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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중 아이들이 팔현습지를 찾아 필자로부터 팔현습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황금중 아이들이 팔현습지를 찾아 필자로부터 팔현습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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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구 황금중 1학년 학생들이 금호강 팔현습지를 찾았다. 자연탐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였다. 환경과생명을지키는 대구교사모임(대구환생교) 교사들도 함께했다. 학생들은 오전 9시 학교에 모여 버스를 타고 대구 동구 방촌동을 통해 팔현습지로 들어섰다.

팔현습지는 엄밀히 말해서 대구 수성구에 면해 있다. 동구 방촌동에서 금호강을 들어서 '강촌햇살교'란 잠수교 교량을 건너면 수성구로 그 일대 금호강 모두가 팔현습지의 영역이다. 강촌햇살교에서 바라보는 금호강은 아기자기했다.

팔현습지의 아기자한 아름다움
 
벌써 겨울철새들이 찾아왔다. 팔현습지에.
 벌써 겨울철새들이 찾아왔다. 팔현습지에.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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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상하류로는 다가올 겨울을 맞아 미리 찾아온 철새들이 벌써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주로 오리류들이다. 미국쇠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의 오리가 벌써 기백은 넘어 보인다.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이 일대는 철새들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곳은 겨울철새 도래지로 명성이 드높다.

이들을 관찰하고자 학교에서 망원경도 챙겨왔다. 여섯 대의 망원경을 펼쳐놓고 특명이 떨어졌다. "얼굴에 태극 무늬를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라, 찾으면 선물을 준다!" 한 선생님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뭔가 특별한 종이 숨어있는 듯했으나 얼굴에 가로 무늬를 하고 있는 미국쇠오리를 가창오리로 오인한 데서 벌어진 가벼운 해프닝이었다. 그래도 가로 무늬를 하고 있는 미국쇠오리들도 가창오리 못지 않게 아름다워 보인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망원경으로 가창오리를 찾아라! 특명을 받고 철새들을 관찰하는 황금중 아이들
 망원경으로 가창오리를 찾아라! 특명을 받고 철새들을 관찰하는 황금중 아이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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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쇠오리들이 바윗돌에 앉아 쉬고 있다. 얼굴에 가로 줄무늬를 하고 있는 녀석이 미국쇠오리
 미국쇠오리들이 바윗돌에 앉아 쉬고 있다. 얼굴에 가로 줄무늬를 하고 있는 녀석이 미국쇠오리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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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햇살교에 서면 또 특별한 재미가 있다. 다리가 높질 않아서 강바닥이 훤히 내려보인다는 것. 물길도 깊지 않아서 물속에 사는 생명들이 그대로 다 드러난다. 특히 많은 물고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로 잉어들과 누치 그리고 강준치가 떼로 몰려다니고 간간이 붕어들도 보이고, 배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종도 보인다. 그밖에 피라미들도 떼로 몰려다는 것들도 만날 수 있다. 운 좋은 날은 자라도 만날 수 있다. 이날 운이 좋았다. 바로 자라와 모래무지를 만날 수 있었으니.

큰 자라가 머리를 길게 쭉 뻗어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 강촌햇살교에서 바라봤다. 저 거북 같은 생명이 강에도 산다는 건 경이로운 장면이다. 이곳에는 더 귀한 녀석인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남생이도 산다. 더 운이 좋으면 남생이까지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팔현습지인 것이다.
 
잉어와 배스. 저렇게 큰 녀석들이 유영하는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잉어와 배스. 저렇게 큰 녀석들이 유영하는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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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현습지의 자라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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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밀리 하늘 위로 큰고니 한 마리가 특유의 울음을 울고 날아간다.
 저 밀리 하늘 위로 큰고니 한 마리가 특유의 울음을 울고 날아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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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의 유영을 한참 보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들으니 그것은 고니의 노랫소리였다. 소리 나는 곳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니 큰고니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날아오고 있다. 고니 특유의 큰 소리를 내지르며 순백의 우아한 날개짓을 보여주는 장엄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시나브로 큰고니들이 찾아올 계절인 것이다. 아마도 선발대인 것 같다. 바로 위 안심습지로 가기 위해서 팔현습지를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곧 겨울이 오면 큰고니 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금호강을 만날 수 있다. 이곳 팔현습지에도 물론이다.

팔현습지를 탐사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팔현습지를 탐사할 시간. 강촌햇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틀면 이곳이 팔현습지임을 알려주는 입간판을 만나고, 그 아래로 두 개의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은 잘 조성된 공원이고 오른쪽은 버드나무류들이 자연스레 자란 하천숲이다. 인공과 자연이 흙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우리는 인공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든다. 흙길마저 버리고 오른쪽 하천숲 안으로 든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강가로 접어든다. 이곳 강가에 서면 전형적인 금호강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물길과 자갈밭 그리고 하천숲이 이어진 금호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일대가 전부 이런 모습을 보였으나 수성구청이 일정 부분 숲을 밀어버리고 공원을 조성해둔 것이다.

저 공원이 없었다면 더 많은 자연스러운 금호강을 만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하천숲에서라도 금호강을 오롯이 느껴본다. 물가로 장화를 신고 직접 들어가 본다. 강에는 물고기도 있지만 또 다른 생명이 산다. 바로 조개와 다슬기 같은 이른바 저서생물들이다.
 
