡에 목에 두른 수건, 팔토시에 장갑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임했다. 엿새 동안 쌓인 나름의 노하우다.
지난 8일 시작한 릴레이 행진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가 있는 시청광장에서 출발해 광화문, 마포대교를 거쳐 국민의힘 당사,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지나 국회 앞에서 마무리 된다. 약 8.8km의 행진, 3시간여를 꼬박 걸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 길을 오는 7월 1일(주말 제외, 총 18일)까지 걷고 또 걸어, 총 159km 거리를 행진할 예정이다.
매일 걷는데, 힘들진 않냐고 물었다. 김희정씨는 고개를 저었다. 신체에 아픔을 느끼지 못한 지 꽤 됐다고 했다.
"건강은, 사실 안 좋아요. 그런데 다행히 아픈 줄은 몰라요. 얼마 전에 가위로 손가락 옆을 잘라서 여섯 바늘 꿰맸는데 아픈 줄 모르겠더라고요. 이보다 더 큰일을 겪었고, (다리 아픈 거 같은 건) 개의치 않아요."
'하나도 아프지 않다'던 김희정씨는 구름 얘기를 꺼내자 눈물부터 쏟아냈다.
"구름 위에 꼭 민석이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저희가 마포 살아서, 여름이면 한강에 텐트치고 치킨 시켜 먹고 물놀이 하고 그랬어요. 마포대교 건널 때마다 너무너무 민석이 생각이 나요. 어딜 봐도 민석이가 떠올라요. 우리 민석이...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그런 거 빼면 오롯이 저랑 있던 게 고작 7년밖에 안 돼요..."
엄마는 내내 걸었지만 다음날(16일) 하루 빠져야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민석이 외할머니가 팔순이세요. 참사 이후 모든 가족이 한 번을 못 모였어요. 엄마 팔순이라고 제주도 가자는데, 솔직히 가기 싫었어요. 6월이 (특별법 통과를 위해) 너무 중요한 시기잖아요. 근데 엄마도 민석이 사고 이후 많이 노쇠해지셨고 '너 안 가면 다 취소하겠다'고 하셔서 내일 제주도 가요. 내일은 못 나와서 마음이 좀 그래요... 행진하는 인원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민주당 의원님들 전원이 한 번이라도 같이 걸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제 바람이겠죠."
그 하루를 빠지고, 7월 1일까지 17번의 행진에 참여할 거라고 했다. 엄마는 말했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요."
엄마는 아들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추억이 서린 마포대교를 건너며 울었다
또 다른 엄마, 이정옥(68)씨도 다르지 않다. 아들 서형주(35)씨가 사준 운동화를 신고, 마포대교를 다섯 번 건넜다. 젊은 취향의 분홍색 운동화를 아들이 사준 거냐 묻자, "그라믄"이라며 반기는 답이 돌아왔다.
"근데 이 지랄났지. 이걸 신고 지난주 목요일에 첫 도보를 하는데, 아들이랑 꽃도 보러 댕기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이 근방 다녔던 게 너무 생각나는 거야(울음). 울화병이 나서 (주말) 이틀 동안 앓다가 어제 하루 용산구청 가느라 빼먹고 매일 걷는 거예요."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 활동을 하는 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이정옥씨는 뒤처지지 않고 걸었다.
"곧 (참사) 1년 다가와요. 그런데 하나 달라진 게 없어. 생명과 안전 누구나 보장 받아야 할 권리잖아요. 다 박탈당했어요.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 아들 떠났고, 끝이구나, 다 알아요.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제대로 사과도 하고 잘못한 사람 처벌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어요."
칠십에 가까워진 노모는 삶을 누리고 가지 못한 아들이 불쌍해서라도 걷는다고 했다. 아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어디서 솟았는지 모르게 하루 죙일 흐른다"고 했다.
"우리 아들 장가가서 아이 낳는 것도 못 보고 하나도 세상을 못 누리고 갔잖아요. 간 사람이 제일 불쌍해요. 다 필요 없고, 누구 말마따나 사람이 먼저잖아요, 안 그래요?"
아이들을 위해 걸으며, 엄마는 세월호 엄마들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엄마들은 걷기만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마이크를 들고 목청을 높이려니, 목소리가 떨렸지만 신애진(25)씨 엄마 김남희씨는 3분가량의 연설을 무사히 마쳤다.
