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사단장인 저는 지휘체계상 중대장, 대대장에게까지 직접 지시 및 소통을 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이번 호우 피해 복구 작전간 불의의 사고로 발생한 고 채OO 해병 실종상황 이전에 포병대대장들과 직접 소통한 적은 없습니다." -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 진술서 46쪽
고 채 상병 소속부대장이었던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이 지난 11월 21일 군사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부하들에게 사고 책임을 돌리는 취지의 주장을 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그의 진술과 상반되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임 전 사단장의 진술서에 따르면 그는 "사단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예하부대 간부들을 야단치거나 무안을 주는 등 질책한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호우피해 복구 작전에서도 질책을 한 적이 없으며 칭찬과 격려, 지도 위주로 부대를 지휘했다는 입장이다.
임 전 사단장 진술과 다른 중대장 진술
채 상병 사고 하루 전인 7월 18일 오전 임 전 사단장은 현장을 둘러보다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수변현장에서 포3대대 9중대 병력을 발견했다. 당시 9중대장은 현장 확인을 통해 진입로와 안전위해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중대원들을 대기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임 전 사단장은 진술서에서 사단장인 자신이 중대급 이하를 직접 상대하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 신속기동부대장의 교육여건을 보장해주기 위해 약 50m 이상 멀리 떨어져 기다리고 있다가 교육이 끝난 뒤 지나가면서 그 부대를 격려하고 현장을 이탈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중대장의 증언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임 전 사단장이 "왜 빨리 작업 시작하지 않고 병력을 대기시키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 후 해병7여단장(신속기동부대장)과 7여단 주임원사와 함께 30m가량 떨어져 이동했다는 것이다.
중대장은 자신이 병력을 인솔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 하자 임 전 사단장이 "왜 중대장이 가냐, 행정관이 다녀와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행정관이 데려온 중대원들에게 7여단장이 '전술적으로 신속하게 작업을 시작하고, 수변을 정밀수색해라. 조를 나누어서 책임자를 지정해 실시하고 본인이 건의해서라도 포상휴가를 줄 테니 열심히 수색해라'고 교육했다.
이후 중대장은 직속상관인 포3대대장에게 사단장과 조우했던 사실을 보고했는데, 포3대대장으로부터 "사단장님이 9중대 현장을 보시고 '늦게 왔다 + 우왕좌왕하며 뭐하는지도 모른다'고 화내셨음"이란 카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임 전 사단장이 포3대대장을 질책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임 전 사단장과 중대장의 진술 중 일치하는 부분은 신속기동부대장이 수색현장의 중대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임 전 사단장이 수 십 미터 떨어져 있었다는 정도다.
또 임 전 사단장은 중대원들을 격려하고 현장을 떠났다고 했지만, 중대장은 "(임 전 사단장이) 기분나빠하시면서 '너네 어느 부서냐'고 말씀하셨고... 현장 확인하고 나서 보내려고 한 건데, '빨리 내려 보내라'고 하셨고"라며 답답한 마음을 대대장에게 토로했다. 중대장의 진술서에는 대대장 역시 "'나도 혼란이 생기는데 너희는 더 그렇겠지'라고 하시며 위로해 주셨다"고 쓰여 있다.
공교롭게도 임 전 사단장이 현장을 둘러본 직후 포3대대 9중대는 벌방리 하천에 투입됐고, 여러 매체 사진 기자들이 해병들이 하천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7월 19자 <국민일보>에 실린 "'실종자 찾아라'... 해병대 상륙장갑차까지 전격 투입" 제하의 기사에 실린 사진 역시 물속에서 실종자를 찾는 9중대 장병들을 찍은 것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여단장이 물속에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해서 위와 같은 장면의 사진이 촬영되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
채 상병 사건 이후 해당 사진이 논란이 되자 포3대대장은 "촬영 목적으로 임의로 촬영시간대만 입수"했다고 밝혔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하천으로 들어가 수색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지, 실제로 물속에서 실종자 수색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포병대대장 최선임자, "무릎아래까지 정성껏 탐색" 내용 공유
또 임 전 사단장은 수색정찰 방식과 관련해서도 "'찔러가면서 해라'는 등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전술적 행동은 사단장이 지시한 바가 없으며 부대별, 작전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었을 텐데 부대별 현장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사단장으로서 지시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이 신속기동부대장에게 명시적으로 언급한 사항은 "바둑판식 수색정찰"이라는 8글자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그 외에는 신속기동부대장이 지시했거나 대대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부대지휘의 용의성, 신속성 등을 고려하여 일부는 추가·확대·왜곡 시킨 것으로 사료되며..."라고 밝혔다.
포병대대장들 중 최선임자였던 포11대대장 최OO 중령은 7월 18일 오후 해병대 지휘통제본부 회의에 참석한 후 "내일(19일) 사단장님 0800 현장 작전지도 예정(보병 1개 부대, 포병 1개 부대)"라고 전파했다. 최 중령은 특히 "탐색 및 수색 작전 다시 실시"라고 강조하면서 "바둑판식으로 무릎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내용을 공유했다. 하지만 임 전 사단장은 이런 내용은 자신의 지시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해병1사단의 한 간부는 해병대수사단 조사과정에서 "당일(7월 18일) 사단장님 주관 VTC(화상회의)에서 사단장님께서는 늘 그렇듯 '결단이 미흡하다', '정리가 안 된다' 등으로 질책을 하셨고, 수색정찰 관련해서 '위에서 보는 것은 수색정찰이 아니다',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 보면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질책은 한 적 없고, 수색정찰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임 전 사단장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언이다.
이 간부는 또 임 전 사단장이 회의에서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 보면서 찾아야 한다'면서 '거기 내려가는 사람은 (손을 가슴높이까지 올리며) 그 장화 뭐라 그러지?' 질문해 자신은 가슴장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임 전 사단장은 진술서에서 "가슴장화 확보"를 회의에서 지시한 바 있다면서도 이는 수색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가옥 복구 과정에서 장병들의 피복이 젖거나 진흙이 묻는 경우가 있고, 일부 장병들의 피부 트러블이 우려되므로 가슴장화를 확보해달라고 건의를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