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편집자말] |
한 도시 이름으로 알려진 음식을 맛본다는 건 큰 즐거움이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맛에 담겨 있는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 특성을 모두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안동찜닭이나 전주비빔밥처럼 말이다. 이처럼 맛에 한 도시가 담겨있음에도, 그 도시에 해당 음식으로 특화된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있다 해도, 음식의 유명세에 비해 공간이 알려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정부엔 부대찌개 거리가 있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부대찌개가 의정부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은 무척 남다르다. 아니, 우리 민족 최대 비극인 분단과 전쟁, 그리고 휴전 후 주둔하게 된 미군 부대가 배경이니 더욱 그렇다.
양주 시둔면 의정부리에 일제 강점기인 1922년 군청이 이전해 온다. 일제 말기인 1942년 시둔면이 의정부읍으로 승격한다. 그 상태에서 분단을 맞아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고, 의정부는 군사도시로 급격하게 변모한다. 무엇보다 미군 주둔지로서, 서울 북쪽에서 강력한 방어선 역할을 담당해야만 했다. 1963년 시(市) 승격으로 양주에서 분리한다.
미군과 제일시장
1911년 10월 15일, 경원선 1차 구간인 용산∼의정부 31.2㎞가 개통하면서 의정부역이 개통한다. 지금의 원도심인 당시 시둔면 의정부리가, 역을 중심으로 번성하였으리란 추정은 그래서 가능하다. 읍(邑)으로 승격할 당시, 중랑천 서쪽엔 어엿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군사도시 특성은 군대의 주둔과 군사기지 존재, 작전상 중심지로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해방과 함께 그어진 38선으로 의정부의 군사적 중요성이 특히 부각한다. 한국전쟁 발발 이틀 동안, 의정부는 서울을 방어하는 최전선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어진 휴전선으로, 의정부의 군사적 중요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북으로 동두천, 포천, 연천, 철원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의 중요 거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군의 주된 주둔지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군의 도시'로 변모한다.
총 9개 미군 부대가 주둔하는데, 시내 중심지 인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7개가 밀집되어 있었다. 의정부역 주변에 2곳, 가능동과 녹양동에 각 1곳, 금오동에 3곳이다. 의정부 주둔 미군은 대부분 전방 전투부대를 보조하는 보급부대였다. 따라서 각 부대 안에 보급 철로와 물품을 보관하는 대규모 창고를 두었다. 이들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이 전쟁 후 허기진 우리 생활 곳곳까지 파고든다.
전쟁이 끝나고 의정부도 쑥대밭이 된 시가지만 남는다. 전쟁 상흔에도 사람들은 파괴된 시가지를 복구하며, 삶의 의지를 다진다. 반면, 의정부엔 음성적으로 흘러나온 미군 부대 물품이 어느 지역보다 풍부했다.
한때 "의정부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돌 만큼 흥성했던 제일시장이 이때 생겨난다. 그렇게 흘러나온 온갖 보급품이 제일시장에서 유통되었다. 이런 기능으로 제일시장 역할은 매우 중요했고, 이후 부대찌개가 탄생하게 되는 거점 역할을 맡게 된다.
부대찌개의 탄생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특성 중 하나는 '끓인다'는 데 있다. 물론 서양 요리에 스튜(stew)처럼 끓이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끓여내는 우리 음식 문화는 무척 다채롭다. 재료를 우리거나 고아 국물을 내는가 하면, 맑은 물을 붓고 조미나 간에 맞게 끓이거나 조리는 국물이 있다. 물론 국물에 들어가는 내용물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이유로 국물을 내는 음식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각각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지만 우리는 이렇듯 국물이 가미된 음식에 '탕, 국, 전골, 찌개'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물의 조제법이나 농도, 내용물에 따라 다르다는 걸 우린 관념적으로 인식한다. 이를테면 미역국을 미역탕이라 부르지 않듯 말이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 중 단연 으뜸은 먹거리였다.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미군 음식은, 당시 우리 생활상에 비춰 무척 절실한 품목이었다. 햄, 소시지, 각종 육류가 음성적으로 흘러나와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유통된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이곳에선 '부대(部隊)고기'라 부른다.