"여러분 특별법 제정에 관심 가져주세요. 저희의 행진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다소 시끄러움도 느끼실 수 있지만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한 번 더 봐주시고, 왜 이런 행진을 하는지 한 번 더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김남희씨는 "아직도 궁금한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우리 애진이는 현장에 있다가 순천향병원으로 갔다가 또 안양샘병원으로 옮겨갔어요. 그동안 온갖 곳에 실종자 신고를 했어요. 안양경찰은 30일 오전 9시에 이미 우리 애진이 신원을 확인했어요. 그런데 가족들은 오후 3시에 연락을 받았어요. 우리 애진이 못찾을까봐 너무너무 무서웠는데, 왜 그때까지 찾아 헤매게 만들었냐는 거죠.
아이들 처음 모인 장소에서 유가족에게 연락을 했다면 좀 더 빨리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왜, 누가, 지방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국민의힘은 모든 진실이 밝혀졌대요. 국민의힘 말대로 다 밝혀졌으면, 저희가 궁금한 게 없어야죠. 납득할 수 있어야죠. 지금 하나도 납득을 못하겠는데요."
아이를 잃고,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투쟁을 하고, 걷고. 처음 하는 거 투성이지만 그 와중에도 김남희씨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어제 오늘 이틀 걸었어요. 걸으면서 생각이 좀 정리가 돼요. 무엇보다, 세월호 어머니들이 참 고맙더라고요. 오늘도 세월호 어머니들이 같이 걸어주고 계신데, 저희를 안아주시고 함께해주시는 게 참 많이 위안이 됐어요. 참사 이후 7개월가량 지났는데 제일 고마운 게 세월호 어머니들이에요.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그때, 선두에서 행진을 이끄는 트럭에서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 헤어진 모습 이대로"
가만히 노래를 듣던 김남희씨는 말했다.
"그거 아세요? 이제 세상 모든 가사가 다 슬퍼요. 사랑 노래 부르면, 사랑 노래대로 우리 아이와 함께 했던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슬프고요. 헤어진 이야기면 다 내 얘기 같고요. 정말 그 어떤 노래를 들어도 다, 다, 슬퍼요."
8.8km를 다 걸은 엄마는, 이제까지의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했다
8.8km 행진, 마지막 행선지는 더불어민주당 당사. 이상은씨 어머니 강선이씨가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입을 뗐다. '연대'의 마음이었다.
"이태원 특별법 제정을 위해 피케팅을 하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보면서 반성했습니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의 피케팅 시위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었나,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시위하고 있는, 피케팅하고 있는 분들이 무엇을 위해서 길거리에 나섰는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오늘 아침 국회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하는 중에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분의 발언을 듣게 됐습니다. 그분들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분들인데, 정규직으로 일할 때와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는데 수당이 없는 달에는 기본급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그분들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까요?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는데 어떻게 최저임금조차 받을 수 없고 최저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걸까요?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어떤 법을 만든 건지요."
살면서 피케팅 시위를 처음 해 봤다는 엄마는, 이제 다른 사회 문제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엄마들 곁에는 함께 걸은 또 다른 엄마들이 있었다. 이날 행진에는 유가족 20여 명뿐 아니라 일반 시민 및 단체 활동가 20여 명도 함께했다.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낼 수 있는데, 그 하루를 오늘을 위해 썼다는 안유향(48)씨도 시민 참가자 중 하나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안씨는 "이렇게 걷고 계시다는 걸 며칠 전에야 알았다"고 했다.
"저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이태원 갈 나이는 아니긴한데, 언젠가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 들어요. 단지 운이 좋아서 빗겨갔을 뿐이니까요.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죠. 그러려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할 거 같아서 나왔어요."
지난주에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는 이우연씨도 마음을 보탰다.
"저희 아들은 언젠가 오지만, 여기 계신 어머님들 아버님들 마음이 어떨지 제가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아마 저 같은 엄마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시간이 없어서 걱정만 하시고 참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실 겁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앞으로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그 '끝'의 시작은 일단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다. 지난 4월 20일 야당 의원 183명이 이름 올린 특별법이 제출됐다.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하면 국회에 의결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16일 현재까지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행안위 상정 후에는 법안 소위를 배정받아 심사하고,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의결을 거쳐야 한다. 다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도 남았다. 이태원 유가족들이 '국민의힘 협조'를 요청하는 까닭이다.
이날 국민의힘 당사 앞에 선 이상은씨 아버지는 "단 한 명의 국민의힘 의원이라도 만나 우리가 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지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라며 "우리의 외침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전히 이 참사 가운데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토록 간절히 외치는 건, '또 다른 우리'가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그 자리는 5년짜리 대통령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 끝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있기를 바랍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더 이상의 참사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특별법이 제대로 제정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사회적 참사가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안전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