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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농촌에는 소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리고 농가에서 '소 치는 일' 곧, 소 먹이는 일은 대부분 아이들이 감당했다. 농사철에 어른들이 분주한 만큼 소 사육은 자연스레 아이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남구만이 지었다는 시조에 농사철 농가의 분주함과 아이와 어른의 역할이 그려져 있다. 남구만은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긴밭을 언제갈려 하느냐


날이 밝았으니 어서 일어나라며 아이를 다그친다. 밭갈기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날이 밝자마자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농가의 분위기를 읽게 한다. 여기서 시조는 소치기와 밭갈기의 두 가지 일을 말했다. 소치기는 아이의 일이고, 밭갈기는 어른의 일이다. 그런데 시조는 밭갈기를 걱정하면서 아이를 다그쳤다. 언뜻 상황이 맞지 않는 듯하지만, 실은 일의 형편이 그리 돼 있다.

소가 밭갈기를 제대로 해내게 하려면 힘을 잘 쓸 수 있게 배를 든든히 채워줘야 한다. 그래서 밭갈기에 앞서 소를 데리고 나가 풀을 뜯도록 하는데, 그것이 아이의 몫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아이가 소고삐를 잡고 나가 풀을 뜯기는 일은 1970년대까지도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 시기 농가의 아이들은 이른 아침에 목동으로서 소 꼴먹이기를 수행한 뒤 자신도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곤 했다.

농가 아이가 목동으로서 하는 활동은 학교에 댜녀 온 뒤에도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교 이후에 소를 몰고 산에 가서 풀을 뜯게 하고, 그 사이 아이는 꼴을 베어 꼴망태를 채웠다. 한낮에 집을 나서 이렇게 지내다가 해질 녘에 다시 꼴망태를 걸머진 채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가 농사일에 동원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농가 아이는 이렇게 거의 매일 소와 함께 산행을 되풀이하면서 지냈다.

소와 함께 하는 목동의 산행에는 때로 다른 아이들이 동행하기도 한다. 목동이 동생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소를 키우지 않는 집의 아이들이 목동을 따라 나서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에 가면 동네 다른 목동들을 만날 수 있다. 풀을 먹이기에 알맞은 곳에는 자연스레 다른 목동들도 모이게 된다. 소도 어울려 풀을 뜯으면 따로 이탈하는 일이 적어 관리도 좀 수월해진다. 그래서 때로 풀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아니면 목동도 그리하는 것이 편리하다.

소들이 풀을 뜯는 동안 목동들은 꼴을 베기도 하고, 어울려 장난과 놀이를 하기도 한다. 어울려 장난기가 작동하면 소 물 먹일 때도 그런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다음의 동요에도 이같은 장난스러움이 배어 있다.

물배동동 깔배동동
네에미네애비 목말라죽었다
너나먹고 잘살어라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함경남도 홍원 


물배는 새김질하는 짐승이 물을 먹으면 불러 오르는 오른쪽 배를 말하고, 깔배는 '꼴배'의 방언으로서 소가 꼴을 많이 먹어 불룩해진 배를 말한다. 그러므로 물배와 깔배는 소가 목동이 바라는 대로 최상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물에 뜬 듯이 배가 불려진 것이다. 그런데 목동은 소 더러 네 부모는 목말라 죽었으니 너라도 많이 먹고 잘 살라 했다. 물배가 되길 바라는 뜻으로 나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지만 착상이 거칠다. 장난기 어린 동심이 작동한 것이다.

여름철 계곡은 아이들의 놀이천국

아이들이 산에 가면 이런저런 놀이와 장난을 하지만, 여름이 되면 계곡에서의 물놀이에 다른 무엇보다 재미를 느낀다. 멱을 감으며 물장구치기, 물 퍼붓기 등의 물장난이 다른 놀이의 즐거움을 압도하는 것이다. 소먹이는 일이 아니라도 예전에는 어울려 놀기 위해 아이들이 마을 인근 산을 찾았고, 이러한 일은 1960년대는 물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특히 여름방학에는 산에서 칼싸움, 총싸움 등의 놀이를 하며 마지막에는 계곡에서 멱감기를 하는 일이 흔했다. 구전동요 중 계곡 물놀이 때 부르던 것도 있어서 아래에 적는다.   

물배동동 깔배동동
동글소의 깔배 동동
네가떴니 내가떴니
너도나도 모두떴지
물배동동 깔배동동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함경남도 함흥 


계곡에서 멱감다가 주변 돌에 앉아 다리를 서로 엇나게 올렸다 내렸다 장난을 치며 부른다. 물에서 발장난을 하면서도 둥굴소(황소)의 물배와 깔배가 불룩해져 둥둥 뜬 모습을 말한 뒤 아이는 둥굴소에게 묻는다. 둥둥 뜬 것은 둥굴소 너인가, 나인가? 그리고는 너도 뜨고 나도 뜬 것이라 했다. 소와 자신의 정서적 일체감을 표한 것인데, 실은 물놀이로 상쾌해진 기분을 소를 빌어 드러낸 것이다.

욕조 속에 들어가 물배 동동 찰배 동동 물놀이

요즘 농가에 소 사육 담당의 목동은 없다. 그런데도 '물배동동 깔배동동'은 살아있다. "전래동요를 재구성하여 아이들이 쑥쑥 자랄 수 있도록 어르고 놀아주는 몸놀이 그림책"이라는 <쭈까쭈까 쭉쭉>(출판-한울림어린이)에 '물배동동 깔배동동'이 나온다. 책 소개의 글에 "욕조 속에 들어가 물배 동동 찰배 동동 물놀이도 해보세요"라는 말이 있다. '물배동동 깔배동동'은 있지만, 계곡이 욕조로 바뀌었다. 

1930년대로 따지면 지금은 시차가 거의 100년에 이른다. 문화의 끈질긴 생명력이 놀랍고, 그 문화적 변용이 재미있다. 올여름 계곡을 찾는 가족들이 물가에 앉아 함께 발장난을 하며 '물배동동 깔배동동'을 부르며 그 옛날 목동의 정서를 소환해봐도 좋을성싶다.
 
 기상청이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서 올해 장마가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를 찾은 어린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기상청이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서 올해 장마가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를 찾은 어린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놀이#계곡#동창이 밝았느냐#목동#남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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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문화에 관심을 두면서 짬짬이 세상 일을 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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