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편집자말] |
- 이전 기사 '
요시다 선생 정원 디자인 강의 ① 리허설이에요, 현장이 본방이죠' https://omn.kr/26ayt에서 이어집니다.
좋은 정원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하는 다섯 가지가 있어요. 펼치고, 구획하고, 가리고, 잇고, 감추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거의 모든 일본 정원이 이 다섯 가지 기법을 엮어서 쓰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죠.
먼저 펼침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가깝죠. 누구나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집을 자연속에 펼치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공간이 테라스죠. 테라스는 정원을 집안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통해 집을 자연속에 펼치는 역할을 합니다. 건물의 일부이면서 정원의 일부죠. 테라스는 건물과 정원을 이어주는 공간입니다.
공간과 공간을 구획하는 것도 좋은 정원을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기법입니다. 구획은 벽이나 울타리로 다른 공간으로 부터 구별짓는 거죠. 구획된 공간이 어떻게 꾸며지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서양 정원이며 자연적인 풍경으로 꾸며진 곳이 일본 정원입니다.
정원 소재로서 식물에는 서양식·일본식의 구별이 없죠. 정원의 디자인이나 수목의 배치 방법, 돌의 편성에 따라 일본과 서양의 이미지가 태어나는 거죠. 잡목 등 자연형의 나무를 심은 정원에서는 풀꽃을 함께 심어도 위화감이 없습니다. 돌의 배치나 리듬에 맞추어 작은 초화류를 곁들이면 돌들이 풍경과 부드럽게 어울리죠.
가림은 한가지 패턴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걸 말합니다. 문이나 벽, 생 울타리, 일본의 전통적인 대나무 울타리 등이 좋은 예입니다. 외부로부터 시선을 차단해 공간을 안락하게 꾸며 줍니다. 가림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정원의 배경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죠. 배경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정원이 확 달라진 경험이 많습니다.
대개의 정원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죠. 베란다에도 반드시 벽이나 울타리가 있어 정원에서 바깥쪽을 보면 직선적인 수평 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부지의 밖과 안이 이 라인으로 분단되어 정원의 공간으로서 느껴지는 것은 라인의 안쪽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끊으면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울타리보다 높은 나무를 배치해 라인을 끊으면, 외부의 풍경과 안쪽의 경치가 연결되어 공간이 넓게 느껴지죠. 일본정원의 전통기법인 차경입니다. 도로 쪽에서 집을 볼 때 처마의 라인을 자르는 높이의 나무가 있으면 정원과 집이 일체가 되죠. 끊으면 연결되는 효과 때문입니다.
좋은 정원을 만들려면 이어짐을 연구해야 합니다. 연결은 대개 선적인 요소를 포함하죠. 정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어프로치나 원로들이 좋은 예가 됩니다. 어프로치는 실용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자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죠. 또한 연결은 각 부분을 잘 조화시키며 전체적인 아름다움도 표현합니다. 좋은 정원을 만드는데 빼놓을수 없는 요소죠.
정원을 잇는 외부선은 모서리가 많을수록 짧아 보입니다. 라인을 곡선으로 만들면 연속되어 길이가 확보되죠. 정원의 내부도 마찬가지죠. 부지의 형상대로 원로나 식재 라인을 만들면 모퉁이마다 분단된 라인이 되어 정원이 넓게 보이지 않습니다.
정원의 레이아웃을 생각하며 동선을 잘 연결해야 합니다. 특히 원로의 흐름이 중요하죠. 심는 공간에 강약의 변화가 없으면 단조로운 모양이 되죠. 모서리를 많이 누그러트려 디자인성을 갖게 하는 것이 좋은 이음 방법입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자투리 땅은 바깥쪽으로도 조형성을 갖는 귀중한 재배 공간이 됩니다.
