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생활하기 위해 지표를 점거한 주거양식을 뜻하는 취락은 촌락(村落)·부락(部落)·향리(鄕里) 등과 유사하게 한(漢)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마을이나 벌, 일본에서는 '슈라쿠(集落)'라는 표기로도 쓰인다. 어원은 모두 '한곳에 모인다(會)'는 뜻의 군집(群集)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간적으로 가옥이 모여 있는 집촌(集村)에 일차적이며 보편적 의미와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다만,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서 띄엄띄엄 떨어져있는 산촌(山村)같은 산촌(散村)이나 아예 인공적으로 새로이 조성한 '새마을(新村)', 심지어 대도시의 아파트단지까지 '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 국가와 국토는 지역을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도시화, 산업화가 뚜렷한 경향이자 추세이다. 심지어 전형적인 농촌의 면, 리지역에서조차 이른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이름의 농촌마을개조사업, 농촌지역개발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이미 도시와 촌락 또는 마을은 겉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도시와 촌락(마을)은 인간의 거주공간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엄연히 행정구역, 인구수, 인구밀도, 경관, 지가, 주민의 생업기반, 전통적 생활양식, 고유 사회적 자본 등에서 여전히 분명한 차이와 차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지리적 입지와 경제적 생업
마을 또는 취락의 정확한 개념과 범위는 지리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비도시적인 촌락(rural settlement)'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와 맥락에서 마을은 입지 장소에 따라 크게 3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평야에 있는 야촌(野村), 해안에 있는 해촌(海村), 산간에 있는 산촌(山村)으로 일단 나눈다. 생업기반을 유형분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농업에 기반을 둔 농촌(農村), 어업에 기반을 둔 어촌(漁村), 임업과 목축에 기반을 둔 산촌(山村)으로 나눈다.
이때 들이 넓은 평지의 마을인 야촌에서는 마을주민의 대다수가 경제생활의 기반을 농지, 생계수단을 농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야촌은 곧 농촌과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산촌도 거의 농업(임업 포함)에 생계를 의존하므로 입지로든, 생업으로든 산촌이라 부른다. 특히 산촌은 평지의 농촌과 달리 주로 산허리의 경사면이나 계곡의 좁은 공간에 입지하고 조성되기 때문에 지형과 기후의 제약을 크게 받는다. 불과 몇 호의 농가끼리 골골마다 고립되고 분산된 산촌(散村)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안가의 촌락은 어업이 주민의 생업기반을 크게 차지하므로 자연스레 어촌으로 발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반농반어(半農半漁)를 하거나 차라리 농업을 주요 소득원으로 삼는 마을도 적지 않다. 가령, 한라산 정상에서 해안까지 마을이 길게 입지하는 특징적 모습의 제주도 마을들은 해녀 등 어촌계 중심의 어촌과 감귤작목반 중심의 농·산촌이 혼재하고 병립하는 마을운영구조를 띠고 있다.
특히, 어촌 마을주민의 경제활동이나 생활양식은 사빈해안이냐 암석해안이냐는 지리적 요인에 크게 의존한다. 사빈해안은 전면이 얕은 바다라서 항만입지에 불리하므로 어업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소규모 마을이 형성된다. 반면 암석해안은 암초의 발달과 어패류가 풍부하므로 결집력이 강한 어촌공동체가 이루어지며 정치망어업이 발달하므로 마을 규모가 커진다.
자연조건, 사회조건, 경제조건
이처럼 마을(촌락)의 탄생과 변화를 결정하는 입지는 그 지역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좌우된다. 마을주민의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최적의 입지는 자연조건, 사회조건, 경제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자연조건으로는 식수(용수), 지형, 기후 등, 사회조건은 교통, 방어, 인습 등, 경제조건은 자본, 생계, 생업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는 찾기 어려우므로 마을의 입지는 그중 비중이 큰 조건을 좇게 된다.
무엇보다 '물', 용수야말로 가장 중요한 마을의 입지조건이다. 물은 식수, 관개 등 인간생활의 필수요소이므로 선사시대 이전부터 강변, 천변에 인류는 일찍이 터를 잡았다. 제주도처럼 투수성이 큰 화산암지역으로서 하천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해안의 용천수 주변에 마을이 집중되었다. 물이 부족한 사막지역에서 오아시스에 마을이 몰려있는 건 당연하다.
그 다음은 '땅', 경지이다. 식량 등 인간생활에 필수불가결한 핵심물자를 생산하는 장소가 바로 경지이다. 지형의 기복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서 생산량이 달라지므로 이는 옥토와 명당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나라 안의 비옥한 땅은 남원·구례·성주·진주 등이며, 이보다 못하지만 차령산맥 이북, 한강 이남도 역시 비옥하다'고 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구가 밀집되어 마을이 발달한 곳은 강변의 충적지 평야지대였다.
'날씨', 기후도 중요하다. 인류는 인간이 활동, 생활하기에 쾌적하고 '먹고 사는' 경제생산에 유리한 온대지역에 마을을 우선 만들었다. 현재 북위 20~60° 사이에 세계 인구의 약 80%가 집중되어 있다. 한국도 예로부터 겨울철에 북서계절풍 등 바람을 막고 일조량도 풍부한 양지가 명당의 기준이었다. 지리산 남쪽 자락 하동의 악양 들판이나 구례 운조루 앞들판을 한번 가서 보라.
