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뜨겁다. 욱일기를 게양한 해상자위대 함선의 입항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데에 이어, 이번엔 그 불길이 민간 서핑장에까지 옮겨붙은 모양새다.
최근 여러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시흥의 한 인공서핑장에서는 11세 일본인 관광객이 욱일 문양의 서프보드를 타다가 다른 서퍼들의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어린이는 '욱일 문양의 역사적 의미를 몰랐다'고 해명하며 욱일 문양 위에 매직을 덧칠하기까지 했지만, 서핑장 측은 '이용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한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며 기사 제목에 일본 아이가 '참교육' 당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런데, 정말 이 사안은 '통쾌하게' 바라봐야 할 일이 맞을까?
욱일 문양에 대한 한국 대중의 반감은 식민통치기의 기억 계승과 맞물려 매우 뿌리깊어 보인다. 하지만 욱일 문양의 서프보드를 이용한 어린이의 존재를 가리켜 '일본 내 역사교육 부재'의 증거라며 손가락질 하는 전개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일본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욱일 문양을 마주하며, 단순히 일본 시민 사회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고 재단하고 분노하는 것은 타당한가.
욱일 문양은 곧 침략전쟁 옹호일까
욱일 문양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욱일 문양을 채용한 깃발, 즉 욱일기가 옛 일본육해군의 군기로 사용됐던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욱일 문양은 침략군이었던 옛 일본군의 상징이므로, 욱일 문양을 사용하는 것은 일본군을 예찬하고 침략의 역사를 옹호하는 행위라는 인식이다.
또 유럽에서 침략전쟁을 수행했던 나치와 일제를 비교하며 일본의 욱일 문양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과 다를 것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켄크로이츠는 나치당 및 나치당이 집권했던 나치시대 독일의 상징으로, 오늘날의 서구사회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는 문양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욱일기를 하켄크로이츠와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욱일기는 군기인 반면, 하켄크로이츠는 나치정권 그 자체의 상징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사용했던 욱일 문양와 직접 비교가 가능한 것은, 나치 집권 이전부터 독일군의 상징으로 사용된 철십자 문양이다. 철십자 문양은 프로이센 공국의 전신인 튜튼 기사단 시절로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데, 나치 독일과의 연속성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현 독일연방군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독일연방군에서 철십자 문양이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웃국가의 시민들 모두가 흔쾌히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철십자 문양을 내건 나치독일의 군대에게 점령당하고 핍받 받았던 이들과 그 후손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철십자 문양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식민통치기의 기억계승으로부터 한국 대중들이 욱일 문양에 반감을 보이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가 된다.
문제는 욱일 문양의 배경이나 사용 맥락 대한 고찰이 일체 소거된 채 욱일 문양의 존재로 반일 감정이 촉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개 어선의 깃발부터 대형 신문사의 로고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숱한 욱일 문양들이 과연 일본 사회에서 일본군이 예찬되고 침략전쟁이 옹호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욱일 문양은 존재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 지휘부가 스스로의 군기로 삼겠다고 뚝딱 그려 낸 문양이 아니다. '일본'(日本)이라는 국명이나, 쇼토쿠태자가 견수사 편으로 보낸 국서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고대에서부터 일본은 스스로를 '해가 뜨는 곳(나라)'로 인식해 왔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비록 정형화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일출의 모습을 표상한 욱일 문양은 막부와 다이묘 등의 집권자, 무사, 일반 서민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사용됐다. 오늘날에도 '해 뜨는' 바다로 출항하는 어민들에게 욱일 문양은 풍어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욱일기는 오직 '군'의 상징만으로 기능하는 독일의 철십자 문양과도 차이를 보인다. 즉 이미 욱일 문양이 일본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애용되고 있던 상황에서 신생 일본군이 스스로의 상징으로 욱일 문양을 채택한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근대적 군대를 만들어가던 일본군 관계자들에게 있어, 군 고유의 상징을 제정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다. 국가를 수호하는 무장집단으로서의 긍지를 고양하는 것도 중요했을 뿐 아니라, 전시에는 일반 행정기구나 민간시설 등의 비무장집단과도 명확하게 구별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별도의 군기 없이 일장기를 그대로 게양했던 일본 해군은 마찬가지로 일장기를 게양한 일본의 민간 선박이 군함으로 간주돼 위협받는 문제를 인식하고 일장기와는 다른 도안의 욱일기를 해군기로 채택했다. 요컨대 '국기인 일장기와 구분되면서도 일장기 못지 않게 일본인들에게 친숙하며 상징성을 갖던' 욱일 문양이 근대적 일본 군대의 상징으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욱일 문양의 배경과 사용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일본군이 이미 유구한 세월 존재해왔던 욱일 문양을 군기로 채택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욱일 문양 사용 그 자체가 일본군에 대한 지지가 될 수는 없다. 십자가를 든 침략자들이 이슬람교도들과 정교회 교도들을 상대로 잔학한 범죄를 저질렀던 십자군 전쟁의 역사가 있다고 해서, 십자가 표식 그 자체가 십자군 찬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도'와 '맥락'을 봐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예로부터 일본 사회에서 사랑받았던 욱일 문양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욱일기가 일본군의 군기로서 사용된 맥락에서 일본군을 예찬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의도로 욱일 문양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패전 후에 남겨진 일본 해군의 소해부대를 기반으로 조직돼 현재에도 공공연하게 옛 일본 해군의 계승을 표방하는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사용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미국은 극동 안보의 필요에 따라 일본의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한때 자신들이 추방하고 폐기했던 옛 일본군의 잔해들이 다시 양지로 올라오는 것을 인정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전개되던 냉전의 극단 상황 속에서 미국이 일본 정부에 일본군을 재창군하라는 압력을 넣고 일본 시민 사회가 여기에 반발했던 웃지 못할 촌극은,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진짜 손을 내밀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시사하는 것만 같다(관련 기사:
한미일연합훈련이 '극단적 친일'? 이젠 질문을 바꿔야).
욱일 문양의 맥락과 의도를 구분하지 않고서 벌이는 맹목적인 일반화하는, 문화에 대한 몰이해이며 시민사회의 우호를 저해하는 행태일 뿐이다. 국가를 뛰어넘는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시민사회 간의 연대를 위해서는, 상대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기본 자세다.
한국 시민이 자국 전통 문화로서의 욱일 문양을 향유하는 일본 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마찬가지로 일본군이나 과거 침략전쟁의 가치를 긍정하며 욱일기를 휘날리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 양국 시민이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