선이 정원의 중앙을 횡단하면 정원은 2개로 분리되죠. 분리되면 아무리 넓은 정원도 좁게 느껴집니다. 경계를 따라 심는 분명한 역할의 열식을 제외하고 어떤 방향에서 봐도 3주 이상의 나무가 직선에 놓이지 않도록 잘 배치해야 합니다.
일본정원에서 3주 이상의 나무를 일직선으로 늘어놓는 것은 금기예요. 3주의 나무를 직선상에 나란히 심으면 선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면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3주의 수목으로 삼각형을 구성하면 면이 생겨 나무의 높이의 입체 공간이 태어납니다.
편안해 보이는 자연배치는 대개 부등변 삼각형에 의해 만들어지죠. 부등변 삼각형에 접근할수록 안정된 공간이 됩니다. 힘의 균형이 붕괴되어 동적인 공간이 되는거죠. 나무 높이도 상·중·하의 부등변 삼각형으로 하면 자연스러운 리듬이 태어납니다. 이것은 수목뿐만 아니라 정원석 등 무게감있는 요소 모두에 공통입니다.
좋은 정원을 만드는데는 덮는 일도 중요합니다. 흙을 모래나 자갈을 덮어 장식하고 잔디라든가 이끼를 펴 놓는 일은 정원 만들기의 시작입니다. 돌, 타일, 벽돌의 종류와 자갈, 잔디, 데크에서 밟는 느낌들이 다르죠.
주택에서 마루, 카펫, 다다미를 구분하는 것과 같죠. 오감을 의식해 소재를 선택합니다. 계단을 걸을 때는 시선이 발밑으로 갑니다. 발밑에 작은 꽃이 보이면 오르내림도 즐거워집니다. 동선에 무엇을 깔아야 하는지 알게 되면 정원의 구성도 자연스레 정해지죠.
덮는 일은 가리는 일입니다. 가림으로써 강조하는 역설적인 기법도 있죠. 제일 경치좋은 방향은 비우고 좌우에 나무를 배치하면 그 사이의 원경이 강조됩니다. 주위를 숨기는 것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수법이죠.
정원을 넓게 보이고 싶어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은 역효과죠. 나무가 없으면 정원의 한쪽에서 반대쪽 끝까지 모두 보입니다. 이런 정원은 어디를 걸어도 같은 경치가 보이는 구조죠. 넓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심심하고 지루한 정원이 됩니다. 결말이 보이는 드라마와 같고 상상력이나 기대감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특히 정원 구석이 중요합니다. 원로를 정원 구석의 나무 건너편으로 사라지게 하는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실제로는 그 앞이 보이지 않아도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죠. 창문 앞의 나무도 모두 보이면 그걸로 끝이지만 절반쯤 가려지는 위치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느끼게 해줍니다. 가림의 마법이죠.
장지에 비치는 대나무 잎 그림자로 밖의 햇살이나 바람을 느낍니다. 한껏 모양을 낸 둥근 창 너머로 사쿠라의 굵은 줄기와 흩어져 가는 꽃잎만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벚나무를 떠올리게 되는 건 전통적인 일본 정원의 연출 테크닉이죠.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뤄 좋은 정원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 중 하나의 요소에 눈을 빼앗겨 조화를 해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거리를 두고 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돼요.
정원 디자인이란 게 어떤 나무를 얼마나 심느냐는 것만 치중하지는 않아요. 아무것도 심지 않는 디자인도 있으니까요. 마이너스 디자인이죠. 오래 전에 제가 설계한 작업중에 넓디 넓은 정원에 잔디를 깔고 잡목 두어 그루로 마무리 한 경우가 있었어요.
낡은 창고를 없애지 않고 약간 바꿔서 의뢰인이 좋아하는 색으로 도색했어요. 문을 바꾸고 어닝을 설치해서 넓은 느낌을 살리려 했죠. 이 창고를 포인트로 해서 나무를 몇 그루 심고 가능하면 넒은 느낌을 살리려 한 디자인이거든요. 이 경우는 나무가 주가 되는 게 아니고 양념이죠. 나무도 없으면 황량하니까 몇 그루 끼워넣는 거죠.
