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이렇게까지 오를 줄이야. 이게 몇 배야? 배... 백배? 나는 그 경이로운 주식 차트를 보다가 그만, 휴대전화를 침대에 패대기쳤다.
"에잇! 그렇게 가지고 있을 땐 안 오르더니..."
코로나로 인한 폭락으로 정리하기 전까지 3년간 보유했던 주식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던 평균 가격에서 백 배가 올랐다. 얼마 전부터 힘을 잃고 고꾸라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70배.
자꾸만 터져나오는 한숨과 후회
"코로나 때 팔지 말고 바짝 당겨서 더 투자했어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 같은 새가슴이 백 배가 오를 동안 그냥 두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내세우기엔 아찔하게 치솟아 올라 있는 주가 차트가 너무 뾰족했다. 그 뾰족함이 뭘 자꾸 찔러대는지 자꾸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 그때..."
다시 후회 2절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짝!!"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떨어졌다. 그리고 후회에 몸서리치는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처방전도 함께 떨어졌다.
"다~ 그리 될라꼬 그랬겠지! 괘안타! 망할 뻔 해놓곤 뭘 그리 아까버 해쌌노! ....... 아프나? 너무 시게 때릿나?"
정녕 당신께선 나를 잉태했을 때 신경써주지 못했던 것부터, 조금 전의 등짝을 내려친 것까지 후회하시면서 말씀만은 이리 명쾌하다. 실천력 없는 현자의 답. "그리 될라꼬 그랬겠지." 처음엔 알아듣지 못하고 웬 외국말을 하시나 싶었지만,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으로선 이해되지 않는 결정에 갖가지 의문을 품기 일쑤다. 그리고 지나치게 꽉 끌어안고 있다 보면, 의문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후회라는 감정으로 부화해서는 이내 속을 시끄럽게 만든다.
"아... 막히네. 아까 교차로에서 빠졌어야 했는데..."
"에이, 맛이 별로네. 아까 그 가게 갈 걸..."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크고 작은 일에 생겨나는 후회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밉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불행해졌다는 근거 없는 인과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딱히 믿을 만한 분석도 아니고 그게 맞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과거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일은 비공식 통계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난다.
과연 당시의 선택이 문제였을까? 코로나로 주가가 폭락할 때, 더 큰 폭락이 있기 전에 레버리지 투자금을 대거 회수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큰 손실을 피하고선 2020년 3월 21일의 최저점에서 '지르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욕심이다.
막히는 길에 서서 한숨을 쉬고 내야 할 음식 값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상황은 때론, 심사숙고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때!'라는 과감한 선택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금 더 고민했다고 해서 항상 더 나은 결과를 얻었던 것은 아닌 셈이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기대에 부응하거나 생각처럼 흘러가지도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닌 굉장히 감사할 일일 테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맞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이성만으로 살아가던가.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자꾸만 벌어지는 간극에 또 한숨이 나오고 만다. 에휴...
일상이 된 후회에 대처하는 법
인생에서 선택의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항상 유념하는 진실이지만 자주 잊는다. 여러 사건의 결과가 겹겹이 쌓여 현실이 되었음에도 현재의 결과만을 보며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스스로를 일깨울 수 있는 혼잣말이 필요하다.
"다~ 그리 될라꼬 그랬겠지! 괘안타!"
애써 내뱉는 "어쩔 수 없지.", "별 수 없지."와는 다르다. 현재의 결과가 마뜩찮지만 받아들이겠다는 체념이 아닌, 더 나쁠 수도 있었다는 안도와 지금도 괜찮다는 확신이다.
더 큰 피해를 볼 뻔했던 투자, 더 막혔을 수도 있었던 길, 더 맛없을 수도 있었던 음식, 더 극한으로 치닫을 수 있었던 관계의 골. 무엇이 최선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볼 수도 없을 테니까.
"그래... 다 그리 될라꼬 그랬겠지."
어린 시절 다친 부위에 된장을 바르듯, 속상한 마음 위로 어머니의 덤덤한 위로가 뭉근히 내려앉는다. 온 집안에 붙었던 빨간 딱지, 지금도 이불 킥을 날리게 하는 학창시절의 원수, 근시안적인 선택으로 일어났던 사고, 재치로 보이고 싶었던 면접장에서의 실언, 어긋난 인간관계, 놓쳐버린 기회. 그래야 했고, 그랬어야 했으며, 그랬으면 좋았을 일들. 그 모든 것에 이 처방을 내린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후회로 인해 생겨나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조금 덜 아프고 잘 아물도록, 너무 큰 흉터가 남아 볼 때마다 속상하지 않도록, 딱히 나쁠 것 없는 이 처방전을 후회와 고군분투하고 있을 분들을 위해 여기에 둔다. 모쪼록 빨리 회복되길. 그리고 꼭 이겨내길. 이제는 제법 편안해진 마음의 여유로 작은 응원도 옆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