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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단은 일본 계엄 정부로부터 살인 면허를 받고 조선인 학살을 즐겼다."

1923년에 일본에서 자행된 '간토대학살'은 명백한 국가 범죄였다는 게 민병래 작가의 진단이다. 그는 지난 9월 22일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 코너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간토대학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다.

최근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원더박스)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민 작가는 오마이뉴스에 '민병래의 사수만보'를 연재하는 시민기자이며,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민병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작가)가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 코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병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작가)가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 코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병기

1923년에 발생한 간토 대지진은 진도 7.9로 34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낳은 대참사였다. 이로 인한 사망자만도 10만 명에 달했다. 간토(關東)는 도쿄 도와 사이타마·지바·이바라키·도치기·군마·가나가와 현을 이른다.

이는 자연재해였는데, 또 다른 대참사도 있었다. 일본 계엄 당국에 의해 자행된 간토대학살이다. 학살 피해를 조사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은 6661명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됐고, 간토대학살은 이 유언비어로 흥분한 자경단이 저지른 일이라고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민 작가는 "이는 잘못된 서사이며, 대규모 재난에 체제 위협을 느낀 계엄 정부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제노사이드 학살극을 주도했다"라면서 "특히 자경단은 계엄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민간 경찰이자 준군사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민 작가는 "자경단의 규약에는 경찰서장의 지휘 아래 활동한다고 명시돼 있다"라면서 "당시 자경단의 핵심인 재향군인회의 1세대는 동학농민군 토벌대, 2세대는 의병 전쟁에 투입됐던 군인들, 3세대는 함북 청진 등에서 조선독립군을 때려잡던 자들로 간토 지역에서 징병된 19사단 군 출신들이다, 조선인 학살자들이었다"고 말했다.

민 작가는 "자경단을 실제적으로 움직였던 건 대규모 재난 시기에 체제 위협을 느껴 계엄령을 선포한 일본 정부였고, 계엄령의 명분으로 '조선인 폭동설' '조선인 습격설'을 내걸었다"라면서 "도쿄 일원에 출동한 기병연대 등 군인 7만 5천여 명에게 실탄을 지급해 '조선인을 죽여라' '적은 조선인이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민 작가는 "일본 정부의 국가 범죄와 학살의 주체가 군대였다는 것을 입증할 일본 정부의 기록은 차고 넘친다"라면서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과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구상을 했고, 그 후 일본 사회는 파시즘 체계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원더박스) 책표지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원더박스) 책표지 ⓒ 원더박스

당시 일본 계엄 정부와 자경단이 자행한 대학살의 양상은 끔찍했다.

"조선인의 사지를 결박한 뒤 톱으로 쓸기도 했습니다.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습니다. 여성의 그곳에 죽창을 꽂았습니다. 석탄차로 산 사람을 밀어붙이고, 생선 갈고리로 조선인의 머리를 찍어 끌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게 모두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민 작가는 "당시 조선인에 대한 증오심과 제국주의 의식 등이 잔인한 학살로 이어졌는데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규모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잔혹함의 정도는 더 심했다"라면서 "간토대학살을 2년 동안 조사했던 일본 변호사협회도 학살 범죄가 명확하고 배외주의와 인종주의 때문에 빚어진 일이기에 조선인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일본 사회는 이런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민 작가는 "1990년대에 '새 역사 교과서 모임'이 나타나고 극우 인사들이 간토 대학살을 공격하기 시작한 뒤 일본 교과서에서 이를 축소하거나 왜곡하기 시작했다"라면서 "일본 정부는 지난 100년간 '아직도 조사 중이다' '사실로 받아들일 자료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사과한 적이 없고,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간토대학살을 조명하고 있지만, 한국 작가가 쓴 간토대학살 관련 대중서는 전무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의 번역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민 작가가 이번에 낸 책은 그 의미를 더한다. 민 작가는 이 책에서 간토대학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노력한 9명의 이야기를 엮었다.
 
 관동대지진 후 길가에 널린 시체들.
관동대지진 후 길가에 널린 시체들. ⓒ 연합뉴스
 
민 작가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할 만한 인사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책에 실린 9명은 역사의 한 의제를 자기 삶으로 걸고 살아간 분들이다. 기억 투쟁의 성격도 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민 작가는 "한·미·일 '극우 동맹'을 통해 신냉전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부의 죄과를 물을 수 있을지 기대할 수 없다"라면서도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유족 3세들은 일본 국가를 상대로 간토대학살이 제노사이드 범죄였다는 것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 작가는 <오마이뉴스>에 '민병래의 사수만보'라는 연재 기사를 쓰고 있다.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를 줄인 제목이다. 그는 현재까지 98회에 걸쳐 진행된 이 연재기사를 통해 장돌뱅이, 대장장이, 여자당구 선수 등 소위 "포털에 검색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조명했다. 민 작가는 "모든 삶이 가볍지 않고, 그 안에 우주가 담겨 있다"라면서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민병래 (지은이),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기획), 원더박스(2023)


#간토대학살#관동대학살#관동대지진#제노사이드#이사람10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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