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으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텔 아비브에서 버스를 타고 네 시간을 넘게 달려야 이스라엘 남부의 휴양 도시, 에일랏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국경을 넘어 가면 요르단의 아카바입니다.
아카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나서 서너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목적지인 페트라입니다.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다른 국경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위험하거나 불확실한 루트를 최대한 피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페트라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페트라가 등장했었죠.
미디어에서 페트라가 등장할 때는, 주로 '알 카즈네'라는 건물이 등장합니다. 페트라 유적에서 가장 거대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건물이죠. 저도 물론 알 카즈네의 모습만을 머리에 담고 페트라에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페트라 유적은 알 카즈네가 전부가 아닙니다. 자세히 알아보고 온 것이 아니라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페트라에서 머무는 며칠이, 제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운동을 한 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페트라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저를 맞아준 것은 높은 오르막이었습니다. 숙소가 모여 있는 마을로 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습니다. 지도상 거리만 보고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죠. 택시를 탈 수도 있겠지만, 값비싼 택시 대신 저는 도보를 택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몇 번의 휴식 끝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페트라를 보기 위해 다시 그 언덕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도 해가 뜨겁습니다. 비싸기로 유명한 페트라 입장권을 구매했습니다. 1일권이 50디나르로, 9만 원에 가까운 요금입니다.
물론 페트라의 입장권이 비싼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르단은 서남아시아에 위치해 있지만, 석유가 나는 산유국은 아닙니다.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이 관광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에서 나오고 있죠.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페트라는 거대한 유적군입니다. 페트라에 입장한 뒤 20여 분을 걸으면 페트라 협곡에 도착합니다. 그 협곡 사이로 난 길을 따라 30여 분을 더 걸어야 가장 유명한 알 카즈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알 카즈네의 뒤쪽으로 왕가의 무덤이나 여러 신전,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죠. 가장 멀리 있는 수도원까지는 바위산을 한 시간 이상 올라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갈림길을 따라 유적을 볼 수 있는, 거대한 도시라 할 수 있죠.
이렇게 높은 산길을 올라야 하는지 사실 저는 몰랐습니다. 멀리 있다고는 들었지만, 뜨거운 해를 맞으며 이렇게 높은 산을 올라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수도원에 도착한 것은 벌써 정오를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정상인 듯 보이는 곳에 도착해, 옆을 돌아보니 바로 거대한 수도원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건물입니다. 바위산을 깎아 만든 거대한 외벽만이 아직 육중하게 서 있는 유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건물 앞에서, 저는 이 산을 오른 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페트라에 처음 도시가 들어선 것은 기원전 14세기 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무역에 종사하며 번성한 도시였다고 하죠. 좁은 협곡 안에 위치한 넓은 지형은 도시를 방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페트라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주로 기원 전후에 건설된 것입니다. 일부는 그리스나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그러면서도 이 지역의 전통적인 양식이 짙게 남아 있죠. 번성했던 도시의 흔적은 폐허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페트라가 버려진 것은 기원후 4세기 무렵에 벌어진 지진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서서히 몰락하던 도시는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물론 이 부근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도시와 유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죠. 하지만 협곡 안의 도시는 이방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다시 1500여 년의 세월을 지나게 됩니다.
페트라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19세기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였습니다. 이후 스위스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탐사가 이어졌죠.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유적의 모습도 속속 드러났습니다. 지금까지도 페트라의 발굴과 보존 작업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유적 가운데에서도 페트라가 유명세를 얻은 이유는, 물론 그 뛰어난 보존 상태 덕분일 것입니다. 아직도 정교한 부조와 화려한 벽면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니까요. 2천년 전 만들어진 유적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협곡 속에 위치해 물과 바람의 영향을 적절히 피한 것이 페트라가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합니다. 사막 한 가운데, 습도가 낮은 땅이었던 것도 물론 파괴의 우려를 덜어 주었죠.
당시의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이곳에 도시를 만든 것일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라져도, 1500년이 지나도 남아있을 수 있는 흔적을 만들었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위를 피해 수도원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바위산에 오른 한 시간 뿐이 아닙니다. 페트라를 보기 위해 텔 아비브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국경을 건넜고, 다시 버스를 타고 페트라에 도착했죠. 하룻밤을 지낸 뒤 몇 시간을 걸어 협곡을 지나고 또 산에 올랐습니다.
주변의 바위산을 둘러 봅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을 일도 없을 것 같은 이 높은 산 위에도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2천 년이 흘러도 그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흔적 앞에 2천 년 뒤의 사람인 제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이 수도원을 만나기 위해, 오직 페트라를 만나기 위해 제가 쓴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오직 페트라를 만나기 위해 쓴 며칠의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사라져도 도시는 남았습니다. 바위산은 남아 오늘도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1천 년 넘는 시간을 기다려, 다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깊은 협곡 안과 바위산 위,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서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