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고전문구에 대해 기사 시리즈 연재하고 있다. 얼마전 친구는 이런 내게 '친환경적'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수집 생활을 이어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라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고전문구 소비는 친환경적인가, 정확히는 '나'의 고전문구 소비는 친환경적인가?
우선 친환경적 소비는 ▲소비 자체가 환경에 도움을 주는 소비 ▲소비로 인해 일어날 환경에의 악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소비 ▲쓸데없고 의미없지 않은 소비로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은 소비 자체가 일으키는 환경 변화 자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내 소비는 친환경적일까? 처음에 내가 내린 가설은 다음과 같았다.
1. 신제품을 계속 사서 새로운 물건의 생산을 독려하지 않고 남아있는 재고를 쓴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일 수 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따라붙었다. 생산을 막는 것이 무조건 친환경적인가? 이전에 나왔던 제품보다 현재 나오는 제품들이 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다면 보통 사람들에게 현재 제품의 소비를 장려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실제로 요즘 나오는 학용품들을 보면 친환경, 무독성 등의 표기가 된경우가 고전문구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이 가설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졌다.
2. 쓰레기로 버려질 수 있는 문방구 재고들을 사서 활용하는 것이 재활용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가설은 스스로 검증하기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영업한지 20년이 넘은 단골 문구점 몇 군데를 선정하여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점포명과 성함을 밝히기를 꺼려하셔서 질문과 답변만을 기술하자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질문 : "문구점에서 오랫동안 팔리지 않는 재고가 생길 때 어떻게 하나.
답변 : "최근 몇 년 들어서는 오래된 물건 찾는 사람들이 와서 가기도 하는데, 이전에는 그냥 창고에 쌓아두거나 팔릴 가방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은 종이 물건이나 인형 위주로 처분한다."
질문 : 처분했다는 것은 쓰레기로 버렸다는 것인가?
답변 : "그렇다. 종이 쓰레기로 그냥 버리기도 하고, 아니면 오래된 문방구 주인들끼리는 서로 아는 경우가 많아 규모가 더 크거나 한 문방구에 재고를 넘기는 일도 있다. 특히 오래된 문방구가 폐업을 하는 경우에는 거기 있는 재고들을 대량 매입해오기도 한다."
질문 : 그렇게 버려지는 재고의 양이 많은 편인가?
답변 : "이건 문구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유행이 조금만 지나도 바로바로 처분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물건이 상해서 처분해야만 할 때까지 계속 두는 경우도 있다. 오래된 문구점이고 오래된 상품일수록 그 양이 많아진다.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경우까지 된 상황에서는 벌레가 꼬일 수도 있어서 다른 새 물건들까지 상할까봐 꼭 처분한다."
질문 : 답변 감사드린다. 그렇다면 고전문구 매입이 쓰레기 줄이기에 도움이 되나?
답변 : "그렇다. 아무래도 재고로 쌓여있는 것들을 문방구 중앙이나 잘 보이는 곳에 놓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석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물건이 더 빨리 상한다. 그게 쓰레기로 처분될 단계까지 가기 전에 찾아서 구매해가면 쓰레기 줄이기에 도움이 된다.
종이로 된 거나 인형 찾는 사람들도 많이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상하거나 고장나도 상관없다며 미니카나 오래된 게임을 사가기도 한다. 수집 목적으로 사가는 거라 상관없다면서 물건이 또 있으면 연락달라고 명함을 주고 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어린 학생들은 아예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 버려질 가능성이 높은 편인데 그런 것들을 사가면 쓰레기로 나가는 것은 많이 줄어든다."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결과 최근 고전문구가 인기를 얻기 전까지는 문방구의 악성 재고로 남아있다가 버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특히 습기와 오염에 취약한 종이류(종이 뻥딱지, 종이 옷입히기 등)는 곰팡이 등의 문제로 여름철이 지나면 일부 처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가설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에는 나의 소비가 친환경적 소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쓰레기를 줄이고 닦아 가치 있게 보관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재활용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구 소비가 '에코프렌들리' 하다는 의견이 조금 찝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하는 소비는 꼭 필요한 소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으로서 누가 이렇게 많은 문구를 필요로 하겠나.
고전문구는 없어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완전한 취미용 물건이다. 실제로 누가 와서 너 이거 갖고 뭐할래? 하고 물으면 할말은 없다. 그저 예쁘게 닦아서 내 추억을 그릴 뿐. 보통 그런 게 전형적인 쓸데없는 소비가 아닌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하면 내겐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미니멀리스트이다. 미니멀리스트란 자신에게 쓸모있는 물건만 사고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반대이다. 나의 경우 그 대상이 고전문구에만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맥시멀리스트(미니멀리스트이 반대, 자신을 위한 물건을 많이 소비하고 이용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의식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차원에서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나에게 양심의 가책을 만든다.
무엇이 정답인지 기사를 쓰는 지금까지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외려 '과연 내가 사지 않으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면 쓰레기가 될 물건을 과소비하는 것은 과연 환경친화적인가, 환경파괴적인가'라는 질문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