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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김병기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노학자의 눈물. 우당 이회영, 신채호 선생의 평전을 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다. 군부독재 시절의 고문 후유증으로 떨리던 오른손은 탁자 위에서 요동쳤다. 앙다문 입술로 눈물을 삼키던 그는 일제가 "신채호 선생에게 신원보증 해줄 사람을 대면 풀어주겠다고 했는데 일가에서 소개한 사람이 친일 인사여서 이를 거부한 뒤 중국 대련 뤼순감옥에서 의문사를 당했다"면서 "나라면..."이라고 한탄하듯 거듭 되뇌었다.

지난 8월 28일 경기도 남양주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을 만난 건 최근 펴낸 <겨레의 노래 아리랑>(두레 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근현대사 50인의 인물평전 저자이자,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인 김 전 관장으로부터 윤석열 정권이 자리매김될 역사적 거처에 대한 냉철한 평가도 듣고 싶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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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에 담긴 '해원상생' 민족정서...'K-POP'의 원조
 
 오마이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오마이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김병기
  
우선 80세 노학자가 '아리랑'에 주목한 까닭부터 물었다.

"국민은 물론 해외 동포, 이주민을 포함해 한민족으로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민족 정서의 원형이죠. 세계 각지 교포들이 만나면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망향가처럼 애국심을 담아서 부르는 노래가 전통 가요 아리랑입니다. 그 뿌리를 찾고 줄기가 어떻게 뻗어왔는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김 전 관장은 "도쿄, 하와이, 평양, 하얼빈이라든가 카자흐스탄 등 국제학술 심포지엄에 참가하면 뒤풀이 때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남북 화해 시대의 국가로서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해외에 나갔을 때 헌책방과 도서관 등을 뒤지며 자료를 모았는데, 30여 년간의 숙성 기간을 거쳐 이 책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평전의 대부가 쓴 '아리랑 전기'인 셈이다.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경기아리랑... 아리랑의 종류는 많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채집된 아리랑은 무려 186개.

김 전 관장은 "일제강점기 때 이토 히로부미나 을사오적을 비판하는 노래를 민중들이 직접 지어 부르면서 후렴부에 아리랑의 원형인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을 붙이기도 했다"라면서 "일제가 동학혁명과 3.1혁명 때 만세와 함께 불렸던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매국노와 친일파들은 이를 왜곡해서 변형 아리랑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 책 표지
'겨레의 노래 아리랑' 책 표지 ⓒ 두레 출판
 
김 전 관장은 이어 "흔히들 아리랑을 '비애' '슬픔' '한의 정서'가 담긴 노래로 규정하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는 가사, 그 안에 내재된 정서는 벼락을 맞거나 염병에 걸리라는 악한 뜻, 증오의 정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버렸지만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 섞인 '해원상생'의 민족 정서가 담겼죠. 한을 풀어내는 '해원', 더불어함께 살자는 '상생' 말입니다."

김 전 관장은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과 내우 등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해왔고, 그 배경에는 한민족 고유 문화가 있었다"라면서 "최근 케이팝 등 'K'자 돌림의 문화가 세계적인 대유행을 타는 것도 해학의 탈춤, 민요, 노동요 등의 민중문화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며 그 대표적인 게 아리랑이었다, 한류의 원조는 바로 아리랑"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펴낸 <겨레의 노래 아리랑>에는 창작 판소리의 독보적 명창 임진택 선생과 음악평론가 김태균 선생의 감수와 추천사가 붙어있다.

내가 평전을 쓰기 시작한 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원고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원고지 ⓒ 김병기
 
포털사이트에서 '김삼웅' 인물 검색을 하면 무려 142건의 책이 따라붙는다. 이중 대부분의 인물 평전은 홍범도부터 안중근, 김구, 신채호, 한용운, 조봉암, 김원봉, 장준하, 전봉준, 송건호, 함석헌 등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면교사'들이다. 이들과 대척점에 선 인물로 평가되는 이승만과 박정희, 안두희 등의 평전도 있다. 이들은 '반면교사'들이다.

김 전 관장은 80세의 연세이지만 지금도 매일 3~4시간씩 평전을 집필한다. 떨리는 손으로 사각의 원고지에 인물의 살과 뼈를 한자씩 붙여 넣는 진통의 작업이다. 오른손 중지와 검지에 박힌 굳은살은 노동의 흔적이다. 집필을 끝낸 뒤에도 자료의 바다 속에서 원고지 한 칸을 채울 역사적 사실을 캐는 사전 작업. 아파트 책장이 부족해 거실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 3만 6천여 권의 장서는 그 흔적이다,

김 전 관장은 2008년부터 <오마이뉴스>에 매일 <김삼웅의 인물열전>을 연재해 왔다. 자신의 딸이 원고지에 적은 글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1차 교열을 하면서 돕는다지만, 가혹하리만치 지독한 집필과 역사인물 탐구의 연속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김 전 관장의 평전을 접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민주전선> 기자를 할 때였어요. 국회의원이나 박정희 전성시대 정부의 요직을 꿰찬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그때는 고등고시, 고등문관시험, 사법문관시험이라고 불렀을 때인데 대부분 친일부역을 했던 사람들이고 공공연하게 일본 왕을 천황이라고 불렀죠. 그때 '박열'이라는 단편 기록을 읽었어요. 일본에서 노동하면서 일왕 척살을 준비하다가 미수에 그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이죠."

