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주노동자와 고용허가제
한국에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120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여러 비자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서 많은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노동자가 부족하고 산업 현장에 노동자 수요가 많아 이주노동자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E-9비자), 계절근로제도(E-8비자), (준)전문직(E-7비자), 선원(E-10비자), 방문취업제(H-2비자) 등으로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데려오고 있습니다. 동포(F-4비자), 영주권자(F-5비자), 결혼이민자(F-6비자), 유학생(D-2비자) 등도 노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 중에 대표적인 이주노동 제도가 고용허가제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동·서남아시아 16개 국가에서 비전문 인력 생산직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옵니다.
고용허가제는 2004년부터 실시되었는데, 그 전에는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기술 배운다는 명분으로 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와서 일했습니다.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아무 권리도 보장 받지 못했습니다. 산업연수생들은 노동법, 최저임금법, 산재보상법 등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고 임금체불, 여권·통장압류, 폭언·폭행, 산재, 인권유린에 시달렸습니다. '노예연수제'로 숱한 비판을 받았고 문제가 많아서 정부는 산업연수생제도를 대신해 고용허가제를 실시했습니다.
노동계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제도이고 고용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고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는 등 문제가 크므로,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하고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고용허가제는 20년 가까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도와 달리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합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 한국어능력시험과 기능테스트에 합격해야 합니다. 합격하면 2년간 구직자 명부에 올라가고 사업주에게 선택받아 근로계약 체결을 하면 최초 3년까지 일할 수 있고, 이후 사업주가 계약연장을 해주면 1년 10개월간 고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또 4년 10개월이 되었을 때 사업주가 재고용을 해주면 1개월 정도 출국했다가 다시 재입국특례로 그 사업장에 올 수 있습니다.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 사업장은 중소영세 제조업(300인 미만), 농업, 어업, 일부 서비스업, 건설업입니다. 이주노동자에게 제반 노동관계 법령이 적용됩니다.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 권리가 없는 이주노동자
산업연수생제도와 달리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연수생이 아니라 노동자로 오는 겁니다. 이주노동자도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직장 선택과 변경할 권리, 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주거권(안전한 기숙사 제공 등), 건강권, 쉴 권리, 강제노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노동3권 등 모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들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고용에 관한 모든 권리가 사업주한테만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해야 합니다. 근로조건 협상의 여지도 없고 다른 사업장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근로계약서에 서명 안 하면 다른 사업주가 자기를 선택해줄지 아닐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서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정보도 자세히 제공되지 않습니다. 근로계약에 정해진 기간까지 일해야 하는데 3년 이내의 기간에 노사 자율적으로 고용기간을 정하게 되어 있지만 보통 사업주가 3년짜리 계약서를 보내므로 그렇게 사인을 합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오지만 사업장(직장) 선택과 변경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업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근로조건 열악해도, 안전하지 않고 위험해도, 임금이 적어도, 부당한 처우나 사업주의 부당한 지시가 있어도 일해야 합니다.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사업주가 동의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노예노동, 강제노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주면 다른 데로 옮겨갈 수 있고 동의 안 해주면 계약 기한까지 일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억지로 해야 합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사업주가 원하는 양을 생산해야 합니다. 장시간 일해야 합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병원에 가지 못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합니다. 위험한 사업장에서 안전장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내용과 위험성에 대해 아무 표지나 안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은 늘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다, 힘들어서 쉬고 싶다고 해도 '꾀병이다', '그냥 일해라'라고 합니다. 사업주가 믿어주지 않습니다. 사업주가 믿어주면 진짜 아픈 것이고, 믿어주지 않으면 꾀병이 되고 거짓말이 됩니 다. 그래서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의사는 사업주입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병에 걸린 상태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사장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젊으면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도 3, 4년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하는데도 아무 장비를 주지 않고 일을 시킵니다. 내국인 관리자들은 이런 작업현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작업 지시도 멀리서 합니다. 자신들도 거기 들어가서 일하면 병에 걸리거나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4%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사고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이 내국인에 비해 3배나 높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시키지만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위험노동을 하고 있습니 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체불 액수는 한 해 1000억이 넘었고, 임금을 못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도 많습니다.
농업,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63조 때문에 휴게, 휴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초과근로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이주노동자 숙소 문제 역시 심각합니다. 절반이 컨테이너, 조립식패널 등 임시 가건물에 살고 있습 니다. 임시 가건물은 사람이 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후 이런 임시 가건물들이 이주노동자 숙소로 변했 습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숙소 70%가 임시 가건물입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도 마찬가지로 아주 열악합니다. 냉난방 장치, 샤워실, 화장실 등 부실합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해서 저녁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숙소에서는 온전한 휴식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숙소에 살다가 이주노동자들이 오히려 건강과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2020년에 비닐하우스에 살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추위 속에 숙소에서 밤에 사망한 일이 있습니다. 이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정부가 이주 노동자 숙소 개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컨테이너 등 임시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사업주에게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주들은 여전히 편법으로 고용허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방 사진 찍어서 고용센터에 보여주고 고용허가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면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에서 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대책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하루 하루 고통받으면서 노동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임시 가건물 숙소는 금지해야 합니다.
사업장 변경 제한에 '지역제한'까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돈 벌어주는 기계로만 생각합니다. 모든 권리가 사업주한테 있어서 근로조건, 숙소 환경 개선을 안 합니다. 낙후된 기계에 안전장비도 없이 일을 시킵니다. 오래 일해도 임금인상이 안 됩니다. 이주노동자한테 하는 부당한 대우들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 등 모든 것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니 사업주에게 저항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면 사업주가 불이익을 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또 사업장에 노조 만들어서 투쟁할 상황도 안 됩니다. 고용기간 연장 안 될까봐, 재입국 안 될까봐, 괴롭힘 당할까봐 이주노동자들은 투쟁하기를 무서워 합니다. 사업주들은 이런 것을 이용해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열악한 사업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업장을 그만 두는 겁니다. 그러나 정부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해주면 기업이 망한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이주노동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를 개악하면서 이주노동자 권리는 박탈하고 사업주 권리를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더 제한하기 위해 이번에 지역제한까지 추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거나 고용센터가 직권 변경을 해주면 이주노동자는 전국 어디서나 다른 사업장을 찾아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9월부터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부터는 정해진 한 지역에서만 있게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일하지 못하게 하여 이주노동자의 지역 이동권, 거주이전의 자유마저 박탈하는 겁니다.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기본권이 쉽게 박탈당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주노동자도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오기 시작한 지가 30년이 넘었습니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한국 사회, 산업 현장이 운영될 수 없는 상황이고 앞으로는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도입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주노동자는 무권리에 차별과 착취,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도 같은 사람이고 같은 노동자입니다. 사람으로서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가 내국인과 동등하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차별과 착취, 배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용허가제를 비롯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제도들은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이런 잘못된 제도들을 하루빨리 바꿔야 합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의 나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도로 바꿔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