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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네 상점에 키오스크가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식자재마트, 생활용품매장, 커피점, 식당 등 자동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포스에 내딛는 첫 발부터 멈칫하게 한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어색한 대치상황이 잠시 흐르고, 결국 뒷줄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검지손가락이 슬그머니 화면 터치를 시도한다. 리더기에 결제카드를 꽂기 직전까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어야 비로소 기계가 토해낸 영수증을 뽑아들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장을 보고 오신 엄마가 마트에 계산대가 없어졌다며 씁쓸하게 말문을 여셨다. "좋은 세상은 아니야. 자꾸 발전할수록 노인은 갈데가 없어." 실제로 지나가다 마트 안을 슬쩍 훔쳐보니 키오스크 앞에서 잔뜩 겁을 먹은 어르신들이 줄지어 서 계셨다.

어제까지도 친절히 계산을 도와주던 직원이 하루아침에 삭막한 기계로 둔갑해버려 적잖이 서운함을 느낄 법도 하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원감축이 원인일 거라 짐작은 되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기간을 조금만 배려해 주었다면 고객까지 정리해고 당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노년도, 중년도 민폐를 끼치기 두렵다
 
 키오스크 앞에서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엄마.
키오스크 앞에서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엄마. ⓒ 김지성
 
일언반구없이 오늘부터 달라진 세상에 하루빨리 귀속되길 바라는 듯한 통보방식이 되려 신문물에 익숙치 못한 노령층에게 소외감을 안긴 것은 아니었을까. 더불어 전쟁을 겪고 국가 성장의 거름이 되었던 지난 세월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만 드리워져 헛헛함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일흔을 훌쩍 넘기신 동네 카페 여사장님은 핸드폰으로 게임, 동영상 검색도 다 할 줄 아는데 카톡 문자만 서툴다 하셨다. 딸에게 사용법을 물어본 순간, 그것도 못하냐는 타박을 받은 이후로 마음의 문이 닫혀 버렸단다.

그 얘기에 내심 뜨끔했다. 음성인식 검색까지 하면서 카톡 문자는 왜 60여 통이나 쌓아두냐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같은 연유가 아니었을지. 좀더 친절하게 가르쳐 드렸어야 했다는 후회와 반성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중년세대들은 디지털 신문명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 명백히 난 "아니오"에 속한다. 아직까지 컴퓨터 엑셀조차 다룰 줄 모르는 컴맹에다가, 글도 핸드폰으로 작성한다. 노트북 전원 켜고 세팅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핸드폰 메모 어플 여는 손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몇 번을 배워도 컨트롤 C, V 같은 컴퓨터 용어는 매번 동공풀림과 유체이탈을 부른다.

얼마전 핸드폰을 교체하면서 받아온 노트북은 주인을 잘 못 만난 탓에 벌써부터 먼지가 쌓이고 있다. 프린터도 핸드폰 캡처 사진을 전송해 인쇄한다. 글씨가 좀 흐릿하지만 식별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자칫 얼리어답터같아 보일 수 있으나 오해다. 컴퓨터의 부팅을 느긋이 기다리지 못하는 성격과 무지 속에서 터득한 나름의 방법론일 뿐이다.  
 
 글도 핸드폰으로 작성한다. 노트북 전원 켜고 세팅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핸드폰 메모 어플 여는 손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글도 핸드폰으로 작성한다. 노트북 전원 켜고 세팅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핸드폰 메모 어플 여는 손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 최은경
 
SNS 계정 또한 조카가 만들어줬다. 간혹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단숨에 핸드폰부터 낚아채 뚝딱 해결해버린 후, 도로 툭 건네준다. 두 번 되물을 용기는 없다. 작년 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케이크를 주문할 땐, 키오스크에서 꼬치꼬치 세부사항을 묻는 통에 이것저것 겹쳐 누르다가 결국 시스템 오류로 전원이 꺼져버렸다.

뒤에 서 있던 고객들까지 지체되는 심각한 사태에 진땀마저 흘렀다. 결국 대면주문을 위해 앞전에서 비슷한 곤욕을 치른 듯한 동년배들과 나란히 구석 자리로 비켜섰다. 비록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어도 서로 닮은 표정이 속마음을 짐작케 했다. "남은 인생 어찌 살아가야 할꼬..!" 그날 이후로 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지난 번엔 점원이 도와줬지만 두 번의 민폐를 끼치기 두렵다.  

반려견과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데 도로변 전자매장 안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개를 홍보하는 뉴스 영상이 보였다. 네 발로 성큼성큼 걷고 점프도 하며 발랄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에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 "AI 로봇개도 목줄 채우고 산책시켜야 하나...?" 중년층 역시 아날로그와 디지털 경계 그 어디쯤에서 표류 중인 반소외계층일 뿐이다.  

우리도 언젠가 늙는다

아직 키오스크가 설치되지 않은 동네 삼거리 'OO마트'는 어르신들 최후의 격전지로 남을 가망성이 크다. 그곳마저 함락된다면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우든지, 주말에 한 번 열리는 7일장을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는 나도 삼거리 'OO마트'에 갈 생각이다.  

4차산업혁명이 화두인 현세의 물결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지금보다 편리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다만 그 목표가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현실 부적응자로 낙오되어 자존감을 상실하는 일 없도록 부디 천천히,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를.

무인상점 안의 키오스크 앞에서 30번 이상 재시도 했다는 정직한 초등학생 기사도 있지 않았던가.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권위자 제프리 힌턴은 AI가 인류에게 미칠 나쁜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최근 10년 이상 몸 담았던 구글에 사표를 냈다. "자본주의와 경쟁체제 속에서 AI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AI 기술을 넓혀선 안 된다"며 발전 속도에 국제적인 규제 도입을 제시했다.  

우리도 언젠가 늙는다. 훗날 미래세대가 만들어낼 5차산업혁명의 신세계를 상상해보라. 마냥 좋기보단 다리가 먼저 후들거려 온다.

#키오스크#AI#디지털신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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