김 전 관장이 평전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아나키스트이면서 의열단 비밀요원이었던 박열 선생의 삶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단다. 무엇보다 김 전 관장을 매료시킨 건 20대 노동자였던 박열 선생이 재판 과정에서 내건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이었다.

"나는 조선을 대표하니까 피고인이 아니다. 일본 판사가 법의를 입었듯이 나는 조선을 대표해서 조선 왕의를 입도록 해라. 나는 조선 민중을 대표해서 조선말을 할 테니까 통역을 대라. 나는 조선을 대표하니까 판사하고 같은 단상에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하라."

이런 역사적 인물로부터 받은 교훈을 후대에 전하겠다는 일념이 평전 집필의 동기이자, 지금도 평전을 집필하는 동력인 셈이다.

언론의 곡필사 집필... 조중동으로부터 핍박
 
 김삼웅 선생이 서재에서 책을 꺼내들고 있다
김삼웅 선생이 서재에서 책을 꺼내들고 있다 ⓒ 김병기
  
김 전 관장의 저서 목록에는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의열단, 항일의 불꽃> <한국필화사>, <금서>, <위서> 등 우리 근현대사를 조망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역사를 통찰한 책도 다수 있다. 언론인이기도 한 그는 <곡필로 본 해방 50년> 등 일제강점기와 그 뒤 조중동의 곡필을 비판하는 2권의 책도 집필했는데, 이로 인해 핍박을 받기도 했다.

"제가 독립기념관 사외이사를 할 때 독립기념관 제1전시실에 진열된 일제 말 조선일보 윤전기를 봤습니다. 하와이에서 교포들이 만들었던 독립신문 활판 인쇄기는 창고에 처박혀 있었죠. 그래서 그 위치를 뒤바꿨습니다. 저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격은 그때부터였죠. 결국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6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독립기념관장을 그만뒀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독립기념관에 매일 기자를 파견하다시피하면서 비판 기사를 생산했다. 보수 언론은 관람 인원수를 꼬투리 잡았고, 그가 재임 중 광장에 게양한 815개의 국기 게양을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했다. 국가보훈처, 행자부 등으로부터 2년 반 동안 뒷조사를 당했다.

"그때 조사를 벌였던 한 사람이 되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더라고요. 이 분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 표창을 줘야할 사람이라고."

평전을 저술하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도 따른단다. 가족사와 개인사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는 인물이나, 부분적으로 행적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자료조사 작업의 한계 등. 그는 또 "출판사는 이익이 남아야 하는 데, 종잇값도 많이 오르고 인지도가 낮은 분들은 책이 잘 안 팔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라면서 "출판사에 미안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평전을 계속 집필하는 이유에 대해 김 전 관장은 "아직도 평전에 담으려 했던 인물들의 목록이 남아있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준비하는 평전은 '겨레의 인물 100선'(가칭). 이 약전에는 군주나 장군 등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소신과 신념을 지켰고, 백성들의 권익을 위해 그리고 겨레의 앞날을 위해 헌신한 인물을 실을 예정이란다.

내가 윤석열 대통령의 평전을 쓴다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자택에는 장서 3만7천여권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자택에는 장서 3만7천여권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 김병기
 
김 전 관장에게 자신이 낸 평전 중 현대인들에게 한 번쯤 권할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저에게는 어느 책 한 권도 소중하고 아끼지 않는 책이 없지만 최근 영국에서 번역출판을 준비하는 우당 이회영 선생 평전은 윤석열 대통령이나 측근들도 한 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이같이 부연했다.

"삼한갑족의 부자, 명문가 집안에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하신 우당 이회영 선생도 훌륭하지만, 부잣집 딸로 태어나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다 들어주고, 베이징 외곽에서 텃밭을 일구면서 조선 청년들이 찾아오면 김치를 담가주기도 했던 부인 이은숙 여사의 삶도 눈물겹죠.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보수수구 유튜브에만 경도될 게 아니라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포용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으면 합니다."

김 전 관장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평전을 집필하면 어떤 인물로 그릴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평전을 쓰면 좋겠다는 제안도 받았는데, 반면교사감도, 정면교사감도 못되는 인물 평전을 쓸 이유가 없다고 거절을 했다"면서 "윤 대통령 평전은 국정운영을 더 지켜본 뒤에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후대의 사가들은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평가할까? 김 전 관장은 얼마 전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시국미사 때 발표한 글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죽음으로 죽음이 덮이고 통곡이 또 다른 통곡에 의해 잦아드는 이 참담한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김 전 관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평전을 집필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쓴다면 그 방향은 정해졌다.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 등과 같이 우리 역사를 역류시키고 민주주의를 질곡으로 빠뜨린 '반면교사'감인 것만은 분명했다.
 
▲ [이 사람, 10만인] 내가 윤석열 평전을 쓴다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인터뷰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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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노래 아리랑

김삼웅 (지은이), 임진택, 김태균 (감수), 두레(2023)


#김삼웅#아리랑#평전#윤석열#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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