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정권 시기 해외에서 이뤄진 민주화투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적다. 특히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는 이들도 정확히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 이뤄진 민주화투쟁의 내용과 그 역사적 의미가 작아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자료발굴 및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특히 대중적 이해를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시청각 자료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최근 공개한 김대중의 1차 망명시기 음성자료 '1973년 3월 21일 일본 하코네 연설' 자료의 가치는 매우 크다. 먼저 배경 이해를 위해서 김대중의 망명활동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하도록 하겠다.
김대중은 민주화 투쟁 기간 중에 두 번의 망명생활을 했다. 첫 번째는 유신 선포 직후인 1972년 10월 18일부터 1973년 8월 8일까지 일본과 미국에서의 활동이며, 두 번째는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2년 12월 23일부터 1985년 2월 6일까지 미국에서의 활동이다. 여기서 전자를 1차망명활동이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김대중 1차망명 시기 음성자료는 총 6개인데, 이번에 공개한 음성자료는 그 중 하나다. 특히 재일 한인들을 상대로 한 연설 자료는 이것이 유일하다. 당시 재일 한인들은 민족적 차별을 받으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망명투쟁을 하면서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김대중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또한 김대중의 뛰어난 대중연설능력에 감동을 받아 김대중에 대한 지지가 크게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대중은 1973년 3월 21과 22일 일본 가나가와현 하코네에서 민단 도쿄 본부가 주최한 '민단 민주화운동 활동가 연수회'에 참석했다. 김대중은 100여 명이 참석한 이 연수회에서 3월 21일 강연을 했다. 이날 김대중의 연설은 재일 한인운동가들에게 큰 감동을 줬으며 반유신운동조직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연설의 영향이 컸다. 그러면 이 연설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유신 정권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을 강조하다
먼저 김대중은 강고한 억압을 하고 있는 유신 정권이 실제로는 매우 허약한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외 여러 실정으로 인해서 유신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은 이미 크게 형성돼 있는 상태이며 이를 강압적으로 누르면서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 김대중의 판단이었다.
"박 정권은 지금 강해서 힘이 있어 누르고 있는 게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총칼로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거 모두 합쳐 놓으면 무슨 일 할지 모르니까. 또 갈라. 독재자는 최후에는 내 자식까지도 못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독재의 생리예요.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볼 때 박 정권은 지금 급속도로 위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독재권력은 불안하고 허약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하지 못하고 국민을 더욱 억누르고 탄압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김대중의 진단이다. 김대중은 이러한 체제는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약하다고 봤다. 그래서 상대가 매우 거칠게 나온다고 해서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희망을 갖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설파했다.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가집시다. 우리가 역사를 믿고 정의를 믿읍시다. 역사는 꼭 정의가 이겼어요. 아까 말과 같이 그 암흑이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동트는 새벽이 가깝다는 것을 알려 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노력합시다."
다만, 김대중은 민주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굴복하지 말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김대중 자신이 거기에 선두에 서겠다는 의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가 이 시간에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이 시간에 우리 국민들의 자유와 독립과 통일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우리가 죽고 나서도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무덤을 보고, '당신들은 왜 그렇게 못난 선조였냐고.' 또다시 원망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에, 그런 원망을 받지 않는 선조가 되기 위해서 나는 내 목숨과 내 가족과 모든 것을 바치고 여러분과 더불어 싸우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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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목숨과 내 가족을 바치고 더불어 싸우겠다, 왜냐면" [김대중 73년 하코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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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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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을 지지하는 일본을 비판하다
이 연설에서 특별한 것은 유신 정권을 지지하는 일본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세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하는 연설이고, 청중이 일본에서 오랜 기간 민족적인 차별로 고통을 받고 있던 재일 한인이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먼저 김대중은 유신의 명칭부터 문제삼고 있다.
"요새 하고 있는 10월 유신이라는 거는, 세상에 말도 많은데 유신이 뭐예요 유신이. 일본 사람들이 100년 전에 써먹은 소리 아니오? 유신 아니면 그런 말이 없소? 그래 박사도 많고 학자도 많은데 겨우 지어낸 말이 유신이란 말이야.
이래가지고 일본 100년 전에 하던 거 이제 우리가 따라간다는 얘기요? 우리가 지금 유신하다니, 그래 지금 본국이 없으니까 속국이 한다는 얘기요? 이러한 짓을 하고도 조금도 민족적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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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일본 사람들이 100년전에 써먹은 소리 아니오?" [김대중 73년 하코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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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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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대중은 유신 정권을 지지하는 일본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일본엔 '반공안보를 강조하는 한국의 독재 정권이 일본의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었고 '한국 같은 제3세계 국가는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까지 퍼져 있었다. 김대중은 이를 비판했고 이같은 일본의 태도는 한국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일본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걸 봐도 당신들은 한국 국민은 자유 없어도 되는 안정할 수 있는 국민이라고 보느냐, 이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만일 당신들이 지금과 같은 이러한 국민의 뜻을 배반하고 국민의 믿음에 적대하는 이런 박 정권을 끝까지 지원했다가는, 그리고 이런 한국의 부패를 조장하고 국민을 수탈하는 이 일본의 그릇된 원조를 시정 안 했다가는, 당신들이 한국 국민을 깔보고 민족을 모욕하는 이런 짓을 끝까지 했다가는 당신들은 한국 민족의 적으로서 규탄받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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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정권' 지지하는 일본 향한 경고 [김대중 73년 하코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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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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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당시 재일 한인들이 일본에서 받고 있는 민족적 차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빨리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목이 메도록 바라는 남북통일도, 우리가 피눈물로 갈망하는 일본의 민단의 자유, 민주화와 더불어 일본의 교포들의 진실한 권익 보호도. 여러분이 해외에서 '네 조국이 어디냐?' 누군가가 어디냐고 하면 쭈물쭈물하면서 우물우물하고. 또 '한국이다' 하면 일본 사람들이 '으, 한국' 이렇게 깔보는 이런 서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요."
김대중의 비장하면서도 격정적인 연설
1973년 3월 21일 일본 하코네에서 한 이 연설은 1차망명 시기 김대중의 연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김대중은 미국과 일본에서 여러 차례 대중강연을 했는데 하코네 연설은 망명 중이던 그의 비장하면서도 격정적인 심경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설이 음성자료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다.
김대중이 이때 한 마지막 연설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여러분도 희망과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노력하는 동시에, 아까 말 같이 조그만한 일도 책임 의식을 가지고, 지금 이 시간에 박 정권 밑에서 신고(辛苦)하고 피눈물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고 말도 못 하고 있는 우리들의 형제들, 옥중에서 지금 고문을 당하고 재판을 받고 있는 우리 동지들을 생각해서 여러분이 그 사람들을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고 우리 동포들이 불쌍하다고. 거기에 분노를 느끼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참여와 투쟁을 해 주십사 하는 걸 부탁드리면서, 거듭 그동안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또 저희들이 변변치 못해서 항시 본국 정치가 여러분에게 실망과 좌절감만 주게 된 것을 진심으로, 마음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같이 결속해서 본국의 민주주의 회복과 조국의 통일과 해외 교포의 권익 옹호를 실행하는 그날을 하루속히 촉진시키기 위해서 여러분의 지도층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해 주십사 하는 것을 바라면서 저의 말씀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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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참여", 재일동포들을 움직이다 [김대중 73년 하코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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