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노의 가을이 깊어간다. 12월도 중순을 향해 치닫는 초겨울인데 이곳 큐슈지역은 한국보다 계절이 늦다. 멀리 보이는 산속 단풍나무는 이제서야 가을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거운 암록색 침엽수 사이에서 울긋불긋 화려한 원색이 단연 돋보인다. 특산물인 단감 밭에는 노랗고 붉은 잎들이 그대로 달려 있고 아직 수확하지 못한 감들도 더러 눈에 띈다. 늦가을 풍경이다.
정원일은 연중무휴지만 낙엽지는 늦가을부터가 시즌이다. 요시다 선생도 가을철 들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원공사 작업때문에 수업 일정도 못잡을 정도로 눈코 뜰 새없다. 정원 공사는 나무들이 활동을 멈추는 시기가 제 철이기 때문이다.
전정 작업도 마찬가지. 나무마다 목적에 따른 작업 시기가 따로 있지만 일반적으로 늦가을부터 시작하는 게 통상적이다. 가을 전정은 좋은 점이 많다. 활엽수는 가지가 드러나니 작업이 한결 쉽다. 침엽수도 봄까지 새 순이 자라지 않아 전정해 놓은 대로 가지런한 모양새가 깔끔하게 유지된다. 가을철 정원사들이 바빠지는 이유다.
일본에서 대대적인 정원 손질은 대개 쇼가츠(설날)와 오봉(추석) 등 명절에 맞춰져 있다. 손님들이 찾아오고 조상님을 맞이 하려면 집안을 깨끗하게 해야하니 명절 전에 정원을 손보게 된다. 추석 전정은 나무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한 부득이한 경우다.
식물은 봄에 순을 틔우고 여름에 자라는 게 본능이다. 추석 전정이 때로는 식물의 성장 본능을 자극해 자르기 전보다 더 무성해지기도 한다. 12월 전정은 설명절을 대비한 전정이다. 새해맞이 대 청소는 정원 손질이 우선이다. 설날 전정도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식물 생리와 맞아 떨어지는 시기다.
아내를 위한 정원
오랜만에 요시다 선생에게서 미팅 연락이 왔다. 정원 공사 견학을 겸한 바깥 나들이 동행이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나들이가 제격이다. 바깥 바람은 웅크린 마음을 북돋워 준다. 상심한 제자를 위한 이벤트인가.
요시다 선생도 사부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 정원 관리 작업은 그정도 배웠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르고 다듬고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으니까. 물론 작업을 계속할수록 기능이야 숙련되겠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시기였다. 울고 싶은 참에 뺨을 맞았달까.
오늘 나들이 목적은 정원석 선별이다. 돌은 일본 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보통 일본정원의 3대 구성요소를 돌, 물, 나무라 하는데 그 중심이 돌이다. 이시구미(石組, 돌 배치)는 일본 정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800년 전에 쓰여진 일본 최고의 정원서 작정기(作庭記)도 이시구미 기록이 핵심이다. 작정기는 일본 정원사들의 바이블이다. 돌을 조합하고 배치하는 기법을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
정원석 선별 나들이는 요시다 선생이 의뢰받은 정원 공사의 준비 작업이다. 선생은 여성 신변용품을 파는 마츠리라는 가게에서 공사를 의뢰 받았다. 지금까지 봐 온 정원에 비한다면 정원이랄 것도 없는 규모다. 건축부지 한쪽 면을 활용한 자투리 정원이니까. 집 짓고 나서 경계까지 좁은 땅을 활용한 초미니정원이다.
의뢰인 남편은 그곳에 아내를 위한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과 가게에 어울릴 만한 정원을 찾아다녔다. 오랜 고민끝에 결정된 정원이 가레산스이(枯山水, 고산수) 정원이다. 작은 장소에 어울리면서 가게 건물과도 잘 조화되기 때문이다. 폭95센티에 길이 6.5미터의 아담한 가레산스이 정원이 결정된 연유다.
가레산스이란 돌이나 흰 모래로 물을 표현한 일본 전통정원을 가리킨다. 가레산스이 정원의 역사는 깊다. 8세기 헤이안 시대 이후 중국불교 선종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양식이다. 철저한 감상용 정원으로 좌선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본 정원문화의 정수(精髓)라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일본정원의 대표주자라는 거다.
일본 정원사(庭園史)는 수많은 시대 구분과 용어들이 난무한다. 읽고 나도 무슨 소린지 도대체 정리가 안 된다. 아는 것 같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새롭다. 2000년 역사를 어떻게 단숨에 정리하나.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 일단 핵심을 잡는 거다.
일본정원사의 핵심은 가레산스이다. 가레산스이는 세계 정원사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이기도 하려니와 탄생 스토리조차 지극히 일본적이다. 용어공략 포인트는 한자다.
맨 앞의 고는 마를 고(枯)다. 그 뒤에 산수(山水)가 붙었으니 마른 산과 물이라는 뜻이 된다. 산수를 건조한 돌과 모래로 표현하는 기법이란 뜻이 된다. 게다가 이 기법은 유행했던 당대 상황을 정확히 은유하고 있다.