마을은 성립과 발달 과정에 따라 자연발생형과 계획설정형으로 분류한다. 자연발생형은 토지이용과 농가배치가 불규칙하고 비효율적이고 무질서하게 이루어진 이른바 괴촌(塊村)이라는 후진적 마을의 모습을 띤다. 한국에서 쌀농사를 주로 짓는 집촌은 대부분 괴촌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띠고 있다. 곳곳에 '괴'자가 붙은 마을이름을 흔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우펜도르프(Haufendorf)라고 부르는 유럽의 괴촌은 주로 인간 주거와 마을형성의 역사가 오래된 서부 독일, 북부 프랑스, 영국의 저지대, 남부 유럽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계획설정형은 직선, 직각 등 수리적, 공학적 규칙과 질서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재편성한 마을의 유형이다. 미국의 타운십(township)이 대표적인 사례로서, 비교적 소수의 농민이 광활한 평지를 농지로 개척하기 위해 고안된 '바둑판 모양'의 토지구획 방식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일제시대에 한국의 옥구군과 군산시 일대에 형성된 간척촌이 계획설정형마을의 대표적 전경을 보인다.
마을의 진화는 괴촌, 열촌, 노촌, 가촌, 집촌, 산촌으로
마을은 주축을 이루는 구성요소의 기하학적 배열상태에 따라 괴촌과 열촌으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괴촌은 자연발생형이므로 경지구획과 농가배열에서 규칙성이 없고 무질서하고, 열촌은 가로, 수로 등을 따라 질서정연한 형태를 띤다. 유럽의 중세시대에 3포식 농법을 행하던 알프스 이북의 삼림지대와 소택지대에 주로 나타난다.
열촌 중에서 노촌(路村)과 가촌(街村)은 가옥의 밀집도와 내부구성, 도로의 의존도에 의해서 따로 구분할 수 있다. 노촌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가옥의 밀집도와 주민생활에서 가로 의존도가 낮다. 상업지역에서 흔히 보는 가촌은 가옥 밀집도와 주민생활에서 가로 의존도가 높다. 주로 전통시장이 발달하는 등 지역의 주요 상권을 이루는 삼거리와 사거리에서 발전되는 양상이다.
집촌과 산촌은 가옥이 밀집되어 있는가 또는 흩어져 있는가 하는 소밀의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가옥이 밀집되어 있는 집촌은 방어에 유리한 지역에 형성되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는 대표적인 집촌 유적이다. 변경의 외래 민족에 의해 위협받던 중국의 화북지방이나 해적의 침입을 받았던 지중해 연안에 외적방어용 성곽이 축조되며 집촌이 형성되었다. 북아메리카 뉴잉글랜드 지역 인디언의 마을 , 이스라엘의 키부츠도 외부 침략 세력에 대항하려고 전략적으로 형성된 집촌이다.
집촌은 자연환경의 차이에도 영향을 받는다. 건조지역에서는 물을 얻기 쉬운 장소, 저습지역에는 고지대의 건조한 지역이 입지에 유리하므로 집촌이 형성된다. 프랑스에는 지중해안에 가까운 지방, 스페인과 발칸 반도에서는 동부, 중부, 남부 등에 이러한 이유로 집촌이 넓게 형성되었다.
다만, 영국에서는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의 영향으로 집촌이 고립장택(孤立莊宅)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한국에서는 토질상으로 강변 충적지 등 비옥한 벼농사 지역에 집촌이 주로 형성되었다. 과학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전근대사회에서 저수지와 관개수로 조성부터 영농에 이르는 농업 노동력을 오로지 혈연을 중심으로 한 마을주민의 내부인력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옥이 분산되어 있는 산촌(散村)의 주민은 안녕과 질서 문제에 큰 우려가 없었으므로 분산된 소유 경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적어도 식수, 경지, 연료 등 기본생활요소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 자급자족의 고립생활이 가능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 북플랑드르 구릉지와 산지, 북벨기에서 중부 독일에 이르는 고지와 알프스, 피레네 산맥 등에 산촌이 발달했다. 한국에서는 고산지대라는 지형제약이 큰 태백산지, 한라산 사면에서 농업경영의 합리화와 규모화를 이룬 제주 서귀포지역의 감귤산지, 대구, 예산 등의 사과 주산지 등에서 산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정부의 정책지원사업 등을 통해 자연발생적 집촌을 계획설정형 마을로 재편성하고 있는 추세이다. 각종 공공 서비스 제공 비용을 고려, 생산의 효율성과 사회복지의 증진을 위한다는 정책목적을 내세운다. 최근 한국 농정당국도 농촌공간의 체계적·효율적 토지이용이 가능하도록 농촌의 일정 지역을 용도에 따라 구획화(zoning)하는 농촌특화지구 도입,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 제정, 농촌공간 전략계획 및 농촌생활권 활성화계획 농촌협약 등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자연발생형 마을의 계획설정형 마을로의 진화를 과연 인위적인 정책매뉴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