금호강 조개를 찾아라! 맨손으로 조개를 찾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집게를 들고 조개를 잡겠다고 나선다.
 금호강 조개를 찾아라! 맨손으로 조개를 찾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집게를 들고 조개를 잡겠다고 나선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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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에 살고 있는 조개들. 아아들이 들고 사진으로 남겼다.
 금호강에 살고 있는 조개들. 아아들이 들고 사진으로 남겼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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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손바닥만한 조개서부터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조개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다슬기들이 금호강 곳곳에서 살아간다. 아이들은 강에 조개가 산다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란다. 그것은 어른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그만큼 우리가 강과 유리된 삶을 살았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강의 오염에 따른 부작용일 터이다. 1970년 초반생인 필자가 유년 시절 본 금호강의 모습은 정말 깨끗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그런 강이 산업화와 함께 시궁창으로 전락한 것이 지난 30년간의 역사다. 그러나 그런 금호강이 섬유산업의 쇠락과 대구시의 노력과 함께 서서히 되살아나 지금은 필가가 유년시절에 만난 그 금호강을 지금 다시 만난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금호강이 되살아났다.

그 증거들이 이 '대칭이'같은 조개들이다. 저서생물들의 귀환 즉 강바닥 생태계가 돌아왔다는 것은 강의 수질이 획기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곳에 멸종위기 1급 물고기인 얼룩새코미꾸리까지 금호강 대구구간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팔현습지를 찾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조개의 존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아이들은 잡은 조개들을 하나씩 손에 들고서 특별한 기념사진을 남겼다.

조개를 다시 있던 자리에 놓아주고 하천숲을 따라 더 하류로 내려간다. 하천숲이 끝나는 곳에는 절벽이 나타난다. 하식애(河蝕崖)라 불리는 절벽이다. 즉 물이 침식시킨 벼랑이란 뜻이다. 저 하식애 벼랑에 특별한 존재가 산다. 바로 팔현습지의 터줏대감이자 깃대종인 수리부엉이다. 수리부엉이 부부가 이곳 하식애를 자신들의 집삼아 살고 있다.

오전 시간이라 아직 둥지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벼랑에 보이지 않는다. 오후 늦은 시간에 벼랑을 살 살펴보면 수리부엉이가 졸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혹은 눈을 부릅뜬 채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백수의 제왕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다.

하식애를 따라 펼쳐진 초지를 따라 더 하류로 내려간다. 수백 미터를 내려가면 팔현습지에서 가장 경이로운 생태계를 만나게 된다. 원시 자연숲을 자랑하는 왕버들숲이다. 수령이 최고 393년이 된 왕버들이 군락을 이룬 경이로운 곳이다. 즉 약 400년의 원시 자연숲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400년 된 원시자연숲 왕버들군락의 아름다움
 400년 된 원시자연숲 왕버들군락의 아름다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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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상징과도 같은 수리부엉이
 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상징과도 같은 수리부엉이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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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별한 숲에 한번씩 수리부엉이가 쉬러 오고, 담비가 얼굴을 불쑥 내밀고 족제비가 날렵한 걸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같은 왕버들숲은 생태학적 용어로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라고 불린다.

멸종위기종 같은 야생동물들이 인간 개발이나 간섭 등을 피해 마지막으로 숨어들 수 있는 곳이란 것이다. 이런 숨은서식처들이 사라지면 멸종위기종들도 사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공간이 이 왕버들숲인 것이다.

"정말 환경부 맞아요?"

그런데 이 왕버들숲을 밀고 이곳에 다릿발을 세워 산책로를 만든다는 것이 환경부의 계획이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주민들의 요구라면서 이 무리한 사업을, 역시 이 일대 진짜 주민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함에도 밀어붙이고 있다.

필자의 설명에 "환경부가 왜요?" "이 아름다운 팔현습지 파괴하는 게 정말 환경부가 맞아요?" 하는 울분과 탄식이 아이들 입을 통해서도 흘러나온다. 아이들의 눈으로 봐도 환경부발 '삽질'은 이해 못할 일인 듯하다. 이곳에 와보지도 않은 대도시의 주민들의 요구를 민원이라고 멸종위기종들의 숨은서식처마저 밀어버리고 짓는 탐방로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팔현 반상회 연극대본집을 함께 읽고 있다. 팔현의 식구가 되어서.
 아이들이 팔현 반상회 연극대본집을 함께 읽고 있다. 팔현의 식구가 되어서.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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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환경부가 스스로 삽질을 철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연극 대본인 '팔현 반상회' 요약집을 함께 낭독하는 것을 끝으로 팔현습지 탐방을 마쳤다.

팔현 반상회는 이 팔현습지를 살아가는 이곳의 무수한 생명들이 모두 등장해 자기들끼리 반상회를 열어 인간의 이 탐욕적인 '삽질'을 어떻게 막아낼지를 궁리하는 장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각자 이들의 심정이 돼 그들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이날의 탐방은 팔현의 식구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간.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금호강은 야생동물의 집이다. 금호강 삽질을 멈춰라!"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금호강 르네상스와 무모한 하천정비사업에 맞서 금호강을 지키기 위해 주력해오고 있다.


태그:#금호강, #팔현습지, #황금중학교, #수리부엉이, #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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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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