가레산스이 양식이 가장 유행했던 시대는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다. 사무라이들이 가마쿠라 막부를 열고 무로마치 시대를 거쳐 센코쿠라는 내전을 겪은 후다. 10년 내전으로 세상 모든 것들이 불타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시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으니 정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먹고 살만해야 정원을 만든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정원을 만들었다. 만들 재료들이 다 불타고 없으니 돌과 모래를 사용했다.
돌과 모래는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레산스이로 영원을 꿈꾸었까. 한번 만들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정원. 그들의 의도는 운좋게도 시대의 흐름을 탔다. 마침 불어닥친 중국의 선종사상과 지배층의 필요가 더해졌다. 거기에 정원 만들 재료도 없는 상황과 딱 맞아 떨어져 3단 합체를 이룬게 가레산스이다. 가레산스이는 유래없는 대 유행을 이뤘다.
그 시절 가레산스이는 사무라이들의 정원이었다. 몇 세기 전 헤이안 시대 권력자인 귀족들은 침전조라는 초호화 정원을 만들었다. 그들이 정원 가운데에서 비단금침으로 잠들었을 때 사무라이들은 칼을 품고 한뎃잠을 잤다. 천황에서 귀족으로 다시 사무라이로 권력이 이동되는 동안 정원도 변했다. 세상이 바뀌니 정원도 바뀌었다. 정원은 권력자의 트로피같은 존재였다.
가장 오래 된 가레산스이 정원은 800년동안 원형을 보존해왔다. 교토의 선불교 사찰 겐닌지에 가면 지금도 사무라이들이 마음을 비운 평안함을 오롯이 맛볼 수 있다. 돌과 모래로 영원을 꿈꾸었던 그때 사무라이들의 의도는 성공했다. 인공위성이 하늘을 돌고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가레산스이들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으니.
남편은 아내를 위해 정원을 새롭게 공부하면서 가레산스이에 푹 빠졌다. 정원의 본고장 교토까지 가서 가레산스이 정원 강습에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남편이 원지근무하는 주말부부라서 가게 주인 아내가 공사 진행을 돕게 됐다. 말하자면 부부 공동작품이다. 오늘은 그 정원의 핵심이 되는 정원석을 고르기 위한 나들이다.
의뢰인이 가레산스이 전문가급이니 기본적인 설계는 거의 나와 있는 형편이다. 그걸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의견을 더해 설계를 완성하면 된다. 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을 이런 경우가 더 까다롭다. 석등까지 의뢰인이 골라놓은 경우는 드물다.
요시다 선생은 의뢰인의 석등이 맘에 들지 않았다. 작은 정원에 지나치게 큰 석등이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정원을 만들고 싶은 건 모든 디자이너의 희망이다. 정원은 의뢰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실무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는 의뢰인의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 여기서 디자이너의 고민이 시작된다.
정원석 판매장은 산속에 있었다. 요시다 선생이 고르는 대로 크레인이 들어올려 보여주었다. 시공자와 의견을 나누고 의뢰인에게 스마트폰 사진을 보내 실물을 확인시키느라 분주하다. 가레산스이에 능통한 의뢰인에게 딱 맞는 돌을 찾는 일이 만만할 리 없다.
가까스로 정원석을 준비하고도 한동안 공사 일정을 잡기 힘들었다. 디자이너도 바쁘고 시공자도 바쁘다. 정원 공사는 겨울이 제철이라서다. 의뢰인이 까다로운 데다 공사규모가 작아서 다른 정원들에 비하면 일같지도 않은 일이다. 난관속에 겨우 공사 일정을 맞췄다.
왕의 정원, 필부의 정원
95*650센티의 가늘고 긴 독특한 정원이 완성됐다. 우주가 담겨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은 잘 모르겠고 돌의 구성은 맘에 들었다. 정통적 기법은 아니겠지만 아래쪽에 풀 몇 포기 곁들이고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쯤 더 하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완성된 정원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가 저녁 무렵이었다. 가게는 정기휴일이고 아내혼자서 정원 청소를 하고 있었다. 지는 해 속에서 단풍이 유난히 붉었다. 내가 단풍이 있어 완성된 정원이 더 빛난다고 하자 매일 청소가 보통 일이 아니란다. 청소가 괴롭기만 하면 정원을 어떻게 가꾸랴. 청소를 마치고 물까지 뿌려놓은 정원은 한폭의 그림이다. 정원에 쌓인 이야기들도 그들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이들 부부에게 정원은 가족 단란의 상징이다. 남편이 계획한 것은 아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눈길이 머물 최상의 풍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사랑은 감정이입이다. 상대방 마음에 자신이 이입되어 이심전심 전해지는 거니까.
정작 의뢰인인 남편은 아직 완성된 정원을 보지 못했다. 원지근무에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완성된 정원을 보며 좋아할 일을 생각하면 물뿌리개를 잡은 아내의 손이 한결 가벼울 것이다.
바빌론 공중정원은 왕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왕비를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의 보통 남편은 오랜 고민끝에 돌 세개로 아내에게 태산 준령을 선물했다. 필부의 자투리 정원을 웅장한 왕의 정원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마음만은 어깨 견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다. 부부가 주고 받은 것은 결국 마음일테니까.
덧붙이는 글 | 내 블로그 일본정원 이야기(https://blog.naver.com/lazybee1)에도 실렸습니다.