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동일한 사면경사를 나타내는 산지에서 발달하는 암괴류 중 세계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원형도 잘 보존되어 있는(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빙하기 암괴류 유적이 비슬산에 있다. 그 외에도 공룡발자국, 연흔, 건열 등 빙하기 무렵의 대구 지형을 증언해주는 유적들이 앞산에 있다.
대구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발생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2·28민주운동기념회관 누리집)"인 2·28민주운동 유적도 시내 곳곳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창의한 홍의장군 곽재우 유적, 1601년 이래 300년 이상 경상도 전역을 통치한 경상감영 유적도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한 민족시인 이상화를 기려 국내 처음으로 건립된 문학비도 있고,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독립운동단체(제5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광복회가 창설되었던 달성토성도 있다.
대구에는 1919년 기미만세운동 당시 영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시위가 일어났던 곳이라는 이유로 강제 이전의 비운을 겪었던 조선시대 3대 큰시장 서문시장이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육신의 직계 남자 후손이 지은 보물 고건축도 있다.
60점 이상 화폭에 고향 담았던 세잔처럼
대구는 빙하기,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현대에 이르는 2만 년의 역사가 모두 남아 있다. 그 점에서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지역이다. 자신의 고향을 화폭에 60점 이상 담은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의 사례에 견줘볼 때도 대구는 예술 소재로서 아주 적격인 고장이다.
문인,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에게 대구를 창작 소재로 소개하기 위해 지난 2021년 <예술 소재로서의 대구 역사 문화 자연 유산>을 펴냈다. 당시 대구문화재단의 학술조사연구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책을 출간했었다.
그 책의 제2편으로 <현진건·이장가를 비롯한 예술 소재로서의 대구>를 약 2년 만에 속간했다. 현진건은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이고, 이장가는 이상화 집안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즉 <현진건·이장가를 비롯한 예술 소재로서의 대구>는 인물 중심이다.
'현진건 소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권두에 실었다. 걸출한 민족문학가이자 1936년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 현진건은 그의 삶 자체가 휼륭한 글감이다. 다만 생애와 문학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 '현진건 소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한 평론이다.
인물을 소재로 할 때는 치밀한 전기 연구부터
이어서 '이장가의 시 ①'을 실었다. ①이 붙은 것은 이장가 사람들 중 이 책에는 이동진의 시를 소개했고, 그의 아들 이일우, 손자 이상화의 시는 다음에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이동진은 자신의 논밭 1254두락 중 657두락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공동 경작하게 하여 고향과 인근의 가난한 민중을 구제했던 사업가이다.
그의 시를 소개한 것은 손자 이상화의 시재와 민족문학 기질이 우연히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려는 조치였다. 이동진과 그의 아들 이일우는 사재를 쏟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도서관(조용완, 〈우리나라 근대도서관 우현서루에 관한 고찰〉)"을 설립해 우국지사를 양성했다. 그러므로 일제가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 우현서루를 강제로 폐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현진건 또는 이상화 등 이미 유명세를 얻은 인물들만을 창작 소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예술 소재로서의 대구 인물 100인'을 뒤 이어 소개했다. '시기순으로 살펴본 대구 인물 독립운동사'도 마찬가지 의도에서 쓰인 글이다.
물론 저자 혼자서 '대구의 예술화'를 주창해서 될 일은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대구를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162권(저자 127인)을 소개했다. 그리고 현장을 직접 답사할 예술가들을 위해 '대구 문화유산 지역별 일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 순서별) 주소', '대구 임진왜란유적 41곳 (답사 순서별) 주소'도 실었다.
대한민국 삼천리가 대낮에도 어둑하다
감히 이동진의 시 중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이동진은 "등나무와 칡이 섞여 바위 아래까지 얽혀 있고/ 깎아내린 절벽은 그늘 덮여 대낮에도 어둑하네"라고 읊었다. 이동진이 대구 사람이니 시에 "대낮에도 어둑하네"로 묘사된 지역은 물론 대구일 것이다.
대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지역이 대낮에도 어둑한 상태로 버려져 있는 듯 보인다. 모두들 '외국 여행'만을 외치는 가운데, 한국의 예술가들이 앞서 형상화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한반도 강토를 돌아볼 것인가. 세잔처럼, 우리나라 모든 예술가들이 나서서 고향과 삼천리를 창작 소재로 삼아주기를 기대하며 졸저 한 권을 썼다.
덧붙이는 글 | 정만진 저 <현진건 이장가를 비롯한 예술 소재로서의 대구>(국토, 2023), 230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