그곳은 의뢰인이 기르는 완짱(개) 놀이터이기도 했거든요. 주인이 개랑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의도로 만든 디자인이죠. 어닝 아래 테이블을 펼쳐 놓고 차를 마신다든지 하는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만들었죠.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가요?) 약간 달라요. 이 작업은 넓은 잔디밭에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기본 조건이 있죠. 아무 조건도 없이 제로에서 시작하는 정원 디자인은 없어요. 그림을 그린다면 아무 조건 없이 시작하지만 정원 설계는 처음에 일정한 조건이 주어지는 거니까 그림과는 다르죠. 주어진 조건을 정리해 나가는 중에 일이 절반 정도 끝난다고 보면 되죠.
일본 전통정원은 대개 사용하는 게 아니고 방에 앉아 바라보는 용도거든요. 목적이 완전히 다르죠. 나는 일본정원도 가능하면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걸 목적으로 디자인하고 싶어요. 요즘 건축되는 신형주택의 경우에는 의뢰인의 개성들이 뚜렷해서 보는 정원과 사용하는 정원이 융합되고 있긴 하지만.
(디자이너와 이야기하는 중에 의뢰인의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겠군요) 의뢰인이 하고 싶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도 많거든요. 나무에 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이 나무가 좋으니까 심고 싶어요' 하거든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싶어서 모미노기(소나무과의 상록침엽수, 혼수 시코쿠 큐슈에 자생 일본 특산종)를 심고 싶다는 의뢰인의 요구가 있었어요. 그 나무는 주택지에서는 심을 수가 없거든요. 몇 십미터까지 한없이 자라는 나무니까.
그런 의뢰라면 사정을 설명하고 가능하면 그와 비슷한 조건으로 맞출려고 노력하죠. 때로는 토목공사와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디자이너의 책임이기도 하니까(어려운 작업이네요 어려운 만큼 재미있어 보이는 작업이기도 하고).
아까 낡은 창고 디자인으로 다시 되돌아갑니다만 원래 너덜너덜한 창고였어요. 문 앞에 테라스를 만들고 식재문제는 공간 디자인의 한 분야기도 하죠. 같은 높이가 안되도록 공간의 밸런스를 맞추는 거죠. 나무 아래에 네지메(하부가림)로 초화류를 심기도 하고 원근감을 만들기도 하죠. 하나미즈키(꽃산딸나무)를 넣기도 하고 삼각형으로 큰나무 작은 나무를 조합하게 되죠. 공간 디자인이죠.
이 경우는 안이 보이는 경우가 아니라서 괜찮지만 예를 들어서 창문이 여기에 있다면 밖에서 직접 보이지 않도록 해야죠. 안에서 볼 때도 녹음이 보이도록 하는 것을 의식해서 창문 옆에 나무를 심도록 먼저 정합니다. 이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 디자인에 해당되죠.
그 위치를 먼저 정하고 나머지는 밸런스를 고려하면서 나머지 위치를 정합니다. 사무실 입구라면 수형이 좋은 나무로 산뜻한 느낌이 들도록 인상을 줘야 할 장소니까 부드러운 수형의 산뜻한 나무를 심어 좋은 인상이 남는 곳으로 만들어야죠.
옛날부터 일본식 정원에서는 문의 옆에 문관목을 심어 문 주위에 풍격을 주고, 배경인 주택과 조화시키는 궁리를 해왔죠. 이것은 정문에서 주택까지의 거리감을 만드는 연출이기도 했습니다. 수목의 종류나 배치, 크기를 궁리하는 것으로 정원을 넓게 보이거나, 명암의 콘트라스트를 만들 수도 있어요. 정원은 집과 나무, 거기에 사는 사람, 방문하는 사람이 관계되어 기분 좋은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거죠.
덧붙이는 글 | 내 블로그 일본정원 이야기(https://blog.naver.com/lazybee1)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