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이야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받아들여지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는 그 세계관을 숙지하지 않으면 혼란스럽다.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대부분의 장르가 그렇다. 장기와 바둑을 즐겁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규칙과 세계관을 숙지해야 하는 것처럼 동시대에 출현하는 독특한 일부의 이야기는 진입하기 전에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있다.
오늘 소개할 만화가 산호의 장편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아래 그마숲)도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마녀'가 등장한다. 작가는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위기를 맞은 마녀들이 세상을 견디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녀'를 사용하지 않지만,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주문과 마술을 쓰는 존재를 지칭할 때 지극히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만화가 산호는 이런 의미를 <그마숲>에서 재해석했다. 마녀는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숲을 지키고 보호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이지만, 사람들은 마녀들이 지닌 능력을 부정적인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는 동시대에 그 누구도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아담 맥케이의 2021년 코미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처럼 작금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안일하게 대처하는 동시대의 분위기를 비판한 것과 닮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 작품을 통과한다.
<그마숲> 1권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여섯명으로 산, 초원, 너울, 서리, 나송주 기자, 장범선 소장이다. 여섯 인물의 공통점은 월정산 근처에서 일어난 산불 피해자다. 이들은 모두 외적이든 내적이든 산불로 인해 화상을 입었고 오랜 시간 그날을 잊지 못해 힘들어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 탓이었는지, 두 번 다시는 산불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월정산' 주변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들이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다르지만, 치명적인 산불 경험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주인공들은 서로 힘을 합해 '월정산'을 지킨다. 이들의 이런 경험은 동시대에 일어나는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의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세상에는 산 것보다 살아남은 것이 더 많으니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초원의 목소리를 내세우면서. 만화가 산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성껏 그림과 말풍선을 만들고 지운다.
<그마숲>의 세계관과 관련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다른 하나는 마녀로 보여지는 '여성'이다. 만화가 산호는 이미 전작 <비와 유영>(2021),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2022)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꾸준히 문제 제기해왔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초원'을 지키기 위해 의사가 된 '산'이 신뢰하고 있는 교수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은 난치병 치료를 위해 연구 예산 확보 방법에 관해 물어보지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예요. 전 세계 인구를 놓고 봐도 잠재적 환자군이 극소수인 난치병이라면, 연구 예산을 확보하기 이전에 연구를 전제하고 효용성을 납득시키는 것부터 난관이겠죠. 그리고, 모든 마녀는 여자니까. 필드에서 배제되는 집단에서도 더 축소되는 소수인 거야. 꽤 오랫동안 제약회사의 자문 격으로 있었어요. 매해 새로운 유행성 바이러스가 나타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잖아요? 그때마다 백신도 쏟아져 나오죠. 그러면 다들 그걸 맞으러 달려가. 그런데 매번 부작용자 통계를 내보면 70퍼센트가 여자야. 아나필락시스를 겪는 사람도 열에 아홉이 여자고. 항체 반응 매커니즘 자체가 달라서 그런 건데, 많이들 모르더라구. 하지만 알다시피 어느 제약회사도 여성용 백신을 따로 만들지 않아요. 심지어 여성 질환 신약 실험을 할 때조차 수컷 동물 써. 인류의 절반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이 굴레가 끊기지 않는 것은 왜일까? 기준으로 삼는 '인간'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그러니 우리는 한 번도 이 행성에서 표준이었던 적이 없는 거예요.(239쪽)
이런 교수의 발언에 산은 "존경하는 교수님의 말씀은 다정했지만 나는 그래서 갑자기 아주 외로워졌다. 아무도 멸종해가는 종(마녀)의 병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243쪽)고 고백한다. 어느 제약회사도 여성용 백신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마녀가 이 행성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이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를 암시해 준다. 그 누구도 마녀를 위해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숲과 나무를 지키는 마녀들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그마숲>의 세계관과 관련해 숙지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이 텍스트에서 화상을 입은 존재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여성이 전사로서 부조리한 이 세계관을 돌파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겠다.
실제로도 이 작품에서 화상으로 인한 흉터는 외면해야 할 것이 아니다. 흉터가 무슨 근거로 투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산'은 "몸이 상처를 복구하려고 세포를 과도하게 만들면 그게 흉터로 남는"(166쪽) 거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치열하게 애쓴 흔적"(166쪽)이니 '투사(鬪士)라는 입장을 밝힌다.
따라서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산호의 <그마숲> 2권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숲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투사로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그것이다. 이런 치열하고 의도적인 세계관을 지닌 만화는 오랜만이다. 독자들에게 만화가 산호의 애정 있는 동시대의 호흡법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