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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네와는 개사돈지간이다. 그러니까 시집도 안 간 내가 개며느리를 맞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후사를 볼 순 없다. 중성화수술 직후에 만나 서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싱그러운 여름, 생후 8개월차였던 모리(이웃의 반려견)는 신비로운 눈망울과 보드라운 흰 털을 날리며 생후 6개월차인 구찌(나의 반려견)의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갔다. 산책 때마다 잘 걷지 않아 골치 썩히던 녀석이 모리를 본 순간 쏜살같이 내달려 그녀의 앞을 막아섰을 때, 큐피트의 화살이 명중했음을 알아챘다. 모리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구찌를 아련하게 바라봤다.  

모리와 구찌
 
 걸을 때도 연신 몸을 붙이던 모리와 구찌.
걸을 때도 연신 몸을 붙이던 모리와 구찌. ⓒ 김지성

"구찌 보러 갈까?"

낮잠에서 깨어난 모리에게 속삭이면 귀를 쫑긋하고 몸을 일으킨다 했다. 바람이 향긋한 샴푸향을 실어왔는지, 별안간 구찌가 전력질주한 길 끝에는 언제나 모리가 있었다.   

풀 냄새 맡을 때에도 서로의 옆구리를 따스히 붙였고, 걸어갈 때조차 연신 몸을 스쳤다. 잠시 쉴 무렵엔 모리의 귀가 닳도록 열심히 핥아주고는, 구름다리 위에 나란히 앉아 넘어가는 해를 지긋이 바라봤다. 헤어지기 전엔 그녀의 집 앞 횡단보도까지 배웅하며 멀어질 때까지 제자리를 지켰다.   

"식을 올립시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뛰노는 녀석들을 향해 걸어오신 엄마가 한 말이다. 농담삼아 개사돈을 맺었어도 시할머니로서의 체면이 있다며 혼수같은 겨울옷 두 벌씩을 선물해주셨다.

커플옷 맞춰 입고 동네를 누빌 때마다 반려견 보호자들이 손뼉 치고 반기면 둘 다 헤벌쭉 웃어보이기도 했다. 밑에서 반려견끼리 꽁냥꽁냥 사랑을 나눌 동안, 위에서는 보호자들의 살아가는 얘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구찌는 파양견이었다. 반려견 입양에 대한 수년간의 고심 중, 우연히 파양 공고에서 생후 3개월차였던 녀석을 운명처럼 만났다. 난생처음 보호자가 되었기에 시행착오 역시 적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적적했던 엄마의 마음을 살갑게 채워준 것만으로 녀석의 효도는 이미 다한 것이나 진배없다. 매일 싱싱한 야채를 삶아 손수 구찌 입에 넣어주며 다정하게 눈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은 생경하고도 흐믓하다.

모리 역시 햇살처럼 모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딸 상미에게 더없는 친구로, 엄마의 고된 삶에 위안이 되어주는 애교 많은 개딸이 되어 매일같이 웃음을 선물했다. 

초등학교 때, 상미를 괴롭혔던 친구가 되려 착한 어린이상까지 받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두 살 터울의 언니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 "너가 지금 그 상을 받는 것이 맞다 생각해?"라고 물었단다. 그 언니가 지금은 군인이 되어 가족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모리 산책 때마다 동행하는 상미의 눈은 언제봐도 샘처럼 맑고 깊다.  

그녀의 엄마는 아직도 2년 전, 잠시 동안 상미를 잃어버려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던 일을 회상한다. 늘 집에 오던 버스의 노선이 바뀐 줄 모르고 탔다가 외딴 동네에 상미 혼자 내려지고 만 것이다. 한참을 헤메이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는 지친 발을 쉬게 해주었단다.

다행히 이를 유심히 본 중학생의 신고 덕에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는 상미. 비록 1시간 남짓 했던 시간이었어도 1분 1초를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자책했을지. 모리 엄마는 늘 그랬듯 상미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그래도 이만하니 감사하죠...!"  

개사돈의 인연
 
 넘어가는 해를 지긋이 바라보는 모리와 구찌.
넘어가는 해를 지긋이 바라보는 모리와 구찌. ⓒ 김지성
 
그렇게 두 반려견은 서로의 보호자에게 첫 이웃을 선물해 주었다. 같이 산책하는 동안 계절옷도 세 번을 바꿔 입었다. 매서운 한파에 발을 동동 굴러도 녀석들이 모닥불처럼 피어올리는 애정 표현을 보고 있노라면 언 손도 녹일 듯 훈훈했다.

개사돈끼리 점심 나들이를 위해 동네 밖을 벗어나기도 하고, 명절 땐 음식을 넉넉히 준비해 서로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마트에서 과일 하나를 사더라도 생각난 김에 조금 더 구입해 초인종을 누르면, 잠시 있으라 붙잡고는 기어이 차 한 잔을 내주었다.

매일 만나 하루의 일과를 묻고, 무탈함을 감사해하며, 보이지 않는 앞날도 응원해 주었다. 근심은 위로와 함께 반으로 덜어냈다. 사계절 동안 무수히 걸어온 산책길은 정으로 깊이 물들어 갔다.  

반려견들의 첫 생일 때도 온 마음으로 축하해주며 더욱 건강하게 자라주길 소원했다. 내년에도 두 녀석들이 얼마나 재미있는 추억을 안겨다 줄지 벌써부터 기대하며, 어느 해보다 뜻깊었던 2022년을 마무리했다.   

모리가 산책중에 쓰러진 것은, 봄꽃이 막 기지개를 펴던 2023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 <연인> 파트 2보다 궁금한 '모리네 이야기' 파트 2는 10월 글에서 이어집니다.

#반려견#개사돈#개며느리#개사위#개장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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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배우이며, 끄적끄적 글쓰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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