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이름하야 '돈부심(돈 안되는 부동산 심화스터디의 준말)'. 부동산, 주거, 도시에 관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이다. 10월 도서는 <반란의 도시, 베를린>이었다.
이 책은 10월에 읽기 딱 좋은 책이다. 10월 17일은 빈곤철폐의 날이고,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주거의 날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주택 사회화' 운동
책 <반란의 도시, 베를린>은 베를린의 주택 사회화 운동을 소개한다. 주택 사회화 운동은 정확한 뜻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택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유화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물론 국내에서 말하는 '몰수' 개념은 아니다.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보상이 이뤄진다.
저자는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계수 교수다. 법을 중심으로 독일 베를린의 주거권 투쟁 운동, 그리고 법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대한민국에서 민간 부동산 회사가 보유한 주택을 사회화하는 국민 투표에 부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유재산을 국가에서 빼앗는 투표라며 비난받을 게 뻔하다. "여기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라고 읊조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언론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는데, 다수 언론은 베를린의 주택 사회화에 관한 국민 투표를 '몰수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주택의 사회화, 독일 국민 투표에선 어떻게 가결됐을까
반면 2021년 베를린에서는 민간 부동산 회사가 보유한 주택을 사회화하는 방안을 국민 투표로 가결시킨 바 있다. 57.6%가 동의했다.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베를린에서는 가결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이유는 이렇다. 첫째, 임차인의 지위가 강화되는 데에는 독일 법이 큰 역할을 했다. 독일에서는 임대인이 주택 임대차 관계에 기간을 정하거나 관계를 해지하는 것을 제한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임차인의 지위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데 긍정적이진 않았다. 진보와 후퇴를 반복했다. 이는 정치적 투쟁을 지속해 왔다는 의미다.
독일은 1차 대전 이후 심각한 주택난에 직면하자 1923년에 임차인 보호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1960년대 '주택 통제 경제의 폐지와 사회적 임차법주택법에 관한 법률(뤼케법)'이 제정되면서 임차인 보호법은 후퇴했다. 결국 1966년에 이르러서 임차인 보호법은 폐지된다.
다행히도 1969년 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임차인 지위가 강화되는 불씨가 지펴진다. 1971년 '제1차 주택 사용 임대차 해지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임차인의 지위를 강화한다. 결국 입법 영역에서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며 오늘날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률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자리 잡은 법은 독일 내 주거 문화를 바꾸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정치적 투쟁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건 임차인의 절대적 숫자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독밥'(독일 취업·스타트업·프리랜서 플랫폼)에 따르면, 2018년 베를린의 자가 주택 보유자 비율은 약 17.4%란다. 임차인 비율이 82.6%다. 임차인들의 전부(82.6%)가 주택 사회화를 찬성(57.6%)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강화된 임차인의 지위가 주택 사회화 방안 투표 가결에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많은 임차인의 수 때문만은 아니다.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베를린 세입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했고, 집마다 직접 방문하면서 힘을 썼다. 즉,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투쟁과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에선 주거권 투쟁이 없었을까
반면 국내는 어떨까. 국내 1가구당 자가점유율은 1995년 53.3%, 2020년 57.3%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베를린만큼은 아니지만 임차 가구 비율이 적진 않다. 약 40%가 넘는 가구가 자가가 아닌 것이다.
임차인 수치만 보면 베를린 사례가 국내 사례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는 베를린처럼 주거권이 안정적인 사회가 되지 못했을까. 국내에선 주거권 투쟁 운동이 없었던 걸까?
1971년의 광주 대단지 투쟁, 1985년 목동, 1986년 상계동, 그리고 1987년을 전후로 사당3동, 오금동, 신당동, 사당2동, 돈암동, 창신3동 등 20여 곳에서 철거 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 그러나 주거권 투쟁은 1987~1992년 시기 결정적으로 변화했다. ... 1차로 운동은 주거권 운동과 소유권 운동으로 갈라섰다. 동시에 1차 분기의 뒤를 이으면서도 그와 나란히 진행된 자가 소유 운동으로의 2차 수렴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주거권 발달을 억제한 데 그치지 않았고,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의 확산을 통해 부정적인 사회 효과를 만들어 냈다. (책 151~152p)
그렇지 않다. 저자는 오히려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서 오랫동안 펼쳐진 주거권 투쟁이 독일의 경우 못지않게 치열하고 처절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주거권 투쟁 운동이 차츰 소유 운동으로 변화하면서, 주거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사회가 불평등하다고는 인지하고 있지만,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해결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연대할 동력을 잃어버린 채 저마다 자가 소유로 눈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소유 가치보다는 사용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국내에서는 주택과 토지에 관한 사용권보다는 소유권을 강하게 인정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택 점거 사례는 아니지만, 국유지 점거에 대한 최근 판례가 이를 말해준다. 바로 '경의선 공유지 운동' 사례다.
쫓겨난 상인과 활동가, 연구자 등은 경의선 철길이 폐선로가 되면서 이중 일부를 무단 점유(squatting)했다. 공유지에서 장사를 하고 축제를 열고 관리 규칙을 만들어 운영했다고 책에는 소개된다. 하지만 그들의 무단 점유는 법상으로는 '불법'이었고, 결국 국가는 그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주인이 방치한 땅을 도시민이 가꾸었지만, 이들은 결국 거기서 쫓겨났다. 이후 철길 부지를 둘러싸고 가설벽이 생겼고 이는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다.
소유보다는 사용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가 효율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주택 점거는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가능하다. 1년 이상 빈집 상태로 두면 합법적 점거가 가능하다. 즉 네덜란드는 주택을 재산 가치보다 집으로서의 기능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1년 이상 주택 건물을 빈집으로 두면 소유자에게 '빈집세'를 부과한다. 빈 상점의 경우에는 2년 이상 방치하면 빈 상점세를 부과한다.
저자는 경의선 공유지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사회에서 국유지는 이미 정치가와 고위 관료들이 사실상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국가 소유의 사유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법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라고 도발적으로 말한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법으로 따져보자면 토지를 방치한 국가에 책임이 있다. 오히려 경의선 공유지를 활용하고 관리해 온 이들에게 박수쳐야 할 일 아닌가.
'불법이냐 합법' 논리 말고, 도시에 대한 권리
합법이라고 해서 꼭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합법 혹은 불법'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서 정작 옳은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진 않은지.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는 1960년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도시에 대한 권리의 핵심은 권리를 지닌 사람이다. 르페브르는 '도시 거주자(citadin)'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세금 내는 사람만이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거주자에게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성별, 나이, 건강 상태, 소득, 국적, 인종, 이주자 상태, 그리고 정치적 종교적, 성적 취향 때문에 차별받지 않으며, 이 현장에서 규정되니 원칙과 규범에 따라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을 보전할 수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강현수 역) 중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도시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다. 이는 앞서 독일의 법에서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 그리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소유 가치보다는 사용 가치를 중시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책을 편집한 김혜림 에디터는 "법을 만드는 것, 법을 지키는 것, 법을 기록하는 일은 법을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다. ...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는 도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법과 도시는 도구일 뿐, 결국은 이들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책 <반란의 도시, 베를린>의 법, 사회와 문화를 살펴보며 도시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금 사유해 보게 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 이론은 단순히 철학가의 이론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향했다. 활동가를 비롯한 도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도시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