음성적이었기에 초기엔 유통량이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또한 육류라는 건 알겠는데, 무척 생소한 재료임에도 분명한 사실이다. 배는 무척이나 고프다. 그냥 잘라 먹기에는 양도 부족할 뿐더러, 우리 고유 음식문화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에겐 김치찌개가 있다. 김치에 각종 고기나 생선을 넣어 끓여내는 고유 음식이다. 김치찌개에 고기 대신 소시지나 햄, 통조림 콩으로 조리해 본다. 김치 특유의 신맛이, 조미된 소시지나 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냥 먹기보다 양도 풍부하다. 부대찌개의 탄생이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김치의 개운한 맛과 매운 양념의 칼칼한 맛이, 햄과 소시지에서 우러나온 짭조름한 단맛과 잘 어우러진다. 국물은 또한 갓 지은 따스한 쌀밥과 무척 잘 어울리는 맛이다.
전쟁 후 미군은 서울, 부산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주둔했다. 따라서 부대찌개는 미군이 주둔하던 곳 어디에나 있었다 추정할 수 있다. 물량 차이는 있을망정, 부대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중 유독 '의정부 부대찌개'가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규모의 경제'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제일시장이라는 기반에, 대규모 보급원으로써 미군의 존재 말이다. 이렇듯 의정부 부대찌개는 오랫동안 명맥을 지켜갈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초창기 부대찌개는 의정부 등 미군 주둔지 로컬-푸드에 불과했다. 흘러나오는 부대고기의 명확한 한계 때문이다. 발달하지 못한 우리 축산업으론, 육류 가공품 공급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돼지 등 육류를 이용한, 부대고기와 유사한 가공품이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한다. 고기를 재료로 한 햄과 소시지가 식탁에 오르내린다. 그러자 명맥을 잘 지켜온 의정부 부대찌개가 상한가를 구가한다. 1990년대 급성장한 외식시장에 선풍적 돌풍을 일으킨다.
부대찌개 거리
맛은 기억이다. 어릴 적 먹었던 어머니 손맛이 평생 기억에 남는 이유다. 맛은 또한 창조다. 미각은 간사하다. 혀는 사소하고도 미세한 맛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맛을 다룬다는 건 더구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우엔, 그래서 더욱 이 부분에 충실해야 한다.
의정부 미군 부대는 그들 재배치 계획에 따라 이제 몇 남지 않았다. 제일시장도 더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품을 거래하는 시장이 아니다. 그저 도시 어디에나 있는 왁자한 시장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시장 곳곳에 부대찌개 흔적은 역력하다. 지하 식당가 모습도 여전하다. 마치 부대찌개 원류가 이곳임을 증언이라도 하듯 말이다.
의정부 로데오 거리로 변신한 제일시장 주변은 젊음의 열기로 늘 활기차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는 로데오 거리 북쪽에 있다. 경전철 역도 있다. 196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오던 몇몇 가게를 기반으로 1998년 30여 전문식당이 모여 만든 골목이다. 지금은 점포 십수 곳이 남아 명맥을 잇는다. 이곳 각 점포는 다양한 부대찌개 맛을 뽐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함에도 이곳 역시 제일시장 부대찌개가 모태일 것이다.
의정부에서 부대찌개를 파는 곳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모든 가게마다 분명 고유의 맛을 자랑할 것이다. 하지만 특성화, 집단화에는 한계를 보인다. 집단화의 가장 큰 장점은, 한곳에서 같은 음식의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맛과 사연을 곁들여 2002년부터 유명 만화로 연재된 <식객>에 이곳의 한 점포가 소개된다. 이로써 골목은 전국적 명성을 얻는다. 만화에 등장한 점포의 움직임에 따라 골목이 술렁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로써 불거진, 맛의 원조 논쟁 등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상표권으로 몇 번의 특허 관련 송사를 벌이지만, 골목을 찾는 식객들은 알고 있었다. 기억으로 남은 맛을 상기하고 구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맛은 기억인 까닭이다.
부대찌개는 비교적 최근 탄생한, 아픈 역사가 빗어낸 음식이다. 분단과 전쟁, 미군의 주둔에 기대야만 했던 우리 모습이 투영된 음식이다. 그래서 부대찌개를 먹을 때마다 우리의 상처와 아픔이 함께 떠오른다. 아울러 이를 극복해낸 힘으로써, 시고 달고 짭조름한 부대찌개 맛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