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임에서 나보다 대략 20세 위의 어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분들 중 한 분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면서 잘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던 내 또래의 여자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도 열심히 해요."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른 분께서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는 대충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됨과 동시에 내 머릿 속에 떠오른 장면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애니메이션을 꼽으라면 단연 '디지몬어드벤쳐'. 나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 세계로 돌아간 태일이네 동네에서 울리던 클래식 아구몬의 첫 진화, 날아가던 미나의 모자, 모두 다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날 떠올린 이 장면이었다.
"난 왜 진화 못하는 거야."
죽음의 위기에 놓인 파트너 리키를 구해주지 못해 울며 소리치던 파닥몬의 대사였다(이후 엄청난 모습으로 진화해 더욱 기억에 남기도 했다).
디지몬 시리즈는 아직까지도 인기가 많아 최근까지 애니메이션이 나오기도 했고, 관련 굿즈들도 생산되고 있다(그러니, 나처럼 고전문구를 모으는 사람이라면 생산일자를 잘 살펴보고 구매하도록 하자). 그리고 중고사이트에서도 관련 고전문구가 나오면 가장 먼저 판매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나도 디지몬 자체와 디지몬 고전문구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전국의 문구점을 다니며 디지몬 문구들을 찾은 경험도 있다. 많은 디지몬 시리즈들 중 내가 주제로 삼은 것은 그 첫 번째 시리즈인 디지몬 어드벤쳐이다.
지금까지 기사를 읽은 사람들 중 디지몬 어드벤쳐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개인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기사로 쓴 것에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은 모두가 살면서 한 번은 느끼게 될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오늘의 주제로 디지몬어드벤쳐를 선정하였다.
디지몬 어드벤쳐는 디지털 세계에 떨어진 선택받은 아이들이 진화하는 디지털 몬스터, 즉 디지몬들과 함께 모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진화는 자동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원리를 알기 전까지는 노력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화가 안 되는 것, 다시 말해 성장을 못 하는 것은 나에겐 현재진행형이다. 20여 년이 지나고 비로소 파닥몬의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는 시점이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죽어라고 노력해도 이 이상 나아지지가 않고 원하는 것을 도저히 얻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시점. 지금이 내겐 그 순간이다.
사실 기사를 쓰는 현 시점으로부터 약 한 달 가량 후에 내 일에 있어 중요한 시험 결과가 나온다. 지금까지 될 것 같다가도 떨어지기를 수차례, 이번에 안 되면 또 언제까지 미뤄질지 모르는 일이다.
나의 부족함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매번 내가 느낀 것은 '난 왜 안 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나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고, 나만 민폐가 될 것 같은 마음에 초조하다.
그런 내게 다가온 윗 세대의 말씀은 나를, 그리고 우리 세대를 푹 찔러 놓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진짜 잘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나? 내가 노력을 충분히 안 하나? 내가 잘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럴까?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내 마음 속의 파닥몬이 떠오르는 것은 죽을 힘을 다해서 해보고 싶고, 결국에 화려하게 성공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의 모든 20~30대, MZ세대들이라면 모두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노력해도 잘 안 되는 현실에 실망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잘 되고 싶지 않은 척, 열심히 안 하는 척 할 뿐이다.
아직 나 스스로가 해결을 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반드시 드라마틱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사실 그러던 와중에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이 기사를 쓰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기사에서도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니 꼭 꼭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근거를 제시해주지 못해 애석한 마음이다.
다만 우리 세대의 마음을 흔들었던 디지몬의 이미지를 빌어 응원을 건네고 싶다. 파닥몬이 진화를 하여 누가 되는지는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가장 조그맣던 파닥몬이 웅장한 엔젤몬이 된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한 단계 진화할 날을 맞이하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