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전쟁 소식이다. 기다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소식은 들리지 않고 또다시 전쟁이라니. 깊은 한숨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시작된 이번 전쟁은 10월 초에 이미 양측 도합 500명 이상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25일 기준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 5800여 명 중 아동이 2360명이라고 한다(가자지구 보건부 발). 또 다른 무장 이슬람 단체인 헤즈볼라까지 전쟁에 참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보통은 전쟁을 시작한 쪽이 비난받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렇지만은 않다. 러-우 전쟁 때와는 달리 세계는 쪼개졌다. 한쪽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다른 쪽에서의 팔레스타인 해방을 응원한다. 미국처럼 여러 종교, 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에서는 같은 동네, 같은 학교에서도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늘의 사진과 닮은 그림책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미국의 한 대학가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쪽에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학생이, 다른 쪽에는 이스라엘 국기를 든 학생이 서 있다. 팔레스타인 학생은 폭격으로 가자지구에 사는 가족 모두를 잃었다고 했다. 유대인 학생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어머니가 죽었다. 두 학생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그림책 한 권이 떠올랐다. 바로 1980년대에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 <잘했어, 꼬마 대장!>이다.
한 아이가 총을 든 채 상상 속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는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방 한편에 엄마가 웃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엄마, 꼭 복수할게요!" 나는 소리쳤다.
사진 속 엄마가 대답했다. "얘야, 조심해라."
아이는 반대편에 있는 적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다. 그때 아빠가 저녁을 먹으라며 아이를 부른다. 고모와 삼촌, 할머니도 오셨다면서. 저녁을 먹고 나면 새엄마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는 어른들이 다 먹을 동안 자기 방으로 가서 다시 혼자 전쟁 놀이에 몰입한다. 그러다 마침내 적군 대장을 붙잡았다.
"말해 봐라, 어서! 왜 우리 엄마를 죽였나?"
나는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난 네 엄마를 죽이지 않았어. 나는 그냥 군대에 들어왔을 뿐이야."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적군 대장은 키가 작고 나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어쩌면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움츠러들어 작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적군 대장은 한쪽 팔로 목발을 짚고 있었다.
"이봐, 나는 엄마의 복수를 하려고 왔다." 내가 말했다.
그는 목발을 내리면서 총을 집어 들고 대답했다. "나도 그렇다."
복수를 하려던 아이는 적군 대장도 자기처럼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비슷하게 엄마가 없다는 것도.
그런데 한쪽 다리가 없는 적군 대장은 목발만을 의지해 걷고 있었다. 아이가 의족을 벗자, 적군 대장은 그게 의족이라는 걸 깨닫고 의족을 끼고 걸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한다. 적군 대장이 묻는다.
"이것 좀 빌려 줄래? 오늘 하룻밤만. 우리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어."
"엄마는 돌아가셨다며?"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엄마는 날 볼 수 있어."
"좋아, 오늘 밤만이야." 나는 말했다.
아이는 그런 적군 대장에게 자신의 의족을 끼워준다. 적군 대장이 사라지고 난 뒤, 아이는 전투 중인 병사들에게 '사격 중지'를 외친다.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복수는커녕 적군 대장에게 자신의 의족까지 빌려주다니. 아이는 엄마를 쳐다볼 면목이 없다. 그런데 그때 사진 속 엄마가 말한다.
"잘했어요, 대장.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전쟁 놀이를 끝낸 아이는 새엄마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눕는다. 그때 사진 속 엄마가 말한다.
"잘 자요, 대장. 푹 자렴."
상상 속에서 엄마의 다정한 인사를 들으며 아이는 잠자리에 든다. 아이가 상상으로 전쟁 놀이를 하는 내용을 담은 이 그림책은, 어린 아이가 겪은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
이 책은 이란 작가들이 쓰고 그린 그림책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벌어진 민간인 피해 사례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이란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이란 편에만 서지는 않고, '모든 아이들이 피해자'임을 상기시킨다.
전쟁으로 인해 한쪽 발을 잃은 아이.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놀이는 한정적일 것이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축구를 할 수도, 달리기를 하며 뛰어놀 수도 없다. 그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전쟁놀이에 몰입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에게 발을 잃은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아이는 대장이다. 의족을 한 상태지만 항상 앞장서서 싸우며, 총에 맞은 병사들을 용감하게 구해낸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아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하실에 숨어 엄마 옆에서 귀를 막고 폭탄 터지는 소리를 듣는 일 말고는. 어쩌면 엄마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래서 상상 속 전투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건 아닐까, 엄마를 구하고 싶어서.
아이들의 상상 놀이를 주제로 한 그림책에서 주인공은 보통 상상 속 캐릭터와 함께 신나게 논다. 하지만 <잘했어, 꼬마 대장>에서 아이는 적군 대장과 참혹한 전쟁을 벌인다. 실제 전쟁은 끝났지만 아이의 마음속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보다 슬픈 상상 놀이를 다룬 그림책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서 나는 희망을 엿본다. 어른들이 망가뜨린 일상을 사는 아이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적군 대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엄마가 남긴 사랑으로 아이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해 간다.
상상 속 놀이이기에 적군 대장도 엄마도 결국 아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움직인다는 것에서, 이 모든 것이 아이 내면의 상처를 회복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공감의 상상력
현대의 많은 그림책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전쟁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무엇보다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가족이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몫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그들에게 화해와 용서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잘했어, 꼬마 대장!>에의 아이와 적군 대장처럼, 서로 이야기를 듣고 들려줄 수는 있지 않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의 고통을 알게 돼 더는 미워하지 않도록, 전쟁을 끝내도록 말이다.
편 가르기 좋아하는 세상은 여전히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를 따지며 묻지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보다 많은 아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평화로이 잠들기를 바라는 편에 서야 한다.
보통 그림책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처음 읽을 때의 감동이나 떨림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림책을 분석하면서 읽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매번 읽을 때마다,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번에 읽을 땐 몇 번이나 자꾸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저 아이가 나의 아이라면, 내가 저 아이의 엄마라면 어떨까' 싶어 자꾸 상상하게 돼서다.
신이 인간에게 준 상상력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데 쓰인다. 여전히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신은 분명, 당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 능력이 보다 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쪽으로 사용되길 원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 평화가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