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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우라 후미코, <누구도 빼앗지 마라>, 전은옥 옮김, 책숲, 2023.
오우라 후미코, <누구도 빼앗지 마라>, 전은옥 옮김, 책숲, 2023. ⓒ 책숲

일본 나가사키현을 배경으로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 두 편의 사회 소설을 엮은 소설집 <누구도 빼앗지 마라>(오우라 후미코 지음, 전은옥 옮김, 책숲, 2023)가 출간되었다(나는 여기 번역으로 참여했다).

첫번째 소설 '증언자'는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아 살아야 했던 자이니치(在日, 재일동포)의 아픔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나가사키시의 어느 고등학교에 비정규직 영어 교사로 부임한 마쓰야마 에이지가 재일한국인 원폭피해자 유영수를 만나면서 듣게 된 충격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유영수는 자신을 초청한 고등학교 연극부의 학습회에서 강제동원과 원폭 피해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증언하며,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도 원자폭탄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런데 생생한 증언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느닷없이 '원폭이 떨어져서 다행'이라는 발언을 한다. 모두가 충격을 받아 분위기가 얼어 붙는다. 곧 이어 유영수는 설명을 덧붙인다.

"원폭보다 차별이 더 무서웠습니다" 

"원폭은 무서워요. 두 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일본은 전쟁을 계속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조선의 해방은 더 늦어지고, 더 많은 동료들이 강제노동이나 징병으로 죽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원폭이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증언자' 17쪽, <누구도 빼앗지 마라>)


그는 덧붙인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일본에 살면서 원폭보다 민족 차별이 더 무서웠습니다. 여기 계신 학생 여러분도 왜 이렇게 많은 조선인이 일본에 살고 있고, 나가사키에서 왜 이 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이 원폭 피해를 입었는지 모를 수도 있겠네요."
 ('증언자' 18쪽, <누구도 빼앗지 마라>)


작품 속에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실상을 처음 알고 충격과 부끄러움, 죄책감을 느끼는 젊은 일본인 교사,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널리 알리고자 분투하는 연극부원 학생, 조선인은 거짓말쟁이라거나 재일 외국인이 일본의 원폭 피해자 지원법에 기반한 원조를 받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인물, 하시마에는 일본인 노동자도 많이 살았고 좋은 일도 많았는데 왜 하필 조선인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느냐며 그런 공연은 아무도 보러 가지 않을 거라고 압력을 가하는 학부모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원폭보다 민족 차별이 더 무서웠다"는 작품 속 인물 유영수의 절규는 일제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에도, 조국의 분단과 전쟁으로 일본 사회에 남아 살 수밖에 없었던 자이니치가 겪은 차별과 배제, 고난에 가득 찬 삶을 상징하는 대사라 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유영수는 실제로 14세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일본 나가사키의 탄광섬 하시마(군함도)로 강제 동원된 고 서정우 씨를 모델로 한 것이다. 서정우 씨는 하시마에서 가혹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미쓰비시 조선소로 전환 배치되어 그곳에서 원폭에 피폭되었다. 그는 전쟁과 핵무기의 잔혹함뿐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강제 동원에서 기인한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역사 및 이후의 자이니치 차별 문제를 절절하게 고발한 시대의 증언자였다.

같은 책 두 번째 작품 '이시키 강변'은 산 좋고 물 맑고, 초여름에는 반딧불이 수천 마리가 춤추며 날아다니는 옛 산간 농촌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유리야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다. 대대로 그곳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고 댐 건설을 강행하려는 정부 권력에 맞서 고향을 지키겠다고 반세기 동안 싸워 온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매우 서정적으로 펼쳐낸 소설이다. 소설 속 풍경과 주민들의 모습이 결코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남의 일 같이 낯설지 않고, 이 땅 전역에서 벌어지는 풍경과도 닮아 빨려 들어가듯 단숨에 읽게 된다.

작가 오우라 후미코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소설가로서, 나가사키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작품 속에 생생하게 묘사하며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소설은 실제 있었던 일을 토대로 했으며, '이시키강 강변'의 이시키강도 일본 나가사키현에 실재하는 강이다. 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 위기에 처한 주민들의 고향과 삶을 지키려는 싸움도 지금 그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입니다. 더 많은 독자가 이 책을 만나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직접 책 소개 글을 썼습니다.


누구도 빼앗지 마라

오우라 후미코 (지은이), 전은옥 (옮긴이), 책숲(2023)


#누구도빼앗지마라#오우라후미코#신간소설#일본문학#자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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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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