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동요 중에 비둘기를 의인화한 노래가 있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주인물 수비둘기를 그린 내용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이 산에서 멧비둘기를 보거나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될 때 부른다. 그러기에 '꾸욱 꾸욱 꾹꾹'하는 비둘기 울음을 슬픔의 소리로 인식한 측면이 있다. 학명으로 '계집죽고 자식죽고'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가사를 적어본다.
자식죽고 꾹꾹
계집죽고 꾹꾹
헌누더기 불싸놓고
망건팔아 영장하자
꾹꾹 꾹꾹
-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서울 연지동.
수비둘기가 아내와 자식을 잃고 꾹꾹거리며 운다. 가난으로 누더기를 걸치며 힘들게 살아왔기에 그 슬픔이 더 크다. 그러나 슬프더라도 벌어진 일은 수습해야 한다. 수비둘기는 우선 고인들의 옷을 태우고, 망건을 팔아 영장하겠다고 했다. 영장(永葬)은 죽은 사람을 편하게 장사지낸다는 뜻이다.
수비둘기는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 다시 꾹꾹거리며 운다. 살아서 고생시키고, 죽어서 장례도 변변히 치러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다시 터진 것이다. 비록 상황은 그렇지만, 그래도 수비둘기의 마음은 진정성이 있다. 쓰던 망건이 얼마나 값이 있을까마는 그것을 팔아서라도 나름 장사를 제대로 치르고 싶은 것이다.
'계집죽고 자식죽고'는 위와 국면이 다른 각편(결과물)도 있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난 뒤 실의에 빠진 수비둘기의 신세를 그린 내용이다.
계집죽고 자식죽고
길가전지 수패하고
빈바가지 손에들고
비름박지 어찌할꼬
-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경북 안동.
아내와 자식이 죽고난 후 수비둘기의 처지가 크게 달라졌다. 길가에 있어 농사짓기 편리한 논밭, 곧 전지(田地)가 수패(水敗)를 입었다. 물난리로 농사를 망친 것이다. 이제 먹을 양식도 없어 바가지 들고 동냥을 나서야 할 판이다. 하여 수비둘기는 비름박지(비렁뱅이) 노릇을 '어찌할꼬'하며 신세를 탄식하고 있다.
위의 두 노래는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다. 각각 독립된 작품이다. 그러기에 내용도 독자적이다. 하나는 누더기를 걸치고 살 정도로 어려운 형편임에도 망건이라도 팔아서 장례를 치르려 하고, 다른 하나는 좋은 논밭이 있어 형편이 살 만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비렁뱅이가 되었다. 극복과 좌절의 상반된 양상이다. 실제 인간사가 그럴 수 있으므로 수비둘기의 서로 다른 캐릭터는 가능한 설정이다.
수비둘기와 가족 상실 이야기
그런데 극복이든 좌절이든 캐릭터는 달라도, '계집죽고 자식죽고'는 기본적으로 아내와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긴 수비둘기 노래이다. 옛날에는 비둘기가 야생종만 있었으므로 이 노래의 수비둘기도 멧비둘기의 수컷이다. 그러면 수비둘기와 가족 상실, 특히 상처 모티프는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그것은 비둘기의 실제 생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둘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다시 바꾸지 않는다. 특히 멧비둘기는 무리로 움직이는 일이 드물어 암수가 짝으로 지내는 일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 선조들은 원앙뿐만 아니라 비둘기를 부부 금슬이 좋은 새로 여겼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가 죽게 되면 그 상실감이 상당할 것이다. 구전동요의 수비둘기 슬픔이 그렇게 형상되어 있다.
한편, 상처한 수비둘기의 슬픔 형상에는 그 울음소리도 연계되어 있다. 멧비둘기의 울음소리는 여느 비둘기와 달리 저음으로서 울림이 깊다. 그래서 '꾸욱 꾸욱 꾹꾹'하는 멧비둘기 울음의 음색은 슬픔을 연상하게 한다. 마치 무슨 사연이라도 있어 울고 있는 처량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수비둘기의 가족상실 모티프는 그 생태와 울음소리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하겠다. 수비둘기의 울음으로부터 슬픔을 연상하고, 암수 한 쌍이 부부의 인연으로 살아가는 생태로부터 그 슬픔의 배경을 아내의 죽음으로 해석한 것이다. 수비둘기의 울음이 사실은 암비둘기를 유혹하기 위한 경우가 많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인간은 그리 인식한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연상하든 비둘기는 실제로 짝을 이뤄 알콩달콩 지낸다. 멧비둘기는 물론 도심의 여느 비둘기들도 그렇다. 인터넷에서 비둘기 관련어를 검색하면 암수 비둘기의 입맞춤 사진을 흔하게 볼 수 있고, "뽀뽀하는 비둘기 부부", "썸타는 비둘기" 등 관련 글 또한 귀하지 않게 도출된다. 비둘기가 사랑꾼으로 조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둘기 부부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그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대조적이다. 과거에는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상처의 슬픔으로 사랑의 깊이를 그려냈다면, 지금은 남녀 상호적 시각에서 다정한 모습을 드러내 알콩달콩 예쁜 사랑을 바라보려 한다. 시대